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3.13 | 사무엘상 22장 1-10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22장 1-10절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새벽 묵상
사순절 기간입니다. 이 사순절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부활절 전 40일간을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경건하게 지내시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세상에서 더럽혀진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으시고 가장 깨끗하신 분, 가장 고귀하신 분, 최고의 지도자 즉 리더 되시는 주님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이 “리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아십니까? 리더라는 말과 보스라는 말은 둘 다 지도자를 표현하는 말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한번 들어보십쇼.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요 그 중에 하나입니다. “리더와 보스의 차이”
1. 리더는 ‘우리가 했다’고 하고, 보스는 ‘내가 했다’라고 한다
2. 리더는 ‘나를 따르라’하고, 보스는 ‘네가 앞장서라’라고 한다
3. 리더는 믿고, 보스는 의심한다
4. 리더는 ‘비젼’을 제시하여 이끌고, 보스는 ‘겁’을 줘서 몬다
5. 리더는 ‘싹’을 기르지만, 보스는 ‘싹’을 자른다
6. 리더는 먼저 듣고, 보스는 먼저 말한다
7. 리더는 ‘덕’으로 이끌고, 보스는 ‘힘’으로 민다
8. 리더는 ‘내 탓’이라 하고, 보스는 ‘네 탓’이라 한다
9. 리더는 ‘공감’시키지만, 보스는 ‘공유’시킨다
10. 리더는 ‘읍참마속‘하지만, 보스는 ’토사구팽‘한다
읍참마속 즉 리더는 “법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리지만 토사구팽 즉 보스는 필요가 있을 때는 잘 쓰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매정하게 내버린다”
11. 리더의 원칙은 ‘남도’ 알지만, 보스의 원칙은 ‘자신’만 안다
12. 리더는 자기를 던져 부하를 구하고,
보스는 부하를 던져 자신을 구한다
13. 리더는‘후보자’를 키우고, 보스는 ‘후계자’를 키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리더로 살고 계십니까? 보스로 살고 계십니까? 소망하기는 리더로 사시길 바랍니다. 가깝게는 부부관계에서도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리더가 되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리더가 되시길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되어 모임이 살아나고 생기있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보스가 아니라 리더가 될 수 있는가?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경 어느 인물에서보다 확연히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리더인 다윗과 보스인 사울입니다. 다윗은 지금 사울왕을 피해 생명을 유지하고자 도망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로 앞장 21장에서 다윗은 놉 땅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서 거짓말하면서 음식과 무기를 받기도 하고, 블레셋 가드왕 아기스에게 가서 미친 체하면서 참 비참하게도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다윗, 그런데 그렇게 불쌍한 도망자인데도 리더의 모습이 보입니다. 반면 사울왕은 북한의 김정은 같습니다. 고모부이며 북한의 제 2인자인 장성택을 숙청한 것처럼 사울왕도 지금 자신의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을, 리더인 다윗을 지키시고 인도하셨다는 사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도 어떤 비극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견디고 있으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리더와 보스의 차이는 무엇인가?
1. 첫 번째로 리더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지만 보스는 있는 사람도 떠나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장에서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 갔을 때 미친체하며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그 곳에 오래 있을 수 없어 이제 1절 아둘람 굴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 즉 모든 가족들이 아둘람굴로 찾아와 그와 함께 합니다. 아마도 사울의 박해가 다윗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일가에게까지 미쳤을 것입니다.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2절 보십쇼. 가족과 일가만 온 것이 아닙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그 모인 사람들을 보니 2절 끝에 사백명 가량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치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처럼 사울의 폭정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이 다 탈출하여 아둘람 굴로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은 단지 사울왕의 폭정이 고통스러워서 어디론가 도망가다가 우연히 다윗에게로 가게 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사랑하는 리더를 찾아간 것입니다. 사무엘상 18장 16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출입했다는 것은 즉 많은 이들을 위해서 공적 임무를 수행했다. 많은 공을 세웠다는 뜻으로 다윗은 모든 이들의 칭송과 사랑을 받을 정도로 처음부터 백성들을 위한 공을 세우며 백성들을 돌보고 이끄는 사랑 많은 리더였다는 것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사랑 많은 리더였기에 사람들로부터 자동적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았던 리더 다윗, 다윗은 도망쳐온 이들을 싫다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친형제처럼 위로해 주었습니다. 환난당한 자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이게 리더의 리더다운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옛말에 덕불고 필유린이란 말이 있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들이 있다. 사람들이 모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덕이 없고 자기 고집만 센 사람은 사람들이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있는 사람도 떠나는 사울왕의 모습을 보십쇼. 8절에 신하들에게 호통치는 포악한 사울왕의 모습입니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며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여기서 하나도 없다는 표현 신하 중에 진실하게 사울왕 곁에서 말해주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표현입니다. 즉 사울왕이 무서워서 곁에 있을 뿐이지 그를 진심으로 가까이 하는 이들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자꾸만 내 곁에 사람들이 모여들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많으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아! 나는 리더의 은사가 있구나! 리더의 기회가 있구나!