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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의롭게 되려면

새벽예배 2022.03.30 | 갈라디아서 2장 20절 | 이선기 목사



갈라디아서 2장 20절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순절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무릎 달리기 해 보신 분 있습니까? 무릎 달리기가 무엇인가 하면 양반자세를 하고 오른발 왼발을 교차해서 허벅지 위에 올리고 무릎으로 딛고 일어나 목표지점까지 달려갔다 오는 경기입니다. 그냥 땅바닥에서 할 수는 없고 좀 넓은 방에서 하거나 바닷가 고운 모래밭에서 하면 좋은 경기입니다. 달리다가 넘어지면 큰 웃음을 주기도 하는데 저는 중고등학생 때 수련회가서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무릎달리기를 열심히 하면 무릎관절이 너무 아프게 되는데, 여러분 무릎 달리기가 아니라 무릎으로 계단 오르기를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28계단 오르기를 하며 거룩해지는 것을 목표로 했던 사람 바로 마틴 루터입니다. 대표적인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그는 독일 중부에 아이슬래벤이란 지역에서 광부의 7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신실하고 경건한 부모님의 지도 아래에서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외우며 자라났습니다. 루터는 수도사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주 친한 친구와 폭풍우가 치는 날 걸어가다가 벼락에 맞아 죽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루터가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아마도 하나님을 벼락을 치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7년 전인 1510년에 어거스틴 수도단의 중책을 맡아 로마로 파송되게 되는데 유명한 스칼라 상타 성당의 28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고행을 통해 속죄를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속죄를 받지 못하고 무릎만 아프고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과연 이런 고행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 속죄받을 수 있는가? 고민하던 중 비텐베르크 신학교 탑 속에서 로마서 강의를 준비하다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에 비로소 큰 충격을 받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고 복음의 사람, 종교개혁의 불씨로 타오르게 됩니다.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래 맞다 구원받는 것은 고행으로 무릎으로 성당 계단을 올라감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 즉 아무 자격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가능성 없는 죄인을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그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이구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구나. 믿기만 하면, 믿음으로,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게 되는 거구나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복음의 기초, 복음의 본질, 내가 무슨 경건에 이르는 행동을 잘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시면서,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순절에 절제하고 자신을 제어하는 의미는 단순히 경건한 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날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의 희생에 감사하면서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은혜를 다시 깨닫고 우리의 믿음이 다시 회복되는 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2장은 갈라디아서 전체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 교리를 차분히 정리해 놓은 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신칭의 자격이 안 되는데도 구원해 주시고 다만 믿기만 하면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면서 오늘 본문 바로 앞에 15절과 16절에서는 의롭다 함은 율법의 행위에 의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17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의롭다 하심은 완벽하다. 18절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자가 다시 율법을 구원의 도리로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면서 차근차근 논리 있게 잘 정리해 나가는 바울 이제 오늘 우리가 읽은 20절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에 대하여 결정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결정적인 방법들을 마음 깊이 새기시고, 우리의 신앙이 잘 정리되시고 체계 있게 정리되시면서 구원의 확신이 분명해 지시고 확실해 지시고 명확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 첫 번째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내가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나 라는 표현이 몇 번이나 나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몇 번입니까? 총 6번 나옵니다. 여러분 성경 어디에 한 절에 6번이나 내가, 내가, 내 안에, 내가, 나를, 나를 위하여 하고 표현된 곳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도대체 왜 한번만 해도 될 1인칭 표현을 이렇게 여섯 번이나 표현했을까? 두 번째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라는 문장을 보면 그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즉 나는 죽어야 한다 그래야 이신칭의가 이루어진다는 표현입니다. 내가 살면 안 된다. 제물로 제단에 바쳐진 양처럼 각도 뜨고 피를 흘리고 불에 태워져도 아무 말없이 죽어가는 그 양처럼 내 자신이 철저히 죽어야, 내 성격, 내 자존심, 내 분노, 내 혈기 다 죽어야 그래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그 표현이었습니다.

