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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새벽예배 2023.05.02 | 사무엘하 13장 15-28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13장 15-28절


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20.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2.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23. 만 이 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 털을 깎는 일이 있으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24. 압살롬이 왕께 나아가 말하되 이제 종에게 양 털 깎는 일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왕은 신하들을 데리시고 당신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 하니

25. 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니라 내 아들아 이제 우리가 다 갈 것 없다 네게 누를 끼칠까 하노라 하니라 압살롬이 그에게 간청하였으나 그가 가지 아니하고 그에게 복을 비는지라

26. 압살롬이 이르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청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하되

27. 압살롬이 간청하매 왕이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그와 함께 그에게 보내니라

28.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



새벽 묵상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또 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한 잘못은 많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죄를 지었다는 여인에게는 “당신은 가서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 오시오.”그리고 자질구레한 잘못 밖에 없다고 한 여인에게 “당신은 가서 작은 돌멩이들을 치마폭에 한 가득 주워 오시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바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 왔고, 다른 여인은 새알만한 잔 돌을 치마폭 한 가득 주워왔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원래 있던 제 자리에 갖다 놓고 오십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다시 낑낑거리며 바윗돌을 제 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어디서 가져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알만한 작은 돌들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 온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하고 목사님은 소리쳤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지은 죄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일생 동안 별로 큰 죄를 짓지 않고 자질구레한 잘못만 저질렀다는 여인에게 목사님은 말합니다.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고도 당신은 회개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통회하고 자복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누구에게 용서하시는 은총을 내리시겠소?”

작은 돌들을 와락 끌어 안고서 여인은 하염없이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죄짓지 않고 그런대로 자신 있게 거의 의인인 것처럼 살아가는 분 있습니까? 나는 잘 모르지만, 내가 회개하지 않고 지나간 묻어둔 죄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수 있습니다. 내가 볼 때에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 내게 죄가 있는지를 예민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너무 자신 만만해 하지 말고 욥기 1장에 자녀들 생일 잔치를 하고서도 혹시 죄짓지 않았는가 점검하며 자녀 명수대로 번제를 드린 욥처럼 순간순간 점검하시고 코람데오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성숙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죄에 있어서는 아주 예민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미국에서 능력 있게 부흥회를 인도하였던 빌리 선데이는 이렇게 외치며 살았습니다. "나는 죄와 싸우겠다. 발이 있는 한 죄를 차 버리겠고, 주먹을 가지고 있는 한 죄를 쳐버리겠고, 머리를 가지고 있는 한 죄를 받아버리겠고, 이를 가지고 있는 한 죄를 물어뜯겠다. 내가 늙어서 주먹도 발도 이도 힘이 없을 때라도 영광의 집에 들어가기까지 잇몸으로라도 죄와 싸워 이기리라."

우리의 호흡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예민하게 죄를 감지하시고 죄와 싸워 이기시는 최후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다윗의 부끄러운 추한 부분을 똑같이 닮은 암논과 다말, 그리고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울화병이 날 정도로 상사병이 걸린 암논, 친구 요나답의 조언대로 아버지 다윗을 끌어들여 배다른 동생 다말을 오게 하여 기어코 과자를 만들어 침실까지 끌어들인 암논, 억지로 다말과 동침하고 맙니다. 근친상간의 죄,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것과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간음죄였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꾀병까지 부리며 악랄한 방법으로 아름다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범한 암논이 웬걸 금방 다말에게 싫증을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로 1. 인간의 불안하고 변덕스러운 감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5절 보십쇼.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그저 동물적인 본능적 욕정을 충족한 후 허탈감으로 갑자기 애정이 증오로 바뀌는 한심한 인간의 추악한 모습. 여러분 이게 우리 인간의 감정이라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셔서 영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영적인 목소리에 귀를 막고 그저 육신이 원하는 욕심을 채우게 되면 그 결과가 이렇게 허무함과 불안함과 허탈함 뿐이라는 사실.

저는요 가끔 매스컴에서 가수 나훈아의 노래 “갈무리”가 나오는 걸 듣게 되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깊이 느끼고 공감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어쩜 저렇게 인간의 육신적인 본성의 헛됨을 잘 표현하는가? 여러분 가사를 떠올려 보십쇼.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런지 몰라,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서러운 맘 나도 몰라, 잊어야 하는 줄은 알아 이제는 남인 줄도 알아, 알면서 왜 이런지 몰라 두 눈에 눈물 고였잖아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 이제는 정말 잊어야지 오늘도 사랑 갈무리. 여러분 사람의 감정이 다 이렇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감정에만 치우치니까 내가 왜 그런지 나도 모르는 불안한 감정, 알면서도 제 멋대로인 감정, 자기 자신이 너무 싫고 밉고 그래도 해결이 안되는 사람의 변덕스럽고 불안한 감정

