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의 들락날락 재판

새벽예배 2022.04.06 | 마가복음 15장 1-20절 | 이선기 목사



마가복음 15장 1-20절


1절.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절.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절.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절.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절.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절.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절.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절.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절.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절.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절.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절.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절.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절.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사순절 새벽 묵상

한 15년 전인가요? 판사테러 사건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직 대학교수였던 김명호씨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석궁으로 박홍우 서울 고법 부장판사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판사 테러는 그동안도 없었던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친일파 이완용의 증손자가 땅을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서 이기게 되자 정신 병력을 가진 민원인이 아무 관련 없는 수원지법 성남지원장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는 일이 있었고 한번은 호적을 고쳐 달라고 신청한 민원인이 2003년의 법원 기각 결정에 불복하며 면도날로 자해하며 법원장실을 난입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판사 중에는 출근길 겁난다 하는 말이 돌았고 판사 안되길 잘했다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판사 되어 판결 한번 잘못해서 2000년이 넘도록 욕먹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욕먹게 될 판사가 있으니 빌라도가 그런 판사였습니다. 사도신경을 할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즉 예수님을 죽이라는 판결을 내린 판사가 바로 빌라도라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외우고 또 외우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지역을 관할하는 로마총독이었습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 임시 본부를 세워 재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피고와 원고가 자리를 따로 해서 피고는 안쪽에 빌라도와 독대하고, 이방인의 재판정이 더럽다고 원고 즉 고소인들은 재판정 바깥에서 죄인을 처결하라고 외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심문을 하는데 판사가 재판정 안에 들어갔다가 바깥으로 나왔다 하면서 재판진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이 빌라도의 들락날락 재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재판만 들락날락 재판이 아니라 실제로 빌라도의 삶은 아주 우유부단한 들락날락의 삶이었습니다. 한 발은 세상에 나머지 한 발은 주님께로, 여러분 우리 중에도 이런 애매한 빌라도의 삶을 사는 분 있습니까? 박쥐 인생에게는 수치스러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미혼 여성들에게 어떤 남자가 제일 꼴보기 싫은가 물어봤더니 돈도 없고 키작고 못생긴 남자가 아니라 “양다리 걸친 남자”라고 대부분이 대답했다고 하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매하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 있지 마시고 확실히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확실히 주님께 붙들린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확실한 그리스도인 분명한 신앙의 고백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고집이 있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에 확실한 믿음의 사람은 힘들다는 것 알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차피 신경 쓰지 않고 어정쩡하게 양다리 걸친 사람을 주로 공격한다고 합니다. 조금 공격하면 아주 손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마귀를 조심하시고 갈라디아서 1장 10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했는데 중간에서 애매하게 이리저리 흔들리지 마시고 확실한 그리고 강력한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번 사순절이 그런 결단의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빌라도의 불안한 신앙을 거울삼으며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1. 첫 번째로 빌라도의 신앙의 강도가 문제였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빌라도는 원래 소극적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골치 아프게 살고싶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쇼. 대제사장들이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라고 되어 있고 2절에는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주님께 질문하고 있는데 여러분 이 똑같은 본문이 요한복음 18장에 있는데 요한복음 18장 29절에서 31절에 보면 오늘 본문에서 빠진 내용이 있습니다. 빌라도가 새벽에 주님을 끌고 온 무리들 앞에서 가서 묻습니다.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그랬더니 이 사람은 행악자입니다. 하고 외치니까 빌라도가 아주 무책임한 대답을 합니다.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여러분 빌라도는 책임감이 약한 사람, 가능하면 신경 안 쓰고 넘겨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우리에게는 죽일 권한이 없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겨우 떠맡아서 재판을 진행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렇게 잡혀온 주님께 질문하는 모습을 보십쇼. 딱 두가지만 묻습니다. 지금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일인데 자세하게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2절 보십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그 다음 3절에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을 하니까 또 한번 물은 것이 4절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여러분 얼마나 귀찮아 하고 성의없는 심문입니까? 언제 무슨일이 있었느냐? 누구를 해쳤느냐? 증거는 있느냐? 증인은 있느냐? 좀 자세하게 물어야 할 텐데 딱 두 질문도 아주 귀찮게 질문하는 빌라도.

