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10.25 | 창세기 39장 11-23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39장 11-23절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1.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새벽 묵상
사탄이 어느 날 한 청년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열 개의 약병을 보이면서 "이중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 있고, 한 개에만 독약이 들어 있는데 열 개 중에 하나라도 마시면 엄청난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청년의 눈앞에는 산더미 같은 돈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래, 딱 한 번만 하는 거야. 이번 한 번이면 평생을 고생 안 해도 될테니까!"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진땀을 흘리며 한 병만을 골라 마셨습니다. 아찔했습니다. 잠시 후 청년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 내가 살았구나! 사탄은 청년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돌아섰습니다. 그러면서 다음번에 또 언제라도 아홉 개 중의 하나를 마시면 돈을 곱으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청년은 받은 큰돈으로 오랜 방탕 생활을 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자 또 사탄을 불러내었고 또 한 병을 골라서 마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불러내서 한 병 마시고 또 불러내서 마시고, 처음에는 고민했으나 나중에는 어느 병을 골라야 할까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덧 청년은 백발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딱 두병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분명히 독약이 든 병일텐데 50대 50, 노인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둘 중에 하나를 골랐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독약이 아니라 역시 꿀물이었습니다. 노인은 너무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방방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사탄은 남은 마지막 남은 한 잔을 훅하고 들이마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독약이란 없었다. 그러나 너는 돈이라는 나의 독약에 이미 죽어가고 있어. 나는 너의 청춘을 망가뜨렸지.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돈만 아는 최고의 바보로 만들었지. 너는 이제 영원히 죽게 된다." 사탄은 유유히 웃으며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고 사탄의 유혹을 쉽게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사탄은 참 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상당히 계략적이고 온갖 거짓말로 깜빡하면 누구든지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늘 깨어 기도하면서 무장하시고 사탄의 유혹을 잘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당시 애굽 여성들의 도덕적 타락상과 애굽의 부패한 사회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보디발의 아내의 모습은 사탄의 유혹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의 친위대장의 부인이면 분명히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그저 육체의 본능에 치우쳐 가장 교활한 모습으로 요셉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 보디발의 아내 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본능에 치우치게 되면 영락없이 똑같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 보통 요셉을 위주로 유혹을 이기라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저는 오늘 보디발 아내의 모습에 주목하면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첫 번째로 보디발 아내의 집요한 유혹의 모습을 보면서 사탄의 집요함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본문에서 우리는 보디발 아내가 보통이 아니구나 하는 모습을 먼저 보았습니다. 어제 본문 7절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했다고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1절 보십시오.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집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을 때, 보디발 부인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절호의 기회다! 여러분 우리가 언제 유혹에 빠지는가? 주로 사람들이 안 볼 때,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데 내 눈에 아무도 안 보이니까 이건 아무도 모르겠지 하고 착각한다는 사실입니다.
보디발 부인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장 집요한 행동, 12절 아예 요셉의 옷을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나와 동참하자! 앞에서 거절당하고 심지어 함께 있지도 않을 정도로 요셉이 단호하게 거절하고 도망갔으면 그칠 만도 한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아예 옷을 잡고 놓지 않았다는 사실. 여러분 이게 사탄의 집요한 유혹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신자에게도 타락 가능성이 늘 남아 있다고 하셨는데 이 유혹은 우리의 호흡이 다할 때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늘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하셨습니다. 배고파 우는 사자는 먹잇감을 잡을 때 목숨 걸고 잡습니다. 한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탄이 저와 여러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보디발 아내가 그저 남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 또한 사탄의 또 다른 모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옷이 잡혔어도 옷을 버리고 또 도망을 가니까 그 집요함이 이제 순식간에 미움과 증오로 바뀝니다. 14절 보십시오.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이 얼마나 왜곡된 표현입니까? 우선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여러분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서 요셉에게 누명 씌워 폭로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원래 좋은 소문은 느리게 퍼지고 안 좋은 소문은 빨리 퍼지는 법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혹시 다른 사람 비난하고 험담하는 것 많은 사람들 앞에서 퍼트린 적 없으십니까? 