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8.24 | 창세기 13장 1-18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13장 1-18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새벽 묵상
3년 전인가요? 주일에 설교할 기회가 있어서 설교하는 중에 톨스토이가 쓴 책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책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는 분 있습니까? 잊어버려 주셔서 또 말씀드려도 새로운 이야기로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책에 나오는 주인공 빠훔이라고 하는 사람은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면 빠훔이 걸었던 모든 땅을 1000루불에 주겠다는 촌장의 말을 듣고 열심히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합니다. 한 발이라도 더 멀리 걸어가면 더 많은 땅이 자신의 땅이 되기에. 밥먹는 것도 제끼고 열심히 뛰고 걸어 마침내 해가 지기 바로 전 출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빠훔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에게 주어진 땅은 반평남짓 그의 관이 들어갈 땅 뿐이었습니다. 이 톨스토이의 이 이야기는 사실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불경이 더 오래전에 쓰여진 이야기이기에 더 신빙성이 있는 것 같은데요.. 불경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지팡이를 든 남자 이야기입니다. 모든 내용이 똑같구요. 지팡이를 든 남자도 열심히 뛰고 달리고 해서 결국 출발점으로 제시간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출발점에 도착하며 힘없이 쓰러지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죽었는지 아십니까?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던지며. “저기까지!”라고 말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이 사람에게도 역시 주어진 땅은 그의 시체가 들어갈 반평남짓 땅 뿐이었답니다.
여러분 땅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잠깐 사용하다 두고 갈 곳이 땅이요. 땅문서에 내 이름 적히면 내 것인 줄 착각하지만 지으신 분의 것이요. 우리가 할 일은 내 땅이다 내가 원하고 싶은 것을 다 한다 하지 말고 잠깐 주어진 땅에서 지으신 분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야 할 곳이 바로 이 땅이라는 사실. 기억하시고 땅을 잘 보시고 잘 사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땅을 잘 볼 줄 알았던 아브람의 이야기입니다. 어제 12장에서는 아내 사래를 누이라 속여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했던 꼴 보기 싫은 남자 아브람을 봐서 참 힘 빠졌는데, 오늘은 웬걸 이 아브람이 땅이 무엇인지를 잘 보았고 실천했던 훈훈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잠깐 살펴보시면서 땅에 대한 교훈을 분명히 하시고 지혜롭게 땅 볼 줄 아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1. 첫째로 아브람은 땅은 단을 쌓고 예배하는 곳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하신 것은 땅을 그냥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땅을 맡기시는 것이라는 사실,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잠시 우리는 맡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아브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담에게 분명히 이마에 땀을 흘려야 땅에서 소산이 나오며 그 소산을 먹고 감사함으로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바로 땅의 이치요 사람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아브람은 잘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제일 먼저 단을 쌓고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4절 보십쇼.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만이 주인이시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아브람이었습니다. 이 아브람이 땅은 바로 예배하는 곳이다. 라는 의식은 한번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18절을 보십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즉 장막을 옮겨 헤브론으로 이사했어도 똑같이 제일 먼저 새로운 땅에 왔으니 또 예배하는 것을 첫 번째로 했던 사람이 바로 아브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앞에 사래를 누이라고 속여 잔머리 굴렸던 것 아마 이 부분 보시고 다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장막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어느 장소에 살게 되시더라고 우선 첫 번째가 새로운 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놓치지 않는 변함없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미 동남부 제일 밑에 플로리다에 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농부는 농장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혀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땅의 토질이 워낙 거칠어서 과일나무는 물론이고 가축조차 사육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했습니다. 그 땅에서 자라는 것이라고는 고작 가시나무와 방울뱀 뿐이었습니다. 농부는 일할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아 멍하니 하늘 보았다가 땅만 쳐다보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감고 기도하며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 척박한 땅에 있는 것이라고는 가시 나무와 방울뱀뿐입니다. 그러나 저 가시 나무들과 방울뱀 또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제게 맡겨주신 것들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앞도 캄캄하지만 하나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걱정스런 마음으로 기도와 예배가 끝나게 되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방울뱀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생각났습니다. “그래 내 목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가시나무와 방울뱀뿐이라고? 이것들을 한번 잘 사용해 보자”