여러분 교회 다니시는 분들 중에도 가능하면 말 그대로 그냥 교회만 다니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 그저 주일 아침만 한번이면 됐지, 바쁘면 그냥 제끼기도 하고, 그냥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면 되지.. 정말 아무 감동도 없이 갈등도 없고 또한 열심도 없이 그냥 대충 다니는 구경꾼 신앙인, 물론 교회를 아예 안 오시는 분들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과연 참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길가에 떨어진 씨나 돌밭에 떨어진 씨가 떠오릅니다. 뿌리가 약해서, 즉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언제든지 주를 떠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한 부자가 예수님께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부자의 신앙의 강도를 시험하십니다. 네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부자가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뭐라고 하십니까?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천국 가기보다 쉽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할까봐 테스트하신 신앙의 강도에 대한 테스트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펄전 목사님은 신앙의 중간지대란 없다고 하셨는데 강이면 강이지 애매하고 약에 겨우 턱걸이로 애매하게 매달려 있지 마시길 바랍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즉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라 즉 전부 다 쏟아 부어 열정적으로 하나님 사랑하라 하신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다시 열정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나를 위해 전부를 내어주신 목숨을 빚진 자들이 저와 여러분인데 여러분 언제까지 힘빠져 있을 것입니까? 다시 뜨거워지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빌라도는 신앙의 강도 뿐만 아니라 신앙의 방향성이 또한 문제였습니다. 빌라도는 옳고 그름보다 여론을 더 중요시 여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진리대로가 아니라 다수가 원하는대로 판단하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빌라도가 그래도 조금은 양심이 있었는지 명절에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음을 알고 빌라도는 전례를 요구하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9절 보십쇼. 슬쩍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어합니다.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절에 보니까 대제사장들이 시기함으로 에수를 넘겨준 줄을 눈치 채고 질문해 봅니다. 그런데 웬걸, 시기 질투가 있을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좋았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합니다. 11절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여러분 이 상태에서 빌라도가 그래도 주관이 뚜렷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떳떳한 사람이었다면 여기서 나섰어야 합니다. 정확한 증거가 부족하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생명을 쉽게 생각하느냐고 무리들을 꾸짖고 교훈했어야 합니다. 진리 편에 섰어야 합니다. 실제로 그럴 힘이 있었습니다. 로마 총독이었기에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그저 다수가 원하는 대로 결정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8장 37절에서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셨는데 이 빌라도는 진리의 음성 주님의 음성이 아닌 다수의 음성을 택합니다.

한 장군이 자기 부하의 충성도를 살피기 위해 특이하게도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 군대에서도 충실한 군인이 될 수 있다 하면서 가정에 충실한 사람 테스트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전 병사들을 모으고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 군대는 가정에도 충실한 군대가 되기를 원한다. 가정에 충실하려면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집에서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청색 깃발 아래로 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백색 깃발 아래로 모여라”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병사가 미리 생각을 모았다는 듯이 모두 아내의 말을 잘 듣는다면서 청색 깃발아래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딱 한 사람만이 백색 깃발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이 장군이 백색 깃발 아래에 선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아니 자네는 왜 유독 홀로 이 백색 깃발 아래 서 있느냐?” 그랬더니 그 병사가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오늘 집사람이 사람 많은데 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아합과 여호사밧 연합군이 아람과 전쟁하게 될 때에 400명의 예언자들은 전부 다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딱 한 사람 미가야만 대답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언하겠습니다. 이번 전쟁은 실패할 것입니다.” 아합왕이 누구의 예언을 따릅니까? 다수의 의견 400명 예언자의 예언을 따라가다가 부상을 입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 노아는 홀로 깨어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120년이 되도록 묵묵히 배를 만듭니다. 사람들이 치매라고 놀려도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도 노아의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누구만 살았습니까? 노아의 가족 8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삶의 방향성을 어디로 향하여 살고 있습니까? 민주주의라서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십니까? 소수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진리,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고 그곳을 향하여 꿋꿋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손을 씻는다고 무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씻어야 회개해야 무죄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가복음이 가장 짧아서 그런지 가장 최초의 복음서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원조 복음서여서 그런지 빌라도의 행동 중에 중요한 한 가지가 14절과 15절 사이에 빠져 있습니다. 같은 본문 중에 마태복음 27장 24절에 보면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즉 사람들이 격해지는 것이 두려웠고 또 이 죄 없는 죽음에 대하여 책임을 지기 싫었는지 무리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여러분 이래서 빌라도가 지금까지 욕먹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저 손만 씻으면 내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 나는 죄없다는 무책임, 여러분 손이 아니라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 통회하고 자복하며 죄를 회개하며 예수께서 바로 죄인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믿고 마음을 씻어야 용서받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엘서 2장 1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 죄를 자백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찢으시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흰눈보다 더 깨끗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