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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 자, 보호받는 자

새벽예배 2023.08.14 | 사도행전 21장 27-40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21장 27-40절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새벽 묵상


징기스칸은 사냥을 위해 매를 데리고 다녔는데, 매를 사랑하여 마치 친구처럼 여기며 길렀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매를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자신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습니다. 가뭄으로 개울물은 말랐으나 바위틈에서 똑똑 떨어지는 샘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잔에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바람 소리와 함께 자신의 매가 그의 손을 쳐서 잔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할 때마다 매가 방해하자 징기스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칼로 매를 내리쳤습니다. 그는 죽은 매를 치우면서 바위 위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죽은 독사의 시체가 샘물 안에서 썩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살리기 위해 온 몸을 바친 매에게 너무 너무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화가 나면 이성이 마비되어 평상시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합니다. 노한 사람은 대개 나중에 후회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친한 친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화가 난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계속 큰 소리로 떠들어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내의 분노를 애써 무시하고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커다란 물통을 들고 거실에 들어오더니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물을 확 쏟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봉변을 당한 소크라테스는 수건으로 천천히 물을 닦아내며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너무 놀라지 말게. 천둥이 친 후에는 반드시 소나기가 내리는 법이라네.” 이 한 마디에 친구는 손뼉을 치며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고 아내도 이렇게 참아내는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화를 누그러뜨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은 독사를 보지 못하고 분노함으로 애꿎은 매를 죽이고 만 징기스칸 되지 마시고 분노하는 자 앞에서도 침착하며 껄껄 웃음으로 누군가의 쿠션이 되어주는 소크라테스 같은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바울을 미워하며 죽이려고 하는 분노에 찬 열성 유대인들과 그런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도 신비한 손길을 보내셔서 바울을 구출하시는 하나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족한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본문입니다.

어제 본문에서 이미 보셨듯이 그렇게 많은 이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사명감 붙들고 예루살렘에 들어간 바울은 비용을 들여서 유대인들의 결례를 행함으로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거리낌의 문제를 초월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번 미워하면 뭐든지 미워 보이는 법, 바울이 율법을 폐기하고 할례를 금지시키는 신성 모독자라고 비난하기를 쉬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마침내 기회를 틈타 결국 사도바울을 체포하게 됩니다. 30절 보십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바울을 체포한 이들은 그저 바울을 잡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31절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여러분 사람의 본성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그냥 미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죽이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미움이란 감정을 무시하지 말아햐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움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이렇게 살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절체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마치 셀라하마느곳, 다윗이 정말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사울이 바로 앞에 다윗을 포위했을 때 뒤에서 블레셋이 쳐들어 왔다는 보고를 듣고 사울왕이 어쩔 수 없이 돌아서게 된 것처럼 31절 후반부에 이 죽음의 위기에 처한 바울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은 천부장을 보내십니다. 1000여명의 병력을 총괄하는 로마군 장교, 뒤에 사도행전 23장 20절에 보면 이 천부장의 이름이 나오죠. 글라우디오 루시아 천부장, 32절에 이 천부장의 도움으로 결국 바울은 생명을 부지하고 전화위복, 오히려 화가 복이 되어 35절에 나오는 층대, 즉 계단에 오르게 되어 40절 층대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을 폭행하고 박해하는 그 계단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선교의 현장, 복음 전파의 강단으로 변하게 하십니다. 40절 보십쇼.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17세기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벵겔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울의 세계 복음화 사역은 유대인 폭도에게 붙잡히는 바로 그 순간에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18절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사도바울의 마음과 모든 시각은 고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오직 복음 전파에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좀 더 분명하게 자숙하면서 심각하게 깨달을 것은 이 몹시 분노한 열성 유대인들의 모습이 혹시 우리에게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을 것은