보디발 부인만 비난할 게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14절 보십쇼. “그들에게 이르되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지금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는 것입니까? 주인에게 있다.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열한 모습입니다. 잘 되는 일은 내가 잘해서 그렇고 안 좋은 것은 남편 때문에, 자식이 예쁘고 똑똑하면 나 닮아서, 안 예쁘고 못 났으면 당신 닮아서, 이게 바로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지금 누구에게 와서 누가 희롱을 당했습니까? 보디발 부인 혼자 관련된 일을 우리에게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전부에게 고통이다. 하고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저는요 이 무리를 불러서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이 문장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 어떤 분이 뭔가 안 좋은 말 할 때 이렇게 표현하죠. “사람들이 다 그러던데..”“교인들이 다 그러던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혼자만의 이야기, 자기 혼자만의 소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괜히 있지도 않은 일을 많은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표현하는 사람, 우리 교회는 없는데 여하튼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알아차리시길 바랍니다. 이 사람 혼자만의 생각이구나. 혼자만의 비난이구나. 거의 정확합니다. 이렇게 비열하고,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러던데 하고 자기의 말을 투사 확대시키는 사람을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내가 그런 역할 하고 있는지도 진지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또 입을 붙잡고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제발 이 입이 남의 탓 돌리는데 쓰임 받지 말게 하시고 말 확대시키고 비난하고 수군수군대고 비방하는데 쓰이지 않도록 이 입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기도하시고 가능하면 입을 꾹 다무시길 바랍니다. 마스크 오랫동안 쓰셔서 연습 많이 하셨을 텐데 남의 말 할 것 같으면 차라리 마스크를 쓰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집요함과 남의 탓과 말로 확대하는 것 말고 온갖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것 또한 사탄의 모습임을 깨닫고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17절 보십시오. 보디발 아내가 보디발이 오니까 하는 말입니다.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절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여러분 이 말을 과연 보디발이 다 믿었을까요? 19절 맨 마지막 부분 보십시오. 보디발의 반응은 “심히 노한지라”뿐입니다. 그 이상의 명령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보통 남자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장 그 놈을 끌어내라 하고 그 자리에서 죽였을 수도 있습니다. 친위대장의 권한으로 노예 하나 바로 죽이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심히 노한지라 앞뒤에 다시 살펴봐도 뭐 다른 행동이 없습니다. 친위대장 보디발은 자기 아내의 말이 자존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예상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20절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보디발은 요셉을 처벌하기 위해 감옥에 가둔 것이 아니라 요셉을 보디발 아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피신시킨 것으로 봐야 합니다.
특별한 것은 사탄의 모습으로 이렇게 철저하게 악한 일을 저지르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요셉이 어떻게 했느냐 입니다. 요셉은 딱 한가지를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네 번이나 반복해서 창세기 기자를 통해서 나온 표현이 있습니다. 집요하고 남의 탓하고 확대시키고 거짓말하는 보디발의 아내를 상대로 요셉은 “옷을 버려두고”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12절 끝에 보십쇼.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절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5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8절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왜 한 번이나 혹은 두 번 표현해도 될 것을 이렇게 4번이나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표현했을까요? 사탄의 유혹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버려두고 떠나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나는 까딱없다 하다가 넘어지지 말고 36계 줄행랑이 최고다. 하는 교훈입니다. 입은 옷은 그의 신분을 상징하는데 요셉은 그 옛날 자기에게 아버지가 입혀 준 채색 옷, 그 채색 옷이 힘인 줄 알았더니 미움과 분노의 결정적 원인이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지금 보디발이 집 가정 총무로 세우고 입혀 준 옷도 과감히 버릴 수 있었습니다. 높아진 신분, 아무리 보장된 위치일 지라도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일이라면 과감히 아낌없이 다 내버릴 수 있었던 요셉, 이렇게 단호하게 결단하여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리는 요셉이었기에 하나님은 요셉을 기쁘게 여기시고 버려두지 않고 보호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보디발이 왕의 감옥에 넣어서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21절 보십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심지어 간수장까지 요셉의 보호자로 만들어 버리시는 하나님, 요셉을 절대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내일 모레 목요일 본문에 보면 술 맡은 관원장에게 꿈을 해석해 주면서 나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2년이 넘도록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혀지게 되었음에도 하나님은 요셉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결국 바로왕의 꿈까지 해석하게 하심으로 가장 큰 일을 이루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요셉을 철저히 보호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붙잡고 있는 것들, 언제까지 그렇게 집요하게 붙들고 계실 것입니까? 이제는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과감히 버려두고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고 인도하실 예비하신 처소에 쓸모 있는 것들만 준비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