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하지 말고 철저히 하라

새벽예배 2022.08.31 | 창세기 17장 15-27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17장 15-27절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26.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새벽 묵상

곽재선의 경영이야기 25편 “회사 일을 일로 하지 말아야 하는 6가지 이유”에 나오는 내용을 읽어드립니다.

나는 “일을 일로 하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그러면 반문한다. “일을 일로 처리해야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일을 일로 하지 말라.”는 의미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첫째,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형식주의에 빠져, 일을 위한 일을 해선 안 된다. 일을 할 때는 그 일을 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며, 일의 결과가 있어야 한다.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회의를 할 때도 회의를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의를 통해 무엇을 얻었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누구에게 보이려고 일하지 말라. 남에게 보이는데 중점을 두면 그것은 숙제가 된다. 자기 일이 아니다. 보이기 위한 문서, 보여주기 위한 회의,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억지로 하는 일은 하는 사람, 스스로도 신이 나지 않을뿐더러, 일의 결과도 좋지 않다.

셋째, 일을 멋있게 하려 들지 마라. 일을 멋있게 할 필요는 없다. 실속이 중요하다.

넷째, 일을 빨리 끝내려고만 하지 말라. 우리는 일을 할 때 결론을 빨리 내고, 그 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만큼 했으니 끝, 얼추 목표에 근접했으니 끝, 안 되는 이유가 생겼으니 끝. 일은 늘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한 일은 겸손히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일에 있어서 여기까지 만이라는 한계선은 없다. 더 잘하려는 욕심은 끝이 없어야 한다.

다섯째, 막연하게 일하지 말라.

일은 날림으로 두루뭉술하게, 대충대충 처리해선 안 된다. 사안 사안에 대해 심각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현장을 속속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디테일하게 챙기고 마지막까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기민하게 처리해야 한다.

여섯째, 기존에 해 온 관례에 따라 일하지 말라. 과거에 그렇게 해왔으니까, 이 맘 때에는 늘 하는 일이니까...그저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행사 치르듯이 처리하면 안 된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일을 창조하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일도 재미있고, 성취감도 크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글을 그대로 우리 신앙인들이 해야 하는 일에 적용해 보니까 얼마나 은혜가 되고 깨달음이 되는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일도 이렇게 잘 준비해서 열심히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대충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 적당히 해서는 안 됩니다. 내용이 뭔가 분명히 알고 중시 여기시고, 남에게 보이려는 외식하는 태도를 철저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빨리 끝내려고만 하지 말고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주신 사명 성실하게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대충대충 막연하게 하지 말고 철저히 준비하고 주님의 일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기존에 해왔던 대로 하지 말고, 진부하게 하지 말고,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주님, 성실하신 주님처럼 창조적으로 일하시길 바랍니다.

이 6가지 중에서 다섯 번째가 특별히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막연하게 일하지 말라 대충 대충 하지 말라. 그래서 제가 오늘 말씀 제목을 “대충 하지 말고 철저히 하라” 이렇게 세워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 뭡니까? 생명 살리는 일입니다. 영혼 살리는 일인데 대충해서는 되겠습니까? 더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철저하게 일하시는 모습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또한 철저히 일하는 모습이 발견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하실 일을 철저하게 준비하여 하시되 대충대충 하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철저하신 하나님과 짝을 이루어 아브라함도 만만치 않게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이루어 드렸습니다. 얼마나 훈훈한지 모릅니다. 바로 이 모습이 하나님과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대체 어떤 부분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철저한 모습이었는가?