어떤 청년이 이집트의 사막의 등불이라 불리면서 존경받는 지도자 마카리우스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세상에 대하여 내가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마카리우스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무덤에 가서 그 안에 누워 있는 시체에게 욕을 한 바탕 퍼붓고 오게." 청년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마카리우스 선생이 시키는 대로 욕을 퍼붓고 왔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그를 다시 공동묘지로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온갖 칭찬을 하고 오라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돌아온 청년에게 마카리우스가 물었습니다. "자네가 욕설을 퍼부어 대니까 시체들이 화를 내던가?" "아닙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칭찬을 할 때에 그들이 좋아하던가?" 이번에도 그는 "아닙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마카리우스가 청년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내가 죽는다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것이라네" 누가 욕을 해도, 내 자존심이 죽고 혈기도 죽어서 아무 말하지 않는 것, 누가 칭찬을 해줘도 금방 좋아하지 말고 별로 연연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세상에 대하여 내가 죽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네.

저는요 모든 목회자들도 다 비슷하시겠지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참 많이 영향을 받는 트리플 A형 목회자의 대표인 것 같습니다. 누가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면 더 마음 아파하고, 누가 조금이라도 칭찬해주고 그러면 얼마나 금방 좋아지는지... 내가 덜 죽은 아직도 진짜 목사될려면 오래 걸리는 목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집사람이 이런 말로 위로해 줄 때 참 힘이 됩니다. 당신에게는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해! 욕먹을 용기, 올바른 말을 하다가 미움 받아도 그게 맞다면 밀고 나가는 용기, 여보 예수님이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 미움 받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잖아. 또 하나 다른 사람이 당신 설교 너무 좋다고 해도 우쭐하지 말아요. 당신이 주인공이 아님을 꼭 기억해요. 칭찬받을 분은 하나님 밖에 없어. 이런 말들이 얼마나 제게 힘이 되고 또한 훈련이 되는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죽는 것은요 내 혈기, 내 분노, 내 자랑, 다 죽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난에도 사람들의 칭찬에도 별로 크게 반응하지 않는 주를 위해 받는 비난에 너무 괴로워하지도 마시고 주께서 받으셔야 할 칭찬에 너무 연연하지도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고백했습니다. 날마다 내가 죽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철저히 죽음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음이 이루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십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여러분 이 말은 사실적으로 맞는 표현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함께 못 박힌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만 못박히셨습니다. 내가 못박힐 자리에 주님이 대신 못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홀로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고 해야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을까요? 그 뒤에 문장을 보면 이렇게 표현한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즉 바울은 원래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예수믿는 자를 잡으러 다니며 박해하는 박해자였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나 변화되어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 만남의 순간이 얼마나 생생한지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이루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내 인생이 완전히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 그동안의 인생과 전혀 다른 인생으로 살게 된 이 감격, 이 감격 때문에 마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그대로 느끼게 되었고, 나는 완전히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는 온데 간데없고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바로 이 생생한 감격의 표현을 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표현했다는 사실. 이게 바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요 바로 내 모습이 그렇다고 자신있게 드러내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왕 예수 믿은 것, 주일 아침만 잠깐 주님이 내 안에 계신 것처럼 다른 사람 보기에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그렇게 신앙생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정말 제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앞에 내가 죽어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죽는 사람이 겨우 주일 아침만 잠깐 물론 그것만도 다행이지만 정말 내가 죽는 사람,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주일 아침에만 잠깐 하나님 안녕하셨어요?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럴 수 있습니까?

물론 바이러스 문제로 주의 전에 오지 못하셔서 유투브로 어쩔 수 없이 예배드리는 분도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셔서 유투브로 밖에 예배드릴 수 없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 말고 주님의 전이 정말 주님이 계신 곳이라면 혼자서라도 언제든지 주의 전에 찾아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들이 시간이 남아서 주의 전에 오는 것에 열심 낸 것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이 고달파 괴로운 상황에서도 나는 철저히 죽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시기에 주의 전에 와서 기도하고 부르짖고 찬송하고 주님이 삶의 주인 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너무 신앙생활하기 편해졌는데, 너무 편안해져서 그런지 주를 향한 열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인지 주님께서 주인이신지 다시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다시 그런 사람으로 회복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의 삶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뒷부분을 보십쇼. 20절 뒷 부분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즉 내가 지금 이렇게 육체 가운데 즉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즉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그냥 사람이 친구를 대신하여 죽는 것도 위대한 사랑인데,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독생자를 보내사 아무 자격 없는 나를 대신하여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셨으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는가? 죽었다 깨나도 갚을 수 없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다음절 21절이 어떻게 시작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즉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으니, 하나님의 은혜 빼고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니. 여러분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는 바울이 고백한 최고의 은혜의 구절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러분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여러분 은혜 붙들고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의 삶을 사는 이 사순절 되시고 평생 은혜 붙들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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