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나랑 있는 것 하나 둘 싫어하고 꺼리고 떠나가면 가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지 않고 바로 내게 있는 것입니다. 내게서 원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무 말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고집이 세다거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바꿔야 합니다. 저는 많지 않은 나이이지만 장례식 집례를 참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장례식을 많이 집례해 보니까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요. 직접 눈으로 보며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특별히 장례식에 놀라는 것은 참 별 볼일 없는 분인 줄 알았는데 가난하고 연약하고 가방끈도 짧고 여러 가지 힘든 삶을 사셨던 분이인데 찾아오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진심으로 울어주는 분이 얼마나 많은지..그런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정말 으리으리하게 부자로 사시고 정말 배운 것도 많고 정말 풍족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춘 분이었는데 장례식에는 왠걸 썰렁하고 냉랭한 장례식이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차이가 무엇인가? 모든 것이 힘들고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리더로 살았던 사람이 있고, 모든 것이 풍족했고 다 가진 것 갔지만 보스로 살았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으뜸가는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네 마음과 뜻과 힘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만 잘 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리더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들고 내 이웃과 한 몸이 되는 삶, 로마서 12장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삶”이 바로 리더의 삶임을 기억하시고 그런 리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리더는 사적인 것에도 성실하지만 보스는 사적인 것에서도 사람답지 않다는 것입니다. 3절에 다윗은 모압 미스베로 갑니다. 모압왕에게 부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왜 모압왕에게 가서 부모님을 맡기며 부탁했을까요?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다윗왕의 증조모가 누구입니까? 룻입니다. 이방 땅 모압 여인 룻이 오벳을 낳고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가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다윗 가문은 모압 사람과 다소 긴밀한 혈연관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압왕에게 부모님을 부탁하는 다윗, 다윗이 얼마나 사적인 부분에서도 부모를 공경한 마음 따뜻한 아들이었음을 살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적인 것에만 너무 치우쳐 욕심을 내는 것은 보스의 모습이지만 사적인 부분에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 중요한 리더의 특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리더는 내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믿음으로 잘 길러내는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하기 전에 나를 낳아주신 육의 부모님을 먼저 공경하는 언행일치의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반면 사울왕 보십쇼. 다시 8절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우리는 여기서 사울이 요나단과 얼마나 힘든 관계였는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목숨을 걸고 아버지의 잘못됨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전혀 듣지 않는 사울왕, 자식과의 관계가 많이 틀어진 사울왕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에 사무엘상 18장에는 딸들 메랍과 미갈의 결혼을 이용해서라도 그저 다윗을 이용하고 경계했던 사울왕, 여러분, 우리는 자칫 자녀는 내가 낳았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낳았으나 시편 127편 3절에 분명히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낳았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에 하나님이 주신 존재가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게 잠깐 맡기신 존재들이지,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내 소유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무리 요나단이 바른 말을 해줘도 딸들의 이야기도 듣지 않습니다. 사적인 모습이 전혀 사람답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보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달라스 가정 사역원 이화진 목사님은 부모는 자녀의 ‘첫 번째 교사’이자 인생의 ‘영원한 멘토’라고 하셨습니다. 자녀에게도 배울 수 있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적인 것에도 성실한 리더 그리스도인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리더는 살리는 것에 열심이지만 보스는 죽이는 것에 열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왕의 모든 관심은 다윗을 죽이는 데 있었습니다. 처음 왕이 되었을 때의 겸손함은 다 없어지고 자기 자리에 대한 욕심과 질투심으로 보스가 된 사울왕 7절 보십쇼.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이새의 아들이란 표현은 다윗에 대한 비난의 표현입니다. 내 사위라고 하든지, 그냥 다윗이라고 하면 될 텐데 가장 깔보는 태도로 시골 출신 이새의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얼마나 다윗이 미웠으면 이랬을까? 오직 사울의 마음에는 다윗 죽이려는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 9절과 10절에는 다윗에게 먹을 것과 골리앗의 칼을 준 제사장 아히멜렉을 야비하게 고발하는 간신 도엑의 모습이 발견됩니다. 결국 이 간신배의 고발로 18절 19절에 대 살해극 제사장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들 그리고 그들의 성읍 놉의 남녀, 아이들, 심지어 젖먹는 자들, 소와 나귀와 양까지 다 죽게 됩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사울왕이 이렇게 죽이는 자였으나 다윗은 내가 어찌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죽이겠냐고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어도 살려줍니다.
여러분 리더는 살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사람 살리는데 영혼 살리는데 있습니다. 영혼 구원은 총력전도주일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순간 순간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기억하면서 날 구원하신 은혜를 되새기며 하고 또 해야 할 일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40일을 따라가면서 우리를 통해 영혼구원의 역사가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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