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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2.04.09 | 마가복음 16장 1-8절 | 구진모 목사



마가복음 16장 1-8절


1절.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절.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절.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절.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절.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절.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절.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사순절 새벽 묵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난 현상은 깊은 절망과 좌절과 한숨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4:21을 보시면 제자들이 하는 말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그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라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랐노라”라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즉, 제자들은 주님과 더불어 가졌던 소망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더불어 이미 사라져 버렸다는 겁니다. 그것도 이미 사흘이나 지났다고 말함으로 얼마나 깊이 절망하고 있었는지를 표현해 주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앞에서 제자들은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안식일이 지난 날 아침, 몇 몇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을 찾아가게 됩니다.


날이 밝기도 전에, 이들이 주님의 무덤을 찾아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주님의 무덤을 찾아가게 만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꾸던 꿈도 사라지고, 소망도 사라졌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은 남아 있었던 겁니다.


주님이 부활하실 것이란 예언의 말씀을 믿고 찾아 간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소망도 다 사라졌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사랑, 바로 그 사랑이 이들로 하여금, 향품을 준비하여 주님의 시신이나마 다시 보기 위하여 이른 새벽에 찾아갔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우리들에게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절망적인 환경이 찾아온다고 해도, 더 이상 믿고 기댈 곳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소망이 사라진다 해도, 주님에 대한 사랑만 있다면, 그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불씨가 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소망,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은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믿음을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또 믿음이 있으면, 소망을 다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약해져 가고 있습니까? 자꾸 절망이 되고, 낙심이 됩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이 여인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찾아간 무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빈무덤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은 말합니다. 본문 6절에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 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첫 번 부활절 아침에, 여인들이 본 것은 빈무덤이었고, 그들이 들었던 말씀은 '주님께서 살아 나셨다'는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마가복음 16:11절을 보면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고 했습니다. 13절 에도 보면,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16:14절 하반절을 보면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이라” 예수님께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꾸짖은 말씀입니다. 


이런 기록들을 볼 때, 주님의 부활하심에 관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냐는 것을 새삼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이 아침에 부활의 능력과 은총을 능히 체험할 수 있는 참된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제자들이 절망에 빠졌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는 사실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무덤속에서 들려온 소식은 본문 7절에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주님과 늘 함께 거닐었던 그 갈릴리에서 이제 곧 만날 것이란 소망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주님은 살아 나셨고, 이제 곧 만날 수 있으며, 우리들이 언제나 걷고 함께 이야기하던 바로 그 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소식만큼 제자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는 것은 없었을 겁니다.  죽음앞에선 인간에게 최고의 소망이 있다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는 부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을 믿는 믿음에는 반드시 소망이 따라오게 됩니다. 절망에 빠진 제자들에게 믿음이 생기면서, 저들에게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죽음과 고난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죽어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과거의 종교가 아닙니다. 무덤의 종교도 아닙니다. 현재 하나님의 나라와 부활을 소망하는 종교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으로 믿음과 소망으로 풍성한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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