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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 2023.02.22 | 사무엘상 16장 1-13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16장 1-13절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교회에서 배우는 하나님에 대한 단어들 중에 신기한 단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삼위일체라는 말이고 또 하나는 “거룩하시다” 라는 표현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 trinity는 “한 분이기도 하시면서 세 분이시다, 셋이시면서 하나이시다”라는 말인데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이와 같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셋이면 셋이고 하나면 하나지 셋인데 하나이기도 하는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여러 종교들처럼 우리 인간이 만든 어떤 종교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우리를 지으신, 우리의 생각과 사고를 초월해 계신 분이라는 것, 이 신비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느끼며 우리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 다른 단어 “거룩”이라는 말, 히브리어로 “카도쉬”, 헬라어로 “하기오스”라는 말은 이사야 6장에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에 나오고,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계속 외워서 기도하는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에도 나옵니다. 주기도문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문장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거룩하시다" 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긴다는 말은 하나님이 피조물과 얼마나 다른 분인지를 안다는 뜻이며, 그분의 위엄과 영광에 합당하게 그분을 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라는 말이나 거룩이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우리가 꼭 깨달아야 할 것은 아!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하나님과 나는 다르구나! 라는 깨달음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초월해 계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시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이런 깨달음으로 평생 동안 그 위엄 앞에 존귀와 영광을 돌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은 나와 다른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고, 내가 판단하는 것과 다르고 내가 보는 것과 다르신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오늘 본문에는 블레셋과의 믹마스 전투에서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두 번이나 하나님께 순종할 기회를 저버린 사울왕을 안타까워하며 슬퍼하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서 우리와 다르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와 어떻게 다르신가?


1. 첫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처럼 사사로운 감정에 연연하시는 분이 아니라 공의로우시며 하나님의 사람을 찾으시고 그를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유명한 공의의 선지자 뽕나무 재배자, 목자출신의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의 진리를 외치는 자로 삼으신 하나님, 아모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특징을 드러내십니다. 잘 아시는 구절 아모스 5장 24절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개역성경에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어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가장 의로우신 분, 가장 정의로우신 분, 온 천지에 하나님의 공의가 흘러간다는 표현입니다. 사람은 인맥에 연연하고,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해 드러나는 죄도 감추려고 하고, 객관적이 되지 못하고 편협적이고 불공평하게 되기 쉬운 존재인데 하나님은 그런 사사로운 분이 아니요, 편파적이지 않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2002년 우리나라 월드컵 4강의 주인공이 누구였습니까? 축구 감독 거스 히딩크였습니다. 그가 잘 한 것이 바로 선수를 기용하는데 사사로운 혈연 지연, 줄과 빽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소치 올림픽에서 피겨여왕 김연아의 판정이 문제가 된 것 기억하십니까? 러시아의 빽이 든든한 소트니코바가 금메달을 적절치 못한 판정으로 가져갔다는 것 역시 사사로운 인간의 줄과 빽에 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또한 국적을 바꾸고 금메달을 세 개나 딴 러시아 선수가 된 스피드 스케이팅 안현수 선수 이야기도 무슨 문제였습니까? 한국 빙상연맹에 여러 가지 이권과 인맥과 그런 문제로 야기된 문제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이렇게 인맥에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고 치우치고 편파적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하나님은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으시는 우리와 다르신 가장 공정하고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 이 사실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나님 닮은 사람들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닮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은 두려움이 없으신 분이요, 세심하고도 지혜로우시기에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2절 보십쇼. 베들레헴 이새에게로 가서 새로운 왕을 찾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사무엘이 대답합니다.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두 가지 재미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무엘도 인간인지라 사울왕을 무서워했구나. 나를 죽이리이다 걱정하는 모습에서 후에 다윗에게 용감하게 진리를 말하는 나단 선지자와 비교가 됩니다. 사무엘이 더 담대하고 대단한 제사장 선지자인 것 같은데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진언을 해야 하는데 약한 면이 있었구나 하는 것과 또 하나는 이렇게 사무엘이 두려워하니까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염려 말아라 그냥 나만 믿고 가라 하실 줄 알았는데, 웬걸 약간 소심이 담긴 세심한 모습으로 “암송아지 끌고 가서 나한테 제사 드리러 왔다 하면 되지 않겠느냐?”하고 제안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너무 신기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소심하고 또한 세심하게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구나. 하나님은 참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처음 부르실 때도 그랬습니다. 제가 어제 출애굽기 3장과 4장을 읽다가 참 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 백성 구원하러 가라 했더니, 모세가 하나님 내가 누구이기에 저 무서운 바로왕에게 갑니까? 했더니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고 멋있게 말씀하셨다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보냈다고 제가 말하면 저들이 그게 누구냐 하면 어쩝니까? 하고 또 하나님께 물었더니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고 세심하게 다 답해주시는 하나님, 또 4장에 가서는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 보여주시고 손에 문둥병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기적까지 이것 저것 다 보여주시고 나서 이제 됐냐? 하셨더니 하나님 저는 입이 뻣뻣하고 둔한 자입니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고 모세는 또 다른 핑계를 댑니다. 그랬더니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내가 아니냐? 너 말 못하면 내가 말 잘하는 아론까지 붙여줄게. 저 같았으면 야 나도 지쳤다. 너 말고 딴 사람으로 할게 할 것 같은데. 하실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세심하게 챙기시면서 설득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이런 분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죽음을 이기시는 담대함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찬양가사처럼 참 세심하고도 따뜻하신 하나님 그래서 우리와 참 다르신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런 따뜻하고 세심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지키시고 동행하신다는 사실에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잘 아시는 대로 오늘 본문의 가장 유명한 교훈 사람은 외모를 보는데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6절에서 마지막 13절까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무엘은 이새의 첫째 아들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기름을 부으려 했습니다. 그랬더니 7절 끝에 아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둘째 아들 아비나답도 셋째 삼마도 다 지나가고 마지막 말째 12절 그의 빛이 붉고 즉 얼굴이 붉은 것은 맡겨진 일, 양치는 일에 열심히 했던 다윗 그래서 햇볕에 얼굴이 붉게 그을릴 정도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성실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 마지막 13절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어 하나님의 영적인 지도자로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가장 크게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쓰임 받았던 다윗,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점점 더 외모 중심주의가 되는 이 시대의 기준을 따르지 말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처럼 내 중심이 하나님께 향하고 있는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시지 않고 외모를 보시는 분이셨다면 하나님은 이 땅에 독생자를 주시지 않으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외모 겉에는 괜찮아보여도 속에는 온갖 죄성으로 가득한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 있다고 하나뿐인 아들을 주셨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중심에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뜨거워지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의 은혜, 보혈에 대한 감사로 다시 마음이 뜨거워지시길 바랍니다. 중심이 뜨거워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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