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구름과 바람과 길

새벽예배 2022.02.16 | 누가복음 12장 49-59절 | 이선기 목사



누가복음 12장 49-59절


49절.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절.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절.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54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절.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절.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절.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58절.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절.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월 15일 새벽 묵상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시간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시인 윤동주의 사후에 출판된 유고시집으로 1941년에 19편이 완성되어 시집으로 펴내려던 것을 일제의 검열을 우려하여 이루지 못하고 1948년이 돼서야 정음사에서 유작 30편을 모아 이름 지어 간행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 부분입니다.

윤동주는 빼앗긴 조국의 안타까운 현실을 마음에 담고 조국의 염원,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되찾기를 소망하면서 이 시를 지었습니다. 3.1절이 다가오는 요즈음, 두고 온 조국 대한민국의 해방의 기쁨, 구원의 기쁨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 시를 읽어드렸습니다.

이 시에서 윤동주는 하늘아래 떳떳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올바른 삶, 잃어버린 나라에 대한 괴로움, 소망의 상징인 별, 지금 내가 할 일은 사랑하는 것이구나 하는 그의 솔직한 심정과 마음가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이 윤동주의 서시와 아주 비슷한 부분, 바로 오늘 본문을 발견하고 참 신기했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그러나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했던 윤동주의 또 다른 시 “십자가”라는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 윤동주의 시상의 배경이 바로 오늘 본문이 아닐까, 즉 예수께서 표현하신 놀라운 자연의 근원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깨달음을 시인 윤동주가 먼저 배우고 깨달았으며 자신의 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불과 구름과 바람과 길”을 소재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윤동주에게 지대한 영향을 깨쳤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윤동주의 시집 제목처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생각하며 “불과 구름과 바람과 길”이라고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윤동주의 시보다 더 깊고 더 큰 차원, 즉 구원의 본질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는 정도의 구원이 아니라 한국을 넘어선 인류 전체의 영혼 구원을 간절히 소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한 영혼도 놓치지 않고 다 구원해 낼 수 있을까?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우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 지심으로 죽으심으로 비로소 활짝 열리게 될 구원의 길을 바라보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어제 엊그제 계속 말씀드린 대로 이게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이다. 즉 모든 영혼들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라. 너희들의 마음이 바로 영혼구원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되게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점검하시고 하나님 중심의 삶,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영혼구원 중심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인류구원을 소망하며 표현하신 것이 무엇인가?


