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3.15 | 사무엘상 23장 1-14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23장 1-14절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새벽 묵상
저와 여러분은 요즘 새벽마다 리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여러분 누가 뭐라고 해도 성경에 모세만큼 최고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을까요?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했는데 비록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였지만 이 온유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40년의 광야생활을 거치며 결국 가나안땅에 이르게 한 최고의 리더 모세, 그런데 그렇게 온유한 모세도 참다가 참다가 딱 한번 너무 화가 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물임을 밝히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짜증을 내면서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리쳐서 물이 나오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 이 사건 때문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가나안 땅에 직접 가지는 못하고 그 가나안 땅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느보산에서 인생을 마감하게 되죠. 그런데 우리는 모세도 역시 인간이니까 한번은 참을 수 없었겠구나 하면서 이해하는데 그치고 마는데, 더 중요한 것 모세만의 중요한 특징이 있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모세는 그렇게 어렵게 출애굽 시킨 백성들이 계속해서 금방 모세를 배신할 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지치고 금방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고 문제가 해결되면 그렇게 좋아 춤을 추며 기뻐하다가도 금방 어려움이 있으면 그 모든 탓을 모세와 아론 탓으로 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 배신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에 참고 또 참았던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비록 한 번의 실수로 너무 힘든 댓가를 치루었지만 그래도 그 외에는 항상 배신당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지도자 모세, 제가 모세였다면 한 번 화가 나지 않고 계속 화가 나서 분노를 이기지 못해 바위를 두 번이나 내리치지 않고 지팡이가 부러질 때까지 쳤겠구나 너무 많이 짜증이 나서 걸핏하면 배신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엄청 괴롭혔을 것이다. 스트레스 백성들에게 다 풀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우리 예수님도 그런 리더이셨습니다. 분명히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시면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면서 가롯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을 알았던 예수님, 심지어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심지어 가롯유다의 발까지 씻겨주시면서 놀라운 사랑과 섬김을 보여주신 예수님, 저 같았으면 발 씻겨주면서 한마디 했을 텐데, 바로 너지? 나를 팔 놈 더 가롯유다. 이 발닦은 물에 물고문 당해봐라 이 배신할 놈아! 했을텐데 예수님은 끝까지 가롯유다가 배신할 줄을 아시면서도 그 배신당해서 가는 죽음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십니다. 배신당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끌어안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오늘은 배신자 이야기입니다. 배신할 줄 알면서도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해 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그일라는 지역 이름입니다. 그일라는 아둘람 남쪽 5km 지점에 있는 블레셋 접경 도시입니다. 계단식 농사에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에 북한에 밀접한 비무장 지대 근처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코앞에 블레셋을 접하고 있는 그일라에 블레셋이 침범하여 타작마당을 탈취해 간다 하는 소식이 다윗에게 들렸습니다. 1절 보십쇼.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여기서 타작마당을 탈취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즉 블레셋이 곡식을 빼앗아 블레셋의 식량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적군이 군비를 갖추지 못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곡식창고의 곡식을 빼앗으면 이스라엘이 먹을 것이 없으니 전의를 상실할 것을 알고 이렇게 곡창지대를 공격했다는 뜻입니다. 여하튼 이렇게 곡식을 뺏기고 있는 상황이 다윗에게 들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비록 도망자 신세이기는 하나 다윗을 따르는 군사들을 데리고 가서 블레셋과 싸워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더 이상 그일라를 쳐서 곡식을 빼앗지 못하도록 강력한 경고의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이렇게 다윗이 그일라에 출연하여 블레셋과 전쟁을 벌인다는 소식이 사울왕에게 들리게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일라 사람 중에 스파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을 위해 싸운 다윗과 군사들에게 고마워하지는 못할지언정 쪼로로 사울에게 가서 일러바치는 어제 본 도엑 못지않은 그일라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민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사울왕이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쳐들어 오겠죠? 그런데 그일라 사람들이 우리를 넘겨줄까요? 저와 군사들이 대신 싸워주었는데도 그래도 저를 사울왕에게 넘길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울이 내려올 것이고, 그일라 사람들도 너를 넘길 것이다. 떠나는 것이 좋겠다.
