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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큰 차이는 아닌데

새벽예배 2022.11.30 | 시편 36편 1-12절 | 이선기 목사




시편 36편 1-12절


  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2.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4.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8.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10.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들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12.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새벽 묵상


여러분 인생에는 참 화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생리학은 분노의 메커니즘을 밝혀내어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분노하지 않는 편이 절대로 이롭다." 어떻게 이롭다는 말인가?

첫째, 화를 내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 뇌 속에서 해로운 물질이 분비되는데 끝까지 화를 내는 것은 독극물을 조금씩 조금씩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둘째, 노화를 촉진시킨다고 합니다. 분노는 활성 산소를 생성시킨다고 합니다. 활성 산소는 호흡을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간 산소가 변화한 것인데, 이 변화된 산소가 강렬한 노화 촉진 인자라는 것입니다. 항상 화만 내고 있으면, 피부는 쭈글쭈글해지고 검버섯이 생기며 탄력성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심하게 꾸짖고 있는 어머니는 노화를 촉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이런 말을 하죠. 내가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셋째, 분노는 때로는 감정을 자제할 수 없게 되어 인생을 파괴하는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화가 난 나머지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욕설 때문에 살해당하거나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넷째, 분노는 대체로 즐겁지 않다는 것입니다. "넌 바보야!"라는 말을 듣거든 기쁨을 잃지 말고 "아, 그래? 충고해 줘서 고마워" 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히려 뇌 속에서 쾌감 물질이 나온다고 합니다. 알랭이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법이고, 최고로 인생을 즐기는 비결이다."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시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오늘도 가능하면 분노하지 마시고 감사하며 기쁨의 하루를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분노는 우리에게 가능하면 없어야 하는 감정이고 이겨내야 하는 감정인데, 분노 중에 딱 하나 우리에게 좋은 분노가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분노”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분노 거룩한 분노, 저와 여러분이 다른 분노는 다 이겨내시되 거룩한 분노는 오히려 낼 줄 아는 줏대가 있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형들이 잘 있는지 보러 왔다가 하나님을 모욕하는 육척장수 골리앗을 발견합니다. 사무엘상 17장 26절에 “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하면서 물맷돌을 가지고 나가서 골리앗의 정수리를 맞춰 쓰러뜨립니다. 이게 거룩한 분노입니다.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머리카락의 비밀을 말하고 결국 힘도 잃고 눈 뽑히고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블레셋 방백들 앞에서 조롱당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하죠. “하나님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저 하나님을 모욕하는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갚게 하옵소서” 삼손은 마지막 집 기둥을 무너뜨림으로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게 또한 거룩한 분노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에 화내고 분노하는 자 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분노하는 진짜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 분노하는 거룩한 분노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어제 우리는 다윗을 쫓는 사울과 사울 옆에서 간신배 역할을 하는 적대자들을 향하여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보호자가 되시는지를 믿고 즐거워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하면서 오히려 적대자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다윗의 마음을 또한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에 연장선상의 이야기로 하나님이 다윗에게 심판주가 되신다는 고백 재판관이 되어주심을 표현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거룩한 분노로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께 왜곡된 질서와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를 공의로 다스려 주실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의 마음으로 호소하는 다윗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는데

1. 첫 번째로 다윗은 억울함을 하나님께 아뢰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19절 보십쇼. “부당하게 나의 원수 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지금 다윗을 모해하고 비난하는 이들은 정당한 비난이 아니었습니다. “부당하게” 즉 정의롭지 못한 잘못된 비난이었고 “까닭 없이” 즉 아무 정확한 책망 받을 이유 없는 그저 그들의 욕심,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잘못된 비난이었습니다. 이 까닭 없이 라는 표현이 어제 본문 7절에도 두 번이나 나와 있습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추격하는 것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여인들이 외치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이 말에 사울 속에 질투가 확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20절 보십시오. “무릇 그들은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즉 그저 싸우고 부정적인 데 익숙한 악의 도구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왕이 여로보암과 무리들이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왔을 때 나이 든 노련한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함께 자라난 부정적인 젊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 허리보다 굵다.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꾸 부정적이고 비난하고 남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한 내 입술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쓰임받고 있지는 않은지도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20절 뒷 부분 보십쇼. “오히려 평안히 땅에 사는 자들을 거짓말로 모략하며” 부정적일 뿐만이 아니라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21절은 이 거짓말이 확장된 표현입니다. “또 그들이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격하였다 하나이다” 다윗을 비난하며 거짓을 말하고 또 거짓을 맹세하는 위증까지 하는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계명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하는 9계명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부당하고 까닭 없이, 화평을 말하지 않고 거짓말하고 거짓을 위증까지 하는 적대자들을 향하여 다윗은 그 억울함을 철저히 하나님께 아뢰며 호소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시편 57편 6절에서 또한 이렇게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고합니다.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여러분 사람에게 갈 필요 없습니다.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 찾아가지 마십시오. 직접 하나님 앞에 다 그 억울함을 고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내 앞에 판 웅덩이에 자기들이 빠지게 됨을 보여 주실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다윗은 거룩한 분노와 함께 측은한 마음을 가졌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2절부터 26절까지는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이 모든 왜곡된 질서와 부패와 타락을 하나님이 공의로 다스려 달라는 구체적인 간구입니다. 각 절에 끝 문장만 보아도 다윗의 구구절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22절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23절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24절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공의로 다스리시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특별한 것은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이 다윗처럼 이렇게 억울한 일 당하고 비난받고 나에 대해 거짓말하고 위증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제가 어제 이 부분을 묵상하는데 다윗이 왜 이렇게 연약하게 너무 부드럽게 기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같았으면 하나님 쳐부수소서. 부셔버리소서.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망하게 하소서. 철저히 망하게 하소서. 이랬을 텐데. 여러분 다시 22절부터 26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굉장히 부드럽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 데 다윗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구하되 내 사사로운 마음 복수하는 마음, 원수갚고 싶은 마음,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다 빼고 철저히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하나님이 심판하심을 믿습니다. 저는 그저 저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불쌍할 뿐입니다. 그런 긍휼의 마음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이걸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칫하면 내가 하나님이 되어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거의 정죄하는 마음으로, 기도라고 하는 데 기도가 아닌 경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솔직히 아뢰는 것이지, 판단은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오늘부터 기도하실 때 내가 심판자가 되지 않도록 내 미워하는 마음을 다 비우고 그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다윗의 심정으로 25절과 26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25절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아하 소원을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그를 삼켰다 말하지 못하게 하소서. 26절 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이 함께 부끄러워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스스로 뽐내는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하소서”

아주 부드러운 기도입니다. 하나님 저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가 재난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들, 스스로 뽐내는 저들입니다. 부끄러운 줄 알게 하옵소서.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좀 더 성숙한 기도가 되시기를 그래서 진정으로 거룩한 분노의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결국 승리할 것을 믿는 것이 거룩한 분노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27절과 28절 보십쇼. 다윗은 마지막 부분에서 승리를 확신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27절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28절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러분 다윗은 평정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승리케 하실 줄 믿고 확신하며 드리는 찬송의 기원입니다.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즉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하고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즉 주님께서 공의로 판단하시고 이루셨음을 고백하며 종일토록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찬송하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승리의 상징입니다.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십자가를 보면서 기억하시고 최후 승리를 바라보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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