1. 첫 번째로 이 바울을 죽이려하는 유대인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들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7절 보십쇼.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여기서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아시아는 아시아 주의 수도인 에베소를 가리킵니다. 즉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은 무려 3년 동안 사도 바울의 복음을 들은 이들이었습니다. 10여 년의 복음을 사역을 통틀어 3차례나 들어 갔던 곳, 바울이 한 곳에서 3년씩이나 체류하며 혼신의 힘과 정열을 쏟은 도시가 바로 에베소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수고에도 불구하고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은혜는 까마득히 망각한 채 사도 바울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것, 그것도 유대인들을 위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되어 영혼을 구원하려고 일부러 비용을 들어 결례를 행하는 그 마지막 날 아주 보란 듯이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작정하고 바울을 잡아 죽이려 했다는 사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혹시 돈되는 일이면 언제든지 금방 배신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고 찍히는 자의 모습, 형제 사이에도 배신하는데, 부모와 자식 간에도 배신하는 데, 혹시 교회 안에서도 이런 배신이 난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가 그래 하실 것 없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도저히 믿을 존재가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이 유대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서슴없이 행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 위해 두 가지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28절 보십쇼.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철저한 민족 우월 의식과 선민 의식, 모세의 율법과 하나님의 성전을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모독한다는 것”보다 유대인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이를 알고 의도적으로 바울을 거짓말로 누명 씌워 비방했다는 사실, 약 25년 전에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모독한 구실로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집사님처럼 똑같이 바울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거짓말로 죄를 뒤집어 씌우는 이들의 모습,

혹시 저와 여러분 중에 이렇게 단지 누가 전해 준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더 뒤집어 씌우는 분 있지 않습니까? 여기 유대인들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29절 보십쇼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데리고 즉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고 한 것 또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 사이에는 두터운 높고 두터운 담이 있어서 그 경계가 명확했으며 로마 총독의 관인이 찍힌 이방인 출입 금지 팻말이 분명히 있어서 도저히 그런 출입은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려고 하니 별애별 소문을 다 내고 다녔던 이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 몇 달 전에 이 말씀 드린 것 같습니다. 교회 교사 사무실에서 한 남자 청년과 여자 청년이 서로 보고 웃었을 뿐인데 이를 창문으로 본 집사님 한 분이 속회에 가서 소문을 냈습니다. 둘이 손잡았대..둘이 좋아한대..이 소문을 들은 입 가벼운 별명이 방송국인 김 권사님이 선교회 가서 다 말하고 다니셨습니다. 둘이 동거한대, 둘이 애기 가졌대.. 결국 2주 후에 보니까 담임목사님 귀에 이런 소문이 들려왔는데 두 청년이 그렇고 그런 사이다 속도위반이다... 결국 두 청년의 부모님과 두 가정 다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습니다. 지금 내 자신의 입술이 혹시 그런 거짓말, 왜곡, 첨가...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3장 8절,10절에 “혀는 능히 길들이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했는데 지금부터라도 그런 모습을 버리고 말을 아끼고 사실 확인하지도 않은 채 오해하고 퍼트리는 것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허물이 있으면 덮어주는 자, 품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 바뀌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이들은 분별력이 없이 부화뇌동했으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기를 즐겨하는 이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선동에 동요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무슨 일로 성내에 모여 그 이유도 모르고 소동을 벌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천부장의 질문에 이들이 횡설수설합니다. 33절 보십쇼.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치거늘” 그저 옆에서 소리지르고 선동하니까 덩달아 이유도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같이 소리지르고 행동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앞에 19장에 에베소에 연극장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잡아들고 소리치는 군중들과 똑같습니다.

우리들도 혹시 이런 모습 아닙니까?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그저 군중에 휩싸여 남들이 많이 가는대로 분별력 없이 따라가고 행동하는 것, 이런 것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무죄한 사도바울을 체포한 유대인들은 바울을 공정하게 심문하거나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단번에 바울을 죽이기 위해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거룩한 성전에서는 사람의 피를 흘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을 죽이기에 혈안이 된 유대인들은 로마 경비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비대에 붙들린 바울을 좇아가면서 계속해서 36절 “그를 없이 하자”하고 외치며 따라갔습니다. 잠언 1장 16절에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 이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마치 27년 전 빌라도 총독을 향해 저 예수을 없이 하소서 외치던 이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어 달라고 외치된 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가? 혹시 그 열심이 바울을 죽이는 일에 열심인 유대인들의 모습은 아닌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에서 떠나시고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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