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엘세바까지 가야 합니다

새벽예배 2022.09.21 | 창세기 26장 12-25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26장 12-25절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욥기서는 42장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욥기서를 1장부터 끝장까지 다 읽으려고 하지 않고 1장과 2장까지 읽다가 혹은 3장까지 읽다가 중간을 다 뛰어넘어 마지막 42장을 읽고 이렇게 묵상한 내용을 정리합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곧 의인인데 고난당해서 재산도 다 없어지고 자녀 10명은 다 죽어버렸다. 그런데 고난을 잘 참고 견뎌냈더니 하나님께서 욥기서 42장에 보면 결국 갑절의 복, 재산을 오히려 배나 주셨더라. 자녀도 10명 도로 주셨더라. 그러므로 우리도 고난을 잘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갑절의 복을 주신다. 따불의 복을 주신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이게 과연 욥기를 잘 이해한 묵상이 맞을까요? 처음 예수 믿었거나 혹은 어린아이들 같은 경우는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깊이 욥기를 연구하면 그 묵상 내용이 좀 달라집니다. 이렇게 달라지죠. 욥은 온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데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잘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을 잘 믿어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 과연 그리스도인이 이유 없이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게 잘 믿는다고 열심히 신앙생활 했는데 그런데 나를 아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의아하고 민망할 정도로 가슴 아픈 슬픔이 찾아왔으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게 바로 욥기의 올바른 묵상입니다. 마지막 42장의 갑절의 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4장부터 37장까지 가까운 지인들의 위로가 아닌 책망 뒤에 드디어 38장부터 41장까지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욥에게 할 말이 없게 만드는 하나님의 크심과 헤아릴 수 없으심을 알려주실 때에, 이유 없는 고통 때문에 불만이었던 욥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깨닫게 되고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즉 내가 하나님을 그동안 잘 모르는 우둔한 자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밝히 알게 되었나이다. 하고 큰 깨달음과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 내 생각을 초월해 계신 더 큰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다는 것 이게 바로 욥기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예수 잘 믿어도 고난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그렇게 중요시여기는 돈, 분명히 예수 잘 믿었는데도 하루아침에 망해서 다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했는데 자녀가 잘못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말 것은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음을 기억하시면서 끝까지 견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 잘 믿는다고 해서 신앙생활 잘 한다고 해서 꼭 부자 되고 자녀가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예수 믿지 않는다고 해서 가난해지거나 자녀가 잘못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해지고 자녀의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더 열심히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부자 되고 자식도 잘 되면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일했던 분이 느슨해지고 열정도 식어지고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요함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 하나님 일을 많이 하게 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요. 가난함과 고통이 오히려 하나님께 비로소 가까이 나아가게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와 평생 가까이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초월하시는 하나님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려주는 본문입니다.

우선 여러분 오늘 본문을 읽으시면서 참 마음이 흐뭇하셨을 것입니다. 이삭의 가장 중요한 특기 우물 파는 이야기가 나와 있는 본문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평생 한번 파기도 힘든 우물을 네 번 혹은 5번이나 팠습니다. 15절에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도로 팠습니다. 이걸 첫 번째 우물이라고 하면 총 5번이구요. 이걸 빼면 4번입니다. 19절 보십쇼.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으니 20절에 이 우물이 두 번째 우물 에섹이란 우물입니다. 21절 또 다른 우물을 팠으니 세 번째 우물 이름이 싯나입니다. 22절에 보니까 네 번째 우물을 팠으니 이름이 르호봇입니다. 25절 보십쇼. 브엘세바에서 또 우물을 마지막으로 팠으니 브엘세바의 우물입니다. 여러분 참 재미있고 신기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을 조금 더 자세히 보십쇼. 이게 지금 신나고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 아니라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 우물을 파는 이야기는 그랄 사람들과 대 전쟁을 하면서 벌어진 결과물입니다. 18절 보십쇼. 지금 그랄에서 처음 판 우물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입니다. 이게 뭐가 문제가 될까요? 15절 보십쇼.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누가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막고 메웠을까요? 그랄 사람들이 아브라함 일행이 미워서 꼴보기 싫어서 다 막아버리고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지금 이삭이 이 우물을 다시 팠다는 것은 한번 해보자는 의미였습니다. 전쟁을 하자 그 의미입니다. 지금 이 곳은 그랄 땅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랄 사람들이 이 우물을 덮든 파든 이 권리는 그랄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삭이 이걸 다시 파게 되면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20절 맨 끝에 에섹이란 우물의 이름, 에섹은 다툼이란 뜻인데 원형이 아세크입니다. 아세크는 억압하다. 강탈하다, 불공평하게 취급하다라는 뜻입니다. 강제로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우리 아버지가 판 우물이니 억울하다 강제로 빼앗겼으니 내가 다 파서 억울함을 풀리라 하면서 우물을 팠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나오는 싯나도 다시 보십쇼. 