여러분 이런 감정에 치우쳐 사는 사람이 바로 암논이었습니다. 사무엘하 기자는 16절에서 배다른 오빠에게 겁탈당한 다말의 말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암논의 변덕스러운 육체적 욕정과 감정의 헛됨을 꼬집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16절 보십쇼.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암논이 억지로 동침하는 감정에 치우친 행동은 악한 것인데 금방 변심하여 내버리는 악은 그것보다 더한 악이라는 것, 거기다가 마지막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에서 죄에 사로잡힌 인간은 귀를 닫고 바른 조언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까지 낱낱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17절에 이제는 해서는 안 되는 욕설까지 하면서 다말을 내쫓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여러분 앞에 11절에서 다말을 원할 때는 “나의 누이야”하던 암논의 입이 이제는 다말을 “계집”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계집이란 표현은 한국 전통 사회에서 번역했기에 여성을 깔보는 표현으로 계집, 즉 집에 있는 여자라는 표현이구요. 히브리어로는 “조트”로 발음하는데 “이것”이란 뜻입니다. 물건을 표현할 때 쓰는 표현이죠. 그러니까 이 물건을 치워버리라고 표현했다는 것, 그토록 사랑하는 누이를 변심하여 금방 “이 물건을 치워버리라”고 했다니 이 얼마나 웃기는 혀를 내두르게 되는 한심한 행동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감정은 이렇게 변덕스럽고 믿지 못할 것임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 마음 가는대로 살면 결국은 허무하게 끝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육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감정이 가는 대로가 아니라 새사람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그냥 덮어두거나 방치해 두는 인간의 게으름과 무책임감이 문제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어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자 이렇게 자식들 사이에 심각한 문제의 가능성이 보였으면 다윗은 아버지로서 초반에 이 문제를 판단하고 잘 처리했어야 합니다.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냥 내버려둡니다. 방치합니다. 어제 암논이 꾀병부리며 다말이 와서 간호하게 해달라는 것도 보면서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오늘 본문 21절 보십쇼. “다윗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여러분 이러고 끝입니다. 그저 심히 화를 내고 그 다음 어떤 조치가 없습니다. 지금 큰 아들 암논이 다말을 겁탈하고 내쫓고 19절에 보면 다말은 재를 머리에 덮어쓰고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는데 다윗이 이것을 전해 듣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21절과 22절 사이에 뭐가 있어야 하는데, 즉 다윗이 암논을 불러다가 문책을 하던지 지방으로 보내던지 해야 할 텐데 아무 조치가 없었다는 사실, 알면서도 그냥 덮어두는 다윗의 무책임함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빌라도는 왜 2000년이 넘도록 사도신경을 통해 욕을 먹고 있는가? 우리 예수님에게서 아무 잘못을 찾지 못했음에도 십자가에 죽는데 내어 주는 무책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쁘다는 핑계로 책임지기 싫었기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회피하고 맙니다. 참 무책임함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지금 다른 자녀의 일입니까? 바로 다윗의 자녀들의 비극이었습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하셨는데, 멀리서 찾을 것 없습니다. 지금 내 자녀에게 나는 책임감 있는 부모인가 묵상하시면서 징계해서라도 책임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희생해서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을 살려내신 우리의 영적인 부모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고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책임감 있는 부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결국 압살롬은 동생 다말에 대한 피의 복수를 성공합니다. 인간의 계획적인 복수의 잔인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절에 보면 압살롬은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어라. 이 오빠가 원수를 갚아줄테니 하고 23절 만 이년 후에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옵니다. 24절 양털 깎는 집안 최대의 축제의 때에, 일손이 필요한 때에 아버지 다윗왕을 초청합니다. 다윗이 바쁜 걸 알고 하는 계획적인 초청입니다. 26절 아버지가 못오시면 암논을 보내소서 하고 암논이 오게 되는데 28절 암논이 술 마시고 즐거워 할 때에 29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암논을 살해하는 압살롬. 참 치밀하고 가장 허점을 보일 때에 여지없이 살해하는 압살롬의 복수의 이야기, 여러분 이 압살롬의 복수는 무엇을 생각나게 합니까? 다윗이 자기의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돌아오게 했다가 안 되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전쟁터에서 우리아를 일부러 죽게 만들었던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억울하게 죄 없는 우리아를 죽인 그대로 지금 자기 셋째 아들이 자기 맏아들 암논을 처절하게 살해하는 모습. 우리아의 억울함을 그대로 자기 자녀에게 보응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하나님이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신 이유를 알겠습니까? 인간의 복수심이 얼마나 계획적이고 잔인할지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욕심대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 내 욕심을 이기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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