1. 첫 번째로 불을 던지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49절 보십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여기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불은 우리 눈에 보이는 그런 불이 아닙니다. 왜 하필이면 많은 소재 중에서 불을 말씀하셨는가?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이 불은 주님의 구원의 사역 때문에 일어나는 믿는 자와 도무지 믿지 않는 자 사이에 갈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51절에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쟁하게 하려 함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또한 53절에는 부모가 자녀와 또 가족들 간에 온갖 분쟁하게 하려 함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분쟁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갈등이 당연히 일어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고 하면 구원의 열망이 생기고 갈등과 분쟁이 당연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불의 또 다른 의미는 예수님의 꺼질 수 없는 구원의 뜨거운 열망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던지러 왔노니”라는 표현, 헬라어로 “발레인 에피”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아주 역동적인 파워로 던지는 것을 나타낼 때만 쓰는 표현입니다. 50절에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여기에 세례는 물세례가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십자가 지고 곧 죽음에 이르도록 너희를 사랑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리니 가족들이 이 구원을 받아들이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여러 가지 갈등이 있을지라도 견디며, 불같은 마음, 역동적인 파워를 지닌 마음으로 원하노니 믿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노라 이게 예수님의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불을 받으라! 하면 성령의 불로 불로 하면서 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만 생각하는데 예수님이 하신 표현대로라면 구원받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을 당연히 여기고 구령의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이 또한 불의 참 의미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부르신 것, 불같은 사명, 꺼질 수 없는 하나님의 열정, 백성을 향한 사랑의 불길 바로 구원의 불길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한국에 있는 한국교회든지 미국에 있는 한국 교회이든지 간에 구령의 불길이 시들해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피켓들고 외치는 예수 천당, 불신지옥, 노방전도는 시대에 안 맞는다 자제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도의 모습은 많이 줄긴 줄어들었는데 문제는 사그러들지 말아야 할 구령의 열정까지 같이 줄어든 데 있습니다. 요즘은 팬데믹이라고 구령의 열정이 식어지다 못해 아예 얼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서 살려내시고 영생까지 주신 너무 큰 가장 큰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그 큰 사랑을 받으신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쉽게 식어지고 차가워질 수 있습니까? 엄청난 생명의 빚을 진 자인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습니까? 또 여러분께 이 말씀 드립니다. 가만히 있어서 가마니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알곡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다시 열정을 불태우시기 바랍니다. 구령의 열정으로 더 뜨거워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감리교 웨슬리 목사님은 가만히 앉아서 책 쓰신 분이 아닙니다. 쓰신 책이라고는 일기와 소책자 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말 타고 집회하고 영혼 구원하러 뛰어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회 마크 중에 말 탄 사람의 그림이 있는데 그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걸 모르고 경마장 표시냐? 암행어사 표시냐?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말타고 달리신 거리를 어느 학자가 연구해보니 지구 10바퀴 돌 정도의 거리다. 놀래시지도 않네요. 여러분 자랑스러워하시구요. 도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진짜 특징은 바로 영혼 구원 사회 구원, 열정적으로 개인과 사회를 구원해 내는 열정입니다. 신학적 논쟁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전도하고 집회하고 영혼 구원하고 그게 감리교의 본모습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 하셨는데 설교자만이 아닙니다. 함께 불타오르시기 바랍니다. 열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뛰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는 구름을 보고 바람을 보면서 미리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54절 보십쇼.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리니 과연 그러하고”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무서운 “소나기” 마지막 심판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종말론적인 표현입니다. 여러분 엘리야가 기도할 때에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고 나중에 큰 비가 되었다는 것 기억하십니까? 55절에도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역시 같은 표현입니다. 종말의 시기가 오고 있으니 깨어 준비하라 그런 말씀입니다. 56절 보십쇼. 정리해서 정확하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이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시대를 분간하여 이 땅에 마지막이 오고 있음을 기억하고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를 준비하며 사는 지혜로운 준비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57절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법대로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하지만 주께서 말씀하시는 옳은 것은 이 시대를 분간하고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사는 것 그게 옳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르게 사는 것은 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찰스 스윈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돌아오라 라는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날을 기다리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늘 하던 대로 하라. 매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라. 그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의 직장과 가정에서 부지런히 일하라. 날마다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빛을 비추고 균형 있고 명랑하며 안정된 삶을 유지하라. 그리고 만일 당신이 하늘에 올라갈 준비가 조금이라도 되어 있다면 구원 열차의 티켓을 단단히 붙잡아라 주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그 티켓은 거저 얻는 것이다. 미루지 말라.

오늘 새벽에 기도하실 때에 이 땅의 소망은 다 벗어버리고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으로 다시 뜨거워지시고 꽉 잡고 놓지 않으려는 것들 내려 놓으시고 참 소망을 붙잡은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길에서 지금 화해하라 하십니다. 앞의 말씀에 이어 그럼 시대를 분간하는 자들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자들이 지금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58절 보십쇼. “내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마지막 하나님 앞에 이르기 전에 무엇을 꼭 하라?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재판장에게 가고 옥에 가두기 전에 그 전에 길에서 화해하라. 여기에서 “길에서”라는 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있을 때를 의미합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누구와 화해하라는 것입니까? 우리들 가운데 이룰 화해도 있지만 우선 더 근본적인 화해,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그 화해의 제물로 주님께서 친히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입니다. 59절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즉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대에서 조그만 것이라도 철저히 낱낱이 하나하나 다 계산하시고 판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꼭 화해하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었으면 그 다음에 바로 우리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라. 여러분 아직도 화해하지 못하신 분 있습니까? 저 인간은 정말 꼴도 보기도 싫습니다. 여러분 심판대 앞에서 내가 한 말 그대로 내가 너를 정말 꼴도 보기도 싫구나 주께서 말씀하시면 뭐라 답하실 것입니까? 목사님 저 인간하고는 죽었다 깨도 화해가 안 됩니다. 주님께서 죽었다 깨도 안돼? 그럼 죽었다 깨지 말아라 그러시면 어쩌실 것입니까? 지금 화해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하는 물음에 예 제가 주님의 십자가 대신 지신 것을 믿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것을 드립니다. 구원받은 감격으로 땅에 미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그저 죄만 미워하는 제 마음을 이제 드립니다.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