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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을 하는 것은

새벽예배 2022.06.01 | 고린도전서 14장 1-12절 | 이선기 목사



고린도전서 14장 1-12절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새벽 묵상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교회 학생회장이었습니다. 아마도 머리가 커서 똑똑하다고 여겨서 뽑아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회장을 하면서 아킬레스건처럼 참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같은 학년 친구들은 다 방언을 하는데 딱 한명과 저만 둘이 방언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참 많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왜 방언의 은사를 주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해도 주기도문 1000번을 해도 혀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애들은 다 방언하는데 중등부 학생회장인 제가 방언을 못했으니 얼마나 부끄럽던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또 고등부 학생회장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교회에서 또 회장할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방언을 못하는 사람이라 자격이 없습니다. 했는데 또 회장으로 선출이 되었습니다. 여름 수련회에 가서 기도를 하다가 드디어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는데 전도사님께서 기도하다가 자 이제 각각 2m씩 떨어져서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얼마나 뜨겁게 기도했던지..하나님! 중학교 3학년 학생회장 때 제게 방언을 안 주신 야속하신 하나님. 이제 고등부 회장이오니 이제는 제 입술을 열어주셔서 방언이 터져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얼마나 애타게 부르짖었는지..두 시간을 기도하고 살짝 눈을 떠서 보니 두 시간이 아니고 20분이더라구요. 살짝 눈을 뜬 김에 옆에 친구들을 보니 다 난리가 났습니다. 가나다라마바사. abcdefg. 수리수리독수리 막 기도에 불이 붙는데 제가 다시 눈을 감고 열심히 주여!를 목이 터져라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제 무릎에 축축하게 무엇인가 한두방울이 떨어지더라고요...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게 뭐지? 너무 궁금해서 또 살짝 눈을 떠서 보니 피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것은? 주님의 피! 주여 드디어 제게 방언보다 더 확실한 증거 주님의 피를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더욱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주님의 보혈, 거룩한 보혈 막 기도를 하는데 누군가 제 어깨를 싹 감싸쥐더라구요. 아! 주님께서 나를 꽉 끌어안아주시는구나! 아멘 할렐루야! 막 눈물을 흘리는데 알고 보니 전도사님이셨습니다. 제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기야! 너 코피났다. 니 얼굴 지금 피범벅이다. 그만 기도하고 빨리 화장실 가서 얼굴 씻고 자라! 여러분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13년이 흘렀을까요? 고등부 때 같이 신앙 생활했던 그 방언으로 엄청나게 기도했던 친구들을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저는 또 한번 크게 놀랐습니다. 안타깝게도 같은 학년이었던 14명 전부 다 신앙생활을 그만두었고 딱 2명 저처럼 방언을 하지 못했던 친구 한명만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집사님이 되어 있었고 저는 목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방언으로 충만했던 친구들이 다 교회를 등지게 되었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한국에서 제가 아는 집사님 중에 이보다 착한 집사님이 계실까? 너무 마음이 선한 천사와 같은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너무 부끄러움을 타셔서 혈액형이 저처럼 A형인 것이 확실한 집사님이 속장, 인도자를 맡아서 하셨는데 5명 속도원들을 정말 열심히 care하고 섬기셨습니다. 집사님의 선한 마음을 속도원들이 다 잘 알아서인지 너무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운 속원이 한명 들어왔는데 40대 초반의 노처녀 속원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겼는데 이 이 여자청년이 굉장히 방언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속회 모임에서 기도를 하는데 속장 인도자님을 닮아 다들 조용조용히 기도하는 속회에 이 불로 불로 뜨겁게 방언하는 청년이 들어와서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졌습니다. 문제는 이 청년이 속장 집사님을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속장님은 방언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아니 방언도 못하면서 어떻게 속회를 인도하느냐? 하고 핀잔을 주고 속장님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선한 속장 집사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 속장 내려놓겠습니다. 제가 믿음이 너무 약하고 마음이 여리고 방언도 못해서더 못하겠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담당목사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제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 노처녀 청년을 불러서 이야기했습니다. 왜 방언을 못한다고 속장을 비난합니까? 자매님은 성경 어디에 근거를 두고 방언을 못하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십니까? 제가 아주 예의 있게 물었더니 자기는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는다. 방언의 은사가 있으니 성경 안 찾아도 다 알려주신다. 등등을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럼 속회에서 빼서 속회를 하나 만들어 줄테니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아 제로부터 시작해서 직접 속회원을 늘리면서 속회를 인도해 보라 했더니... 좋다고 하더니 언젠가 조용히 지내겠다고 다시 그 속회에 넣어달라고 다시 찾아왔길래 제가 거절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은사든지 그 은사의 기준을 잘 세우고 그 은사를 사용하지 않으면 은사가 아닌 얼굴 찌끄러지게 만드는 민폐의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선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4장 2절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여러분 이 구절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방언을 말하는 자를 칭찬하는 본문일까요? 책망하는 본문일까요? 이 본문은 아마 방언에 굉장히 치중하는 분들이 볼 때 굉장히 좋아할 수도 있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앞에 1절부터 쭉 전체를 살펴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표현. 방언을 말하는 자들에게 교훈을 주며 그 알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것 무슨 유익이 있냐는 핀잔과 따끔한 교훈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은사들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이 방언의 은사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는 모든 은사를 가운데 방언을 최고의 은사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방언은 보통 사람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신령한 언어였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굉장히 자긍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무분별하게 방언을 사용하였습니다. 고뎃 이라는 학자는 이 고린도 교회의 무분별한 방언 사용에 관하여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장난감의 내용은 고려하지 않고 그저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형만을 자랑하는 것과 같다”. 신령하고 훌륭한 다른 은사들은 무시하고 외관상 특이하고 당장 피부에 오도록 느껴지는 방언의 은사에만 치중하고 사모했던 이들. 바울은 이들의 잘못된 방언 사용은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고 부덕을 끼치고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혼란만을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언을 받은 자가 명심해야 할 올바른 방언의 사용자세에 대하여 지혜롭게 권면하게 됩니다.

