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3.14 | 사무엘상 22장 11-23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22장 11-23절
11.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16.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23.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새벽 묵상
우리는 어제 새벽에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함께 나누며 도망자였지만 리더였던 다윗의 모습과 왕이었지만 보스였던 사울의 모습을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리더는 그 주위의 사람들이 모이나 보스는 있는 사람도 떠나가게 한다. 리더는 사적인 것에도 성실하다. 리더는 사람 살리는 사람이다. 보스는 다른 사람 죽여서라도 나만 살면 그만인 사람이다. 기억나시죠? 오늘은 그에 이어 다시 한 번 또 다른 시각에서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살펴보며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어제 후반부에 살짝 말씀드렸지만 사울왕에게 간신이었던 에돔 사람 도엑은 다윗이 놉에서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이 도움을 주어 음식도 주고 골리앗의 칼도 주었다고 고자질을 합니다. 분명히 왜 그렇게 아히멜렉이 다윗을 돌보았는지도 들었을 텐데 다윗이 거짓말로 사울왕이 보내서 왔다 하고 아히멜렉에게 도움을 요청했기에 아히멜렉이 먹을 것을 나누어 준 것인데 그 앞 뒤 상황은 딱 잘라버리고 지금 다윗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의 마음에 분노의 불길을 일으킨 도엑, 결국 사울왕은 아히멜렉과 그의 가족과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다 소환하게 됩니다. 11절 보십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사울왕이 다윗을 보낸 줄로만 알고 잘 섬겼던 아히멜렉 일행은 왕에게 소환되어 사울이 묻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14절 보십쇼.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가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결국 이 대답 때문에 16절 왕이 아비멜렉 일행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도엑이 간신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16절의 왕이 아히멜렉 일행을 죽이라는 명령에 주저 없이 그대로 아히멜렉과 제사장 85명과 그 모든 것들을 처형했다는 사실입니다. 도엑이 어디 사람이었다구요? 어제 본문 9절 보십쇼.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17절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제사장 죽이는 것을 싫어하는 데도 도엑은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내 민족도 아니고 그저 재물에 눈이 어두웠고 간신배였던 도엑은 여지없이 학살을 단행합니다. 딱 한명 놉에 머물러 있던 아히멜렉 제사장의 아들 아비아달만 가까스로 놉에서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게 됩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오늘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보스였던 사울왕은 오해하고 상상하여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상상을 하게 하고 비극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13절 보십쇼.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였느냐 하니” 사울의 오해와 상상의 모습입니다. 다윗이 매복하였다가 사울왕을 치려고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15장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와서 당신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하고 비난합니다. 사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이 따르는 주님의 모습에 꼬투리를 잡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장로들의 전통을 언제 어기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옳거니! 이걸 잡고 공격하면 되겠구나! 하고 제자들이 씻지 않았다고 주님에 대하여 공격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마태복음 15장 18절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바리새인 서기관들 너희들 지금 제자들을 입으로 비난하는데 그건 너희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손이 더러운 게 더러운 게 아니라 너희들 마음이 진짜 더럽구나 하시는 지적이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상상을 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히멜렉과 일행을 학살한 사람 도엑, 그 이름에서 왜 도엑이 간신짓을 하고 심지어 학살까지 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추론하게 합니다. 도엑은 “염려함”이란 뜻입니다. 염려가 무엇입니까? 염려 역시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상상을 하게 되고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이 어떻게 못된 짓을 저지르나 지켜보다가 이거로구나 하고 쪼로로 사울왕에게 가서 간신배 역할을 하고 대 학살을 저지른 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