싯나는 막 신나서 팠다고 싯나가 아닙니다. 광야에 내린 만나도 쇠고기 맛나의 맛나가 아니라 이게 뭐지? 해서 이게 뭐지란 뜻의 만나입니다. 여하튼 여기 싯나는 뜻이 대적함입니다. 그런데 원어의 뜻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더 심한 뜻으로 극도의 적대감을 가지고 대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삭이 그랄 사람들이 주인인 땅에 와서 외국인으로 와서 이거 내가 팠으니 내 땅이다. 바로 그런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통 오늘 본문의 해석이 이삭이 우물을 여기도 팠고 저기도 팠다 이삭은 온유한 사람이어서 다툼이 일어나면 또 다른 데로 피해 갔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우물이 계속 나오게 하셨다.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가 그동안 많았는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이러한 그랄 사람들과의 다툼과 싸움을 그치게 하는 22절을 면밀히 살펴보면 22절 전까지는 이삭의 욕심의 행동이었고 22절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이 비로소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22절 보십쇼.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여러분 르호봇은 무슨 뜻일까요? “장소가 넓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르호봇은 그냥 장소가 넓다라는 뜻이 아니라 원어가 라하브인데 라하브라는 단어는 누군가가 넓혔다는 뜻입니다.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넓혀서 장소를 넓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아예 장소를 넓혀서 싸움이 없도록 넉넉하게 만들어서 싸움을 그치게 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22절 중간에 문장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여러분 첫 우물 아브라함의 우물을 다시 파고, 싸워서 에섹을 파고, 극도의 대적의 마음으로 싯나 우물을 팠던 것까지는 철저히 인간 이삭의 생각과 분노와 인간적인 욕심 때문이었음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아까 처음에 말씀드린 욥기 37장까지의 내용처럼 욥이 친구들 엘리바스 빌닷 소발과 서로 싸우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했던 것처럼 인간적인 생각으로 어려움과 분쟁을 해결하려고 다투고 이게 우리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욥기 38장부터 41장까지 하나님이 등장하셔서 욥에게 교훈하시니까 고통의 이유에 대한 말다툼이 잠잠해지고 욥이 가지고 있었던 큰 의문과 반항의 마음이 없어진 것처럼 오늘 22절에 그랄 사람과 이삭 일행의 싸움, 이런 다툼과 인간의 이기심과 분쟁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시니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됩니다. 라하브 르호봇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넓으신 하나님 크신 하나님 깊으신 하나님께서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번성하게 되는 은혜의 결말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삶 가운데 잘 해결 되지 않는 인간들 사이의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돈 문제 잘 해결됩니까? 인간관계 잘 해결됩니까? 아직도 싸우고 있는 사람 없습니까?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해결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쪽도 아니고 반대쪽도 아니고 우리를 위하여 넓게 만드심으로 분쟁과 싸움을 그치고 평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여기까지 이제 르호봇에서 이삭은 하나님이 주시는 번성의 복을 누리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저는 생명의 삶 저자분들이 생명의 삶 책에서처럼 22절까지 끊지 말고 25절까지 끊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25절까지로 세 절을 늘렸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르호봇에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여기를 거점으로 삼아서 여기 정착하고 이삭 다음에 역사는 르호봇을 중심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23절 보십쇼.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여러분 이삭이 왜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번성한 그 좋은 르호봇을 떠나 브엘세바로 갔을까요? 이게 오늘 정말 중요한 문장입니다. 욥기 42장의 갑절의 복보다 41장에 욥이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했던 것처럼 이삭도 번성함, 르호봇의 물질의 풍요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브엘세바로 올라간 것입니다. 브엘세바는 어떤 곳입니까? 창세기 21장에 보면 20장에서 아브라함의 두 번째 실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해서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갔다가 하나님이 꿈으로 나타나셔서 깨닫게 하시고 죄짓지 않게 하심을 경험하고 아비멜렉과 종들이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 후에 21장에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운 곳이 바로 브엘세바였습니다. 맹세의 우물, 그래서 맹세하면서 아비멜렉과 비골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의 입으로 고백한 곳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증거된 곳,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증거된 곳, 거기가 브엘세바입니다. 이삭은 번성함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더 중요했기에 르호봇을 떠나 브엘세바를 찾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브엘세바로 가야합니다. 돈 많이 버는 장소,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 누가 봐도 눈에 보이는 좋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브엘세바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라보셨고 십자가 지시고 수도 없이 넘어지며 피흘리며 살점이 뜯기며 올라간 골고다 언덕은 바로 하나님이 계신 곳, 우리 죄인들을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아무 자격 없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최극의 장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습니다. 브엘세바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곳에서 바로 온 인류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25절 이삭이 브엘세바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이 가는 곳마다 브엘세바 예배의 장소, 십자가의 역사가 일어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