바울의 권면 속에서 방언에 대한 참 교훈을 얻으시면서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필요한 방언을 잘 알고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바울은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 어떻게 권면하고 있는가?

1. 첫 번째로 바울은 방언은 그 뜻을 알지 못하기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교훈합니다. 1절에 방언과 비교가 되는 예언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앞에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12장 31절에서 말하는 더욱 큰 은사들 즉 사도의 은사 선지자의 은사, 교사의 은사를 위하여 말씀 전하는 은사들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없이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이 표현에 대한 정리의 구절이 바로 이 1절이구요. 바로 뒤에 2절에 있는 방언과 비교하기 위한 한 문장의 정확한 선전포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방언에 대한 은사가 중요한 줄 알고 옥신각신하는 고린도교회여 방언에 대한 관심은 이제 좀 끄고 예언을 하려고 하라.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을 하려고 하라.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데 온 관심을 집중하라. 위클리프는 이 구절을 좀 더 리얼하게 주석합니다. “방언 말고 오히려 신령한 예언의 은사를 얻기 위해 불타는 노력을 기울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바울의 표현 그대로 교회에서 혹은 여러분 주위에 방언 때문에 우쭐해진 분 있습니까? 부러워하지 마시고 관심을 축소하시고, 더 신령한 은사 하나님의 말씀 전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시고 전하시는 데 불타는 노력을 기울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적극적으로 성경공부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참여하는 분들은 이단에 빠질 여유가 없습니다. 열심히 성경에 집중하지 않고 편하게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이단들의 표적이 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늘 성경을 연구하는데 열려 있는, 예언을 하려고 애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방언은 개인적으로 나 혼자만을 위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필요한 은사이고 다른 이를 위해서는 전혀 유익이 없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절 보십쇼. 아까 말씀드린 대로 처음 2절을 접하면 방언을 굉장히 권장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정 반대입니다. 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은 다른 사람이나 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고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한다. 단지 자신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만 사용되는 수단일 뿐이다. 단 통역을 하면 예언으로 간주될 수 있기는 했지만 통역자가 없으니 그냥 알아들 수 없는 말일뿐, 5절 끝에 보십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7절에는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즉 방언으로 서로 뜻도 모르고 제 멋대로 외치면 마치 악기들이 제 멋대로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 정신 없을 뿐이요 아무 소용이 없다. 9절 보십쇼.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그러니까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알아들을 수 없고, 저마다 제 멋대로 방언하면 이는 허공에도 대고 말하는 아무 의미도 없고 교훈도 없는 것이 된다. 여러분 사실 대표기도도할 때 대표기도를 열심히 준비하셨는데 너무 철학적인 단어를 많이 쓰신다거나 너무 유식한 단어를 많이 넣어 기도하시려고 하면 이 못 알아듣는 방언 비슷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냥 사랑의 하나님, 은혜로우신 하나님 하면 되실 것을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삼라만상 우주를 다스리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영존하시고 광대하시고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기도 기도하는 분도 제대로 뜻도 모르는 단어로 기도를 채우시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없는데 저 다른 주에는 있더라고요. 그냥 쉽게 표현하셔도 되는데.... 설교도 그렇습니다. 너무 어렵게 철학과 온갖 전문 용어들을 다 총 망라해서 멋있어 보이려고 설교하시는데 유식하신 것은 알겠는데 전혀 청중과 소통이 되지 않는 설교. 그런 설교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와 하나님과 만날 때만 필요한 은사인 방언. 잘 구별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더 중요한 은사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바울은 결과적으로 어떤 은사든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강조했다는 사실입니다. 4절 끝에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맨 마지막 12절 보십쇼.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어떤 은사이든지 기준이 내가 아니라 바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쓰여져야 한다는 사실. 여러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교회의 덕 믿음의 공동체에 덕을 세우기에 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늘 점검하시고 일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일 나아가 교회를 벗어나 교회 밖에 모든 인류를 위하여 덕을 세우는 일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교회의 덕을 세우고 나아가 교회 밖에 모든 사회에 덕을 세우는 예수님 닮은 은사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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