몇 년 전에 수요예배 때 말씀드렸었는데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하는 집사님 한 분이 교회 청년회장하고 부회장하고 교회 사무실에서 서로 웃으며 이야기한 것을 보고 속회 가서 소문을 냅니다. 아무개 하고 여자애 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래. 그랬더니 그 속회에 있던 남의 소문 내길 좋아하는 권사님 여선교회에게 가서 또 소문을 전합니다. 아무개 하고 여자애 하고 결혼 날짜 잡았대. 그랬더니 또 다른 부풀리는 것 좋아하는 입이 너무 가벼운 집사님 담임목사님 사모님께 가서 이렇게 전합니다. 아무개 하고 여자애 하고 몰래 아기를 가져서 결혼을 서두른대요. 알고 계시나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남자 청년회장 여자 부회장 그리고 그 청년들의 부모님들 전부 다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상상이 무서운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셨습니다. 마음이 부정적이 되지 않도록 지키시고 생명을 살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또 하나 사울왕은 혈기 때문에 결국 억울하게 제사장들, 어린 아이들 심지어 가축들까지 학살시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4절과 15절과 16절을 보십쇼. 아히멜렉이 사울왕에게 다윗을 대변하며 14절에 그토록 충실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왕의 사위요 왕의 호위대장,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바로 다윗 아닙니까? 열심히 다윗을 칭찬하고 있는데 15절 심지어 제가 다윗을 돌보며 하나님께 물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동안 여러 번 이런 일을 했습니다. 왜 오늘 부정적이 되셨습니까? 저는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천천히 세세하게 솔직하게 잘 이야기 했는데 사울왕의 귀에는 아히멜렉이 말한 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생각이 이미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은 16절 가기 전에 흥분하지 말고 혈기 부리지 말고 좀 더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처음에 놉에 와서 뭐라고 말했느냐? 말한 그대로 한 글자도 빠트리지 말고 다 자세히 말해 봐라. 이랬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거짓말한대로 사울왕이 보내서 왔습니다 하고 자세히 말했다면 그 다음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15절과 16절 사이에 좀 더 침착하게 확인하지 않고 사울왕은 바로 처형 명령을 내립니다. 사실은 처형 명령은 반드시 2명 이상의 증언이 있어야 되는데 그 당연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바로 사형! 여러분 혈기와 분노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혈기와 분노가 제어가 되지 않으니까 성급함이 생기고 억울한 죽음의 학살현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18절 끝에부터 19절까지 도엑이 사울왕의 명을 받아 아히멜렉 제사장 일행을 죽이는 모습을 보십쇼.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19절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잔인해도 너무 잔인합니다.
여러분 다윗도 혈기와 분노 때문에 급하게 부자 나발을 바로 죽이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나발의 아내가 바로 음식을 싸가지고 다윗과 군사들이 달려오는 길목에 이르러 학살을 막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인은 이 혈기 때문에 급하게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지 않습니까? 자기 동생도 죽일 수 있는 것이 이 혈기와 분노입니다.
히틀러가 2 차 세계 대전 때 망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의 혈기와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했을 때 히틀러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평소 그는 부관에게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깨우지 말라고 명령했으므로, 부하들은 히틀러의 혈기가 무서워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을 감행하였을 때, 소련군의 기갑 사단만 그쪽으로 돌린다면 상륙을 저지 할 수 있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잠든 히틀러를 깨우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히틀러가 한참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완전히 상륙하여 진지를 구축한 뒤였고, 이로 인하여 독일은 패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혈기를 다스리고 분노를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보스였던 사울왕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오해하고 혈기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행동하여 살해를 하고 말았는데, 사울왕과 너무나 다른 리더 다윗의 모습을 보십쇼. 3. 아히멜렉과 그 일행의 죽음을 괴로워하며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20절 다행히 죽은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도망하여 다윗에게 가게 되고 21절 사울이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는데 22절 다윗이 하는 말을 들어보십쇼. 22절 앞부분은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내가 그럴 수도 있겠다 걱정했는데, 뒷부분이 중요합니다.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여러분 이게 바로 리더 다윗의 모습입니다. 보스는 네 탓이라고 하는데 리더는 내 탓이라고 한다. 그 말이 딱 맞지 않습니까? 리더는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부하의 잘못을 나 때문이라고 내 탓이라고 앞장서서 말하고 책임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리더입니다.
백성들 수백 명이 도망자 다윗을 따랐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다윗을 도왔던 이들이 많이 있었던 것 다윗이 진실한 리더였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순신의 리더십 중에 가장 중요한 것 다름 아닌 백성의 잘못을 바로 내 탓이라고 안고 가는 그 리더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잘못을 내 탓이라고 책임지는 리더에 우리는 감동하는데 우리 모두의 죄를, 인류의 모든 죄를 바로 내 탓이라고 하시면서 참혹한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대신 죽어주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 주님 리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리더 되시는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본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다 내 탓이니라. 다 내 탓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