1. 첫째로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시면서 철저하게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제 본문 17장 5절에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아브람은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이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15절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십니다. 사래는 “나의 공주”란 뜻인데 이 사래가 사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사라는 일본말 접시라는 뜻이 아니죠?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끝에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무슨 말입니까? 그냥 보통 고귀한 존재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모든 민족의 어머니로 삼으시겠다는 것,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아버지로 삼겠다는 것,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사라를 온 민족의 부모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온 족속들의 부모로의 비전을 꿈꾸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평범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 열방의 믿음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 그게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었습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만 아니라 사라까지 이름을 바꾸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에서는 두 명이란 숫자는 증인의 숫자입니다. 불가능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반드시 아들을 주셔서 그 아들로 인하여 온 민족이 멋지게 뻗어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증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즉 확실한 증인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비전을 분명히 하시는 모습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정말 확실하게 일하시는 분이시다. 시원시원한 분이시다. 철저한 분이시다. 이걸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이 꿈꾸어야 할 일, 우리의 비전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온 민족에 신앙의 모범인물이 되는 것, 대표가 되는 것 이게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그저 돈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런 하나님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별로 차이 없는 어린아이같이 미숙한 신앙에 머물러 계실 것입니까? 이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 대장부의 비전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 되고 싶습니다 가 아니라 부자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많은 돈으로 이런 일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싶습니다가 아니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이렇게 멋지게 증거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이런 권력을 가지길 원합니다가 아니라 세상의 권력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이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꿈이 바뀌시길 바랍니다.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의 꿈 아브라함, 사라의 꿈과 비전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꿈과 비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은 할례를 행하라 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철저히 구별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23절 앞부분 보십쇼.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어제 이 할례를 오늘날 세례라고 설명 드렸는데 하나님이 할례를 철저히 행하라고 하신 것, 그 이유? 구별됨에 있었습니다. 어제 읽은 14절에는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우리는 여기서 그만큼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녀들을 특별히 구별되게 사랑하셨고 구별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느껴야 합니다. 물론 이 할례를 후대의 율법학자들이나 지나친 유대인들이 법으로 정하여 엉뚱하게 그 형식만 남게 되었지만 이 본래 의도는 이 땅에 살면서 내가 너희를 특별히 사랑하니 특별히 구별되게 살아라! 이게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어제 안 다루어진 부분이 있는데 어제 읽은 12절에 “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했습니다. 왜 팔일인가? 우선 의학적으로 가장 통증을 덜 느끼는 시기가 생후 8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레위기 22장 27절에 모세 정결법에 의하면 생후 7일간은 부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8일은 7+1의 날로 새 출발의 날이요 부활의 날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섬세하게, 세밀한 여러 가지 이유로 너희는 구별되니 나의 백성이니 특별한 새로운 출발의 삶을 살아라 그런 여러 속 깊은 의미로 이 할례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무엘 그리고 삼손 나실인으로 살게 하신 것, 이 나실이라는 뜻도 구별하다는 뜻이죠? 바로 이 구별됨 때문이었습니다. 머리를 깍지 않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는 것, 부정한 것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 다 무엇입니까? 구별되게 살라. 세상에 속하였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로 살아가는 것, 영원을 사모하면서 사는 것 그게 바로 구별되게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술 마시지 말라고 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지금 그런 것 같고 조금은 되고 안 되고 이럴 때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구별됨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뭔가 세상 사람들하고 확실히 달라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구별되게 살라고 하신 우릴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아브라함도 하나님 앞에 철저히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만 철저하게 아브라함 사라 이름 바꾸시면서 큰 비전을 품게 하시고 철저히 구별되게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철저함과 손발이 잘 맞게 아브라함도 또한 철저했습니다. 23절 다시 보십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했습니다. 도대체 할례는 왜 해야 합니까? 왜 8일째 해야 됩니까? 꼭 해야 됩니까? 다 해야 됩니까? 묻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26절 보십쇼.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여기서 “그 날에” 히브리어로 “버에셈 하욤”이라고 발음하는 데 그 날,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뒤에 22장에 이삭을 바치라 하실 때도 100살 때 낳은 아들 바칠 때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22장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전혀 주저함 없이 송별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바로 순종했던 아브라함, 나이는 99세였지만 순종의 발걸음은 청년이었습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대표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까지 청년들 사역을 하다 보니까 어떤 청년은 나이는 20대인데 꼭 80세처럼 사는 청년들이 있고요. 어떤 분은 나이는 80이 넘으셨는데 찬양할 때 보니까 주의 일 할 때 보니까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시던지..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나이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안에 젊음의 열정이 있는가를 보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나이 보시지 말고 주의 일하는데 있어서 청년의 열정으로 일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 아브라함은 어제 12절에 하나님 말씀하신 모든 남자는, 심지어 이방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할례 행하라 하신 그대로 27절 보십쇼. “그 집의 모든 남자, 집에서 태어난 자 이방 사람에게서 돈 주고 사온 자 할 것 없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남자에게 행하였습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하나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한 발만 들여놓고 한 발은 세상에 어정쩡하게 있지 마시고 완전한 순종 아브라함의 철저한 순종을 본받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십자가 지신 것은 철저한 순종이었습니다. 조금도 물러섬이 없으셨습니다. 주춤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애매하지도 않고 완전히 자신의 전부를 다 주신 예수 그리스도, 찬송가 중에 그런 구절 있죠?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우리에게 갚을 수 없는 생명을 전부를 내어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 일에 철저한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