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8.30 | 사도행전 28장 11-22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28장 12-22절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전도하고 계십니까? 복음 전하고 계십니까? 부담스러운 질문에 갑자기 조용해지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사도의 권리에 대해 말하면서 16-23절에 복음 전하는 자세에 대하여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즉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부득불 할 일, 즉 전도는 복음 전하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꼭 해야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만나주신 부활의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에 감사하여, 구원받은 감격으로 갚을 수 없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얼마나 투철한 열정입니까?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이제는 더 이상 이 땅에서 받을 상, 눈에 보이는 상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이 주실 상급 때문에 값없이 전한다.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것보다 더 큰 상이 어디 있으리요? 이게 바울의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당장 눈앞에 이 땅에 보이는 상 말고 영원히 받고 누릴 상급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그 사람 같이 되어 주는 것이 영혼 구원하는 데 필수라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사람의 옷을 입고 중국 사람처럼 먹고 중국 사람과 똑같이 살았기 때문에 중국의 복음의 꽃이 크게 피었던 것처럼, 다미안 신부가 나병 환자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나병 환자가 된 것처럼 최대한 그 사람 같이 되어 주는 것이 중요한 복음 전하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확실하게 복음을 전하고자 마음이 불타오르는 바울은 오늘 본문 이제 거의 로마에 다다르게 되면서 마지막 혹시 그의 이 땅에서의 삶이 이 로마에서 다하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 열정이 꺼지지 않고 실제로 계속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심장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일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주님 이제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로마에 이르게 됩니다. 비록 죄인의 몸으로 상소하여 로마에 들어서게 되지만 여태까지 오는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가는 곳마다 신기하게 복음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시는 것을 보면서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끝까지 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마음으로 로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죽고 싶습니까? 그냥 늙어서 죽고 싶습니다. 병들지 않고 죽고 싶습니다. 자다가 죽고 싶습니다. 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저와 여러분은 다른 대답을 하시기 바랍니다. 복음 전하다가 가고 싶습니다. 아멘 하시는 분이 없는 것 같은데.. 한 영혼이라도 더 주께 인도하다가 가길 원합니다. 이런 소망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 복음 전하는 자 되기를 소망하는 자로서 얻을 첫 번째 교훈은 1. 복음 전하는 자는 이 땅에 정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부터 14절까지를 보십쇼. 바울이 로마로 들어가는 여정에 뭐 계획된 대로 되거나 정해진 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11절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즉 멜리데 섬에서 3개월 정도 머물다가 다시 로마행 길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실제로 이 때가 AD 61년 2월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멜리데 섬에서 출항하여 어디로 갔습니까? 12절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수라구사는 시실리 섬의 수도요 항구 도시입니다. 멜리데 섬에서는 약 136km 떨어진 곳이 수라구사인데 여기서 3일동안 잠시 정박하게 됩니다. 13절 거기서 둘러가서 즉, 직선 항로를 택하지 않고 진로를 바꾸어 갔다는 것입니다. 극심한 바람 때문에 항로를 돌아서 갔다는 것, 13절 이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이 때는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시기였기에 자연의 불규칙적인 현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남풍이 불기에 다시 떠나가야 했습니다. 14절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감사한 것은 백부장 율리오의 호의로 그래도 바울은 이렇게 일주일 정도 보디올에 체류하면서 성도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일주일이나 같이 있는 형제들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14절 끝에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로마에 들어가기 직전에 보디올에 체류하고 있었다가 마지막 드디어 로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바울의 로마로 가는 여정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공간적으로도 그렇고, 어느 것 하나 안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석달을 머물러야 할 때도 있었고 일주일을 머물 때도 있었으며 바람 때문에 더 머물고 싶지만 바로 가야 할 때도 있었다는 것, 시간적으로 뭐 정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의 인생 여정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저는요 이 미국 올 때 2009년 12월에 오면서 딱 10년만 살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집사람과 생각했었습니다. 10년이 된 2019년에 보니까 한국으로 다시 짐 싸가지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결심했습니다. 여보 하나님이 그냥 여기서 복음 전하면서 살라고 하시나보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합니다. 