농부는 방울뱀을 이용해 통조림을 만들었고 제조해서 세계로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또 농부는 방울뱀의 이에서 뽑은 독을 항독용 요소로서 각지의 연구소로 보냈습니다. 방울뱀의 가죽은 부인용 구두나 핸드백의 재료로 비싼 값에 팔려나갔습니다. 농부는 큰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농부가 사는 플로리다와 각 지역에서는 메마른 땅에서 기적을 만들어낸 농부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마을을 방울뱀 촌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방울뱀 촌은 1년에 2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땅은 예배의 장소임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아브람은 땅을 보면서 겉으로 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과 롯의 각 일행들이 함께 지내기에 너무 협소하여 8절 서로 싸움이 일어나게 되니까 아브람의 결정을 보십쇼. 9절 맨 끝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렇게 아브람의 우선권 양보로 서로 합의하에 아브람 일행과 조카 롯 일행이 헤어지게 되었는데 10절에 롯은 빠릿빠릿하게 온 땅에 물이 넉넉한 것을 보고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고 아브람은 소돔 고모라와 반대쪽으로 가게 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물이 넉넉한 땅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눈에 보이는 장소가 아니라 땅의 창조주 되시고 주인 되시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롯이 선택한 소돔 고모라는 다 불타 없어지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유창한 기도 눈에 보이는 기도 “나는 자주 금식했습니다. 예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악한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는 저 세리와도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런 기도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가슴을 치며 고개도 못 들고 통곡하는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헌금통에 다 보고 듣도록 쿵하고 넣는 부자의 헌금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보시고 가장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시는 주님이셨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 선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제가 중매를 10번 정도 해보니 다시는 중매하지 말아야 하겠다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10번 중에 한번만 성공해서 결혼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성분들은 그래도 대화도 해보고 성격도 하는 일도 유머 감각이 있는지 자기 앞가름은 하는지 여러 가지를 살펴보지만 남자분들은 저도 남자지만 남자들은 딱 하나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예쁜가 안 예쁜가 그거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다른 것들이 부족해도 예쁘기만 하면 무조건 오케이. 롯이 소돔 고모라 보고 물이 넉넉하고 보기 좋은 땅 보고 무조건 오케이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주의 일 할 때도 자꾸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 그런데 치중하면 결국 오래가지 못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잘 몰라주고 힘들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사람이 보고 칭찬할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실 일 그 일에 열심 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아브람은 땅을 보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땅을 지으시고 주인 되시며 움직이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롯은 소돔 고모라 선택하고 아브람은 그 반대로 가겠다고 결정하고 서로 반대의 길을 한참 가게 되었을 때에 14절 보십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길과 계획을 신뢰했던 아브람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14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북남동서 모든 쪽을 다 보이는 대로 아브람과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15절 끝에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신 것도 참 감사한데 16절에는 더 크고 장대한 자녀 번성의 표현을 하십니다. 16절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여러분 여기서 뭐가 생각나셔야 하는데.. 여러분 이 약속을 아브람이 들은 때가 바로 아브람 나이 거의 80이 다 된 나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10살 어린 70세. 80세 70세 부부에게 아직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브람 사래에게 이 하나님의 음성이 얼마나 황당한 표현이었겠습니까? 이제 다 늙은 우리 부부에게 티끌보다 더 많은 자손을 주신다? 참 어이없는 이야기이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100살에 아들 이삭을 주시는 하나님은 아브람 사래에게는 정말 신묘막측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으니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만 할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불가능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쉽니다만 크게 하지 마시고 정말 믿고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만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크고 은밀한 일을 행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장 크고 최고의 은밀한 일은 바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대신 죽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고귀한 희생을 통하여 그냥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히 거할 땅, 부활의 나라를 예비하셨다는 사실 여러분 자다가 깨서도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힘빠져 있지 마시길 바랍니다. 기뻐하고 또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땅을 잘 볼 줄 알았던 아브람,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영원한 땅을 사모하며 살았던 아브람, 저와 여러분도 땅을 잘 볼 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 평생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