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4.08 | 마가복음 15장 42-47절 | 구진모 목사



마가복음 15장 42-47절


42절.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절.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절.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절.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절.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사순절 새벽 묵상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유대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이 말은 당시 산헤드린은 존경받는 이스라엘에 70인으로 구성된 국회의원으로서 명예와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율법에 철저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부자였으며(마 27:57),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눅 24:50). 그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할 때 찬성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며(눅 23:51), 예수님을 은밀히 따르던 제자였습니다(요 19:38).



이 요셉의 신앙은 요한복음 19:38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겼다" 사람"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드러나게 예수님을 믿거나 예수님을 따르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눈치 채이지 않게 마음속으로만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자 제자들처럼 낙심하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만 믿었던 신앙이 바깥으로 나타난 겁니다.



야고보 사도도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케 되었도다 하고 하였습니다.(약 2:22)



진정한 믿음은 지정의가 조화된 믿음을 말합니다. 행동으로 나타난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자 제자들처럼 낙심하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막15:43절에 보면,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당돌하게" 시체를 요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의 미움과 특히 산헤드린 공회의 거센 핍박과 징계를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싸기 위해서 세마포를 샀으며 자기를 위하여 예비한 무덤까지 예수님께 기꺼이 드렸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시신을 돌본 요셉의 행동은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좇았던 요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를때 때로는 우리의 지위와 명예와 재물에 희생과 위협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위해서 감수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용기인 겁니다.



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눅23:51이나, 마15:43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었다가 아닙니다. 소위 현재 진행형으로 씌여 있다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의 시작을 어떤 메시지의 선포로 시작하셨습니까?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막 1:15)



하나님의 나라는 신구약 성경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1) 미래적이며 장차  우리가 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새 예루살렘 입니다.



2) 주님이 현재 다스리시는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와 나라가   온전히 주님의 통치를 받으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이 다스리는 심령이 곧 천국입니다. 


 


 마태복음 12:28절에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신자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장례 나 잘 치러 드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사건을 보면서,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과, 구세주 되심을 확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가 예언하신 그대로 다시 살아 날 것이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쁘게 자기의 무덤을 내어 놓을 수 있었던 겁니다. 



요셉은 이제 이 땅의 부요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저 영원한 하늘의 부요를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땅의 명예, 땅의 이름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명예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몰라주어도,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하고, 지금까지 모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지라도, 주님만 나를 알아주신다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주 앞에 내어 놓기를 결단했던 겁니다. 



성경은 그 후의 그의 삶에 대해 특별한 기록을 남겨 놓지는 않았습니다만,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초대교회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요셉의 용감한 행위를 대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주님을 따라 왔는지, 초기의 아리마대 요셉처럼 예수 믿는 사실 조차도 부끄러워 알리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하고 신앙생활한 소극적인 교인이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이 고난 주간을 지나면서, 요셉이 선택한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고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적극적인  믿음으로 새롭게 바뀌어지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