공간적으로 그렇습니다. 바울이 지금 여기서 저기로 또 저기서 다른 곳으로 계속 이동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복음 전하는 자는 어디 한곳에 정착하여 편안하게 사는 삶이 아닙니다. 저는요 결혼 전에 어머니, 누나, 여동생하고 살면서 이사를 23번 했습니다. 놀래시지도 않네요. 집사람하고 결혼해서 결혼 20년 동안 한국에서 9번 여기와서 5번, 총 14번 했습니다. 정확한 건 집사람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여하튼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니까 이사를 총 37번 했습니다. 정말 안 놀래시네요. 다 30번 이상 이사하셨다는 거죠. 정말 이사 많이 하다 보니 이사하는 것은 도가 텄습니다. 박스 뒤에 붙이고 띄는 것 아주 선수가 되었습니다. 뭘 깨닫습니까? 어디든지 갈 준비, 이 땅은 완전한 정착지가 아니라는 사실, 복음 전하는 자는 평생 어디 집착하지도 않고 정착하지도 않는 나그네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8장 20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복음 전할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하시기 바랍니다. 어디 정착하는데 너무 힘을 많이 쓰다가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장소도 그저 잠시 머물 곳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보이지 않는 곳 갈 준비를 항상 하시면서 지금부터라도 복음 전하는 자로 사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복음 전하는 자는 믿음의 형제들의 위로로 힘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15절을 보십쇼. “그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여러분 언제 오는지 정확하게 시간도 제대로 알 수 없고 장소도 내 맘대로 갈 수 없고 복잡한데 이 때는 핸드폰도 없고 이메일을 보낼 수도 없는 시대에 이렇게 바울이 로마로 오는 것을 알고 바울을 마중하러 나온 형제들이 있었다는 것, 이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에서 “맞으러 오니”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아판테신”인데 이 아판테신은 어떤 도시의 대표단이나 왕 혹은 장군을 맞이할 때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에 사는 성도님들이 바울을 위대한 사도로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환영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무슨 연애인이어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환영했을까요? 돈을 줬나요? 아니었습니다. 돈보다 더 귀한 돈으로 살 수 없는 복음을 전해 준 생명의 은인, 영생의 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복음 전한 사람이 언젠가 휴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복음 때문에 변화되어 세례받는 순간의 그 기쁨을 아십니까? 내 자식보다 더 이뻐 보이는 그 감격을 아십니까? 세례받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 집사님 되실 때의 기쁨은 정말 한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뿌듯한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이들이 서로에게 주는 감동과 은혜, 이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지금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 올지도 모르는 로마에 도착했는데 로마의 믿음의 형제들을 보는 그 순간 모든 작은 두려움까지도 다 사라지고 더할 수 없는 기쁨과 힘을 얻었을 바울, 15절 끝에 다시 보십시오.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저와 여러분들 믿음의 동역자들이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서로를 통해 담대한 마음이 생기시길 바랍니다. 저에게 가끔 목사님, 저 사람은 보면 볼수록 꼴보기 싫어요.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본인도 그 사람이 볼 때 꼴보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미움의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미운 마음이 자꾸 생기면 지금 주님과 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날 때마다 감사가 넘쳐나고 서로 담대한 힘을 얻게 하는 에너지 충전기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복음 전하는 자의 복음 전파는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사실입니다. 멜리데섬에 도착함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바울은 독사에 물렸는데도 살게 되고 보블리오 부친의 병도 낫게 하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마 여기서도 복음 전하라는 겁니까? 맞았습니다. 멜리데 섬에서도 하나님은 그 원주민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놀랍도록 복음 전파의 여정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지금 로마의 믿음의 형제들과 일주일간에 위로의 시간을 보낸 바울 17절부터 다시 복음 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7절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담대하고 정확하게 자신이 로마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전하게 됩니다. 바울은 또 마음속으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 이 순간이 바로 로마의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에게 복음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구나. 복음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전도는 총력 전도 주간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복음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늘 밥 먹을 준비만 하시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여러분 누구를 만날지 모릅니다. 멀리 선교지로 꼭 나가야만 꼭 선교가 아닙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 내가 만나는 누군가에게 복음 전할 준비를 하고 있으시길 바랍니다.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복음 전하는 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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