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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는 못 되어도 변질자는 되지 말자

새벽예배 2023.06.27 | 사도행전 4장 13-22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4장 13-22절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새벽 묵상


조정민 목사님의 설교 예화 중에서 목격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1995년 이맘때쯤이죠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한국에 서울시 서초구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게 되어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이며 6명은 실종된 사건 피해액이 약 2700여 억 원이었던 사건 여러분 다 기억하시죠? 그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바로 기자들이 달려와서 취재를 하고 급히 생방송을 하는데 이 기자는 왜 무너졌는가? 어떻게 되었는가? 다친 사람이 몇 명이다. 저 기자는 아니다 죽은 사람이 몇 명이 될 것 같다. 하면서 우왕좌왕 제대로 보고를 못하고 있는데 삼풍백화점 맞은편에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은 기자들과 다르게 당시의 상황을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삼풍백화점 붕괴의 현장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목격자였기 때문이었다는 것, 목격자는 누구에게 전해들은 사람이 아니고 나중에 온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 시간에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목격자는 일부러 시나리오 대본을 만들고 정리를 하고 목을 가다듬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저 본대로 겪은 대로 그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바로 그런 목격자들이 등장합니다. 직접 주님을 만났던 사람, 비록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도망가거나 부인하거나 했었지만 부활의 예수님을 다시 뜨겁게 만났던 목격자들 그래서 완전히 삶이 바뀌었던 이들, 오늘 본문 13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했던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신학교 총장님 교수님들 앞에서 즉 전직 현직 대제사장이요 내로라하는 유대 지도자들 앞에서 전혀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확신에 차서 주인공 되신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 베드로와 요한, 유대 지도자들은 얼마나 황당했던지 13절 다시 보십쇼. 중간에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문 없는 범인, 즉 일자무식, 그저 바닷가에서 평생 그물로 물고기 잡고 살았던 어부 출신들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얼마나 조리 있게 말을 잘 하는지 어안이 벙벙했다는 사실, 더군다나 14절에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라고 되어 있는데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다리를 쭉 펴고 앉아있던 자가 서 있는 것, 즉 살아있는 기적의 현장을 보게 되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14절 끝에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건 하나님의 역사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박사학위를 몇 개 가지고 있는 사람도 주님을 만나면 내가 무지한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이들 중에 가장 똑똑한 엘리트 출신의 사도 바울의 고백이 뭐였습니까?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립보서 3장 7-9절의 말씀입니다. 열심히 지식을 많이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고상한 지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붙잡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목격자의 모습, 목격자의 특징은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9절 보십시오. 위협을 받고 경고를 듣고 했는데도 19절 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자기의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을 분명히 깨닫고 꽉 붙들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유명하고 그 앞에 고개가 숙여지는 유대 지도자들 앞에서 눈에 뵈는 것도 없이 당신들의 말보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당신들의 말은 한낱 한계 있는 인간의 말이요, 유한하고 그저 인간적인 권위의 말일 뿐인데 우리가 듣고 직접 본 말씀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부활의 예수님이시다. 영원까지 주관하시는 한계가 없으신 만물의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 그 누가 그 무엇이 이를 대신하리요. 가장 옳고 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 고백입니다. 20절에는 아주 분명하게 자신들이 주님의 목격자임을 고백하는 베드로와 요한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저는요 초등학교 6학년 국민학교 6학년 때 쓰러지신 아버지께서 거의 전신마비가 되신 상황에서 온가족 40일 작정기도로 의사 선생님의 황당한 얼굴과 함께 손가락 하나부터 움직이는 신기한 상황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목격자가 뭔지 압니다. 여러분 신비하고 확실한 기도의 역사를 꼭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도 간접 목격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손에 이렇게 직접 목격한 자들의 증언, 확실한 진리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정리되어 이렇게 성경으로 주어져 있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직접 목격자는 아니어도 목격자를 닮아서 가장 담대한 모습으로 가장 귀한 가치를 발견하고 확신에 찬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런 목격자인 베드로와 요한과 상반되게 어리석고 겉모습만 꽤 신앙적인 척하는 변질된 지도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5절 보십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여기 공회는 들어보셨죠? 헬라어로 쉬네드리온 즉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유대의 최고 종교 법정이죠. 요즘 말로 하면 대법원, 헌법 재판소입니다. 최고 법기관에서 결정한 것이 “나가라”하는 명령이었습니다. 비난할 말이 없는, 이건 뭐 어떻게 법으로 허물이 잡히지 않는 가장 확실한 진리를 만나고 증거를 제시하니까 어이없이 창피하게 내린 결정 “나가라” 여러분 세상의 모든 것이 진리 앞에서 서면 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세상의 것의 한계를 보게 됩니다. 또 하나 15절 끝에 보십시오. 진리를 피하고 나서 기껏 그 최고 지도자들이 한다는 것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어떻게 덮어버릴까? 16절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저 당황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 여러분 세상의 특징 중에 하나가 “회의”하는 것, 미팅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엄밀히 말하면 회의, 미팅하는 곳이 아닙니다. 신앙은 회의를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회의 시간을 줄이고 기도시간을 늘리시기 바랍니다. 회원 참석이 어려워서 주로 주일에 회의를 잡는 경우가 많은데,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님도 주일에는 회의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회의 줄이시기 바랍니다. 주일에는 주님만 생각, 하나님 은혜를 회복하는 시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꼭 회의를 해야만 한다면 시간을 정해놓고 하시고 회의할 때 회의 중 기도시간을 대충 때우지 말고 기도순서를 먼저 하시고 기도시간을 늘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주인 되지 않는 회의, 하나님이 주인 된, 세상과 다른 그리스도인의 회의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저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듣고 아멘하면 될 것을, 병 나은 앉은뱅이를 보고 할렐루야 하나님 찬양하면 될 것을, 베드로와 요한 내쫓고 기껏 회의해서 세상의 방법으로 회의 길게 해서 낸 결론이 무엇인가? 위협과 협박이었습니다. 17절 보십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18절에는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뜻대로 안되니까 21절에는 중간에 “다시 위협하여 놓아주었으니”

사탄이 주로 쓰는 방법 위협과 협박과 경고, 즉 힘으로 무력으로, 억지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그 방법, 사탄의 방법을 지금 유대의 지도자들이 쓰고 있다는 사실, 여러분 이 핍박으로 우리 예수님께서도 죄 없으신 주님께서도 누명 쓰시고 조롱당하시고, 채찍으로 맞으시고 결국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태복음 26장 52절에 베드로가 주님 잡히실 때에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더니 그 귀를 도로 붙여 주시면서 하신 말씀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방법으로 권력과 힘으로 억누르는 방법으로는 망하는 길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우리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 사탄의 방법인 협박, 핍박, 억누름, 심지어 죽임당함까지 다 이겨내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변질된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사실 이 유대 지도자들은 모든 유대인들의 영적인 스승이요,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누구보다도 무지 몽매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한 길로,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할 영적 멘토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옳은 길에 있어야 할 자들이 언제부터인가 세상적인 방법으로 똑같이 중요하지 않은 것, 본질 아닌 것들 형식적인 것들 껍데기에 집중하니까 돈과 명예와 권력 맛을 보니까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요즘도 똑같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올바른 길에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형식만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본질 아닌 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수도 없이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겉만 번드르르한 외식하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0장 46절에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의식하며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 남이 나를 은혜롭게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코람데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입니다. 문안 받는 것, 상좌,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남들이 볼 때 높은 자리 보다는 하나님이 보실 때 내 자리가 어디쯤 될까입니다.

변질된 자들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목격자, 주님의 증인들에게 주어질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자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모하시고 준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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