제가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 저 같으면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그일라를 쳤을 것입니다. 이 배신자 놈들 하면서 본떼를 보여주었을 텐데 다윗은 이 그일라를 말없이 떠나게 됩니다. 13절 보십쇼.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깨달을 것은 무엇인가?
1. 첫 번째로 참 계산적이고 쉽게 배신하는 그일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그일라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당연히 은혜를 갚아야 할 텐데 사람은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당히 계산적이고 힘 있는 쪽으로 붙게 되어 있습니다. 당시 사울왕은 이스라엘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왕이었고 다윗은 도망자였습니다. 앞에 22장에서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들, 아이들, 젖먹는 아이들, 심지어 가축까지 다윗 도와주다가 다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그일라 사람들이 안 들었을 리가 없습니다. 괜히 다윗 환영하다가 다윗편을 들다가 우리도 몰살당할 수 있다 생각한 그일라 사람들은 양심보다는 현실을 택합니다. 힘있는 쪽을 택합니다. 당장 코 앞에서 다윗과 육백명의 군사들이 블레셋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사울왕의 권세를 떠올립니다. 계산해 보니까 눈에 보기에 힘있는 쪽을 선택합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를 기억하십니까? 당장 눈앞에 아람군대가 쳐들어 와 완전히 포위되었으니까 절망합니다. 엘리사 선생님이여 보십시오. 우리는 독안에 든 쥐입니다. 우리는 이제 죽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하죠. 하나님 게하시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옵소서. 게하시가 영적인 눈을 떠보니 아람 군대 안쪽으로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놀라우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하나님이 싫어하시는데도 고집스럽게 하나님이 아니라 왕을 달라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눈에 보이기에 든든한 눈에 보이기에 강력한 왕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대하고 눈에 보이기에 좋아 선택한 사울왕이 지금 폭군으로 변하고 정사는 제끼고 다윗 죽이려고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까? 당장 눈에 보이는 든든한 쪽을 선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하지 마시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하신 분 하나님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한국에 친구 목사님하고 통화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에 점치는 곳에 갔더니 손님 중에 교회 권사님들이 반이나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과장된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는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가? 도마를 향해 내가 손으로 주님을 만져보기 전에는 그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 하는 도마를 향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우리의 연약한 눈으로 보는 것, 대단한 것, 엄청나 보이는 것, 강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지 마시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가장 강하고 능하신 분 하나님을 선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여호와께 묻는 다윗의 모습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처음 그일라가 블레셋에 침략을 받아 타작마당의 곡식을 탈취해 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좀 더 자세하게 상황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군대의 규모는 어느 정도냐? 또 내 군대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파악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와께 묻습니다. 2절 보십쇼.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안 좋은 일 있을 때만 주님 전에 엎드리지 말고 좋은 일 있을 때는 내가 잘해서 그런 거지 하고 즐기지 말고 무슨 선택이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묻는 것이 습관이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 일도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백하는 겸손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2절 중간에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참 대조적인 것은 그 다음 구절 3절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말립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맞습니다. 여러분 지금 다윗은 도망자의 신분입니다. 사울왕이 지명수배를 내려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다윗이여 지금 현실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굳이 싸울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살기도 바쁜데 꼭 이렇게 가서 싸워야 합니까? 저 같으면 여기서 그러네요. 그냥 모른 척 합시다. 먼저 우리가 살아야지요. 아멘 이랬을텐데,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4절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이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이게 중요한 문장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기도의 사람 하나님 중심의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사람들이 반대하면 다시 여호와께 묻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 제가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반대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4절 보십쇼.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다시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한번 묻고 끝나는 경솔한 사람이 아니라 다시 묻고 또 되묻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발견하는 기도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일회성의 기도자 되지 마시고 기도가 중심인 기도의 습관이 생기시길 기도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다윗은 구원하는 사람이었다. 살리는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절 끝에 하나님은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셨는데 5절 끝에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들을 구원하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2절과 5절에 나오는 구원이란 단어가 히브리어로 원형이 “야솨”라는 단어입니다. 이 야솨가 어디에서 많이 사용되었는가? 사사기에 많은 사사들이 백성들을 구원할 때 썼던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의지하여 백성들을 구원해 낼 때의 “야솨”,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야솨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이 기쁜 소식을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구원이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