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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완성하신 대제사장

새벽예배 2023.09.18 | 히브리서 10장 1-10절 | 이선기 목사




히브리서 10장 1-10절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스스로 고자가 된 신학자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3세기 초반 기독교계에서 혜성 같이 떠올라 정통과 이단 양측으로부터 끊임없는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인물, AD 185년경에 탄생하여 254년에 세상을 떠난 오리겐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 천장에 새겨진 신학자 성인 목사님들의 이름 중에 이 분의 이름이 있죠. 정확한 이름은 오리게네스 아다만티우스라고 합니다. 터툴리안이 서방신학의 선구자였다면 이 오리겐은 동방신학의 전통을 세워놓은 인물이다 할 수 있습니다. 오리겐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아버지 레오니데스는 AD 202년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장남이었던 오리겐은 집안을 돌보며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을 지녔지만, 순교에 대한 열정도 불타고 있었습니다. 오리겐은 18세 어린 나이에 알렉산드리아 학교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만큼 이미 학식과 인격과 덕성에서 모두에게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죠. 오리겐은 학자로서 신학의 기틀을 마련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알렉산드리아를 신학의 요람으로 꽃피게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엄격한 생활방식에 따라 낮에는 힘든 일을 많이 하였고, 밤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는 금욕주의자로 때로는 단식하면서, 때로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 가면서 가능한 한 엄격한 생활을 하였고 의도적으로 침대에서 자지 않고 맨바닥에서 잤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여 두벌의 겉옷을 갖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았으며, 또 앞날을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9장 12절의 말씀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여 고자(鼓子)가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싸웠을까? 끊임없이 계속되는 유혹을 이기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 오리겐은 아예 그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힘든 길을 선택합니다. 갑자기 조선시대 내시가 생각이 나는데요. 여러분 과연 오리겐은 어땠을까요? 죄의 유혹을 완전히 끊어낼 수 있었을까요?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오리겐은 2000권이 넘는 어마어마한 책을 저술하고 복음 때문에 옥고를 치르다가 AD 253년 6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오리겐만큼 자기와의 싸움에서 강했던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죄의 유혹을 이기고 싶었으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사람 중에 가장 율법을 잘 지킨 가장 양심적인 사람이다.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든 사람이 이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까지 하길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죄의 유혹을 이기려고 스스로 아예 유혹받을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리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죄의 유혹이 있지만 유혹에 넘어갈 상황이 와도 이러면 안 되지 빨리 깨닫고 죄의 길에서 벗어나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지시기 위해 오셨고 십자가 지시고 대신 죽어주심으로 인간의 근본 죄를 대속하셨기에 이제는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수도 없이 너무 쉽게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우리를 위해 구약 시대에는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리며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리게 하여 그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께서 보시다가 도저히 이제는 안 되겠다고 여기신 나머지 특단의 조치, 즉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시사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단번에 이 제사드림을 완성하셨다는 사실, 이제는 더 이상 양과 소가 대신 죽지 않고 독생자 아들이 한 번에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한 번에 제사를 끝내시고 완성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 인간이 할 일은 이 놀랍고 위대한 사랑, 아들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이 낮아지셔서 인간이 되신 그 엄청난 사랑을 믿는 것, 믿고 감사하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이 놀라운 소식, 복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먼저 이 복음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믿음의 사람이 된 것에 감사 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완전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서 기자는 7장부터 시작해서 계속 반복하고 강조하고 또 다르게 표현하면서 오늘 본문 10장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수요일 새벽까지 이 히브리서 10장의 내용인데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결론 부분입니다. 반복되고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이토록 반복하여 계속 강하게 주장하는 히브리서 기자의 심정을 공감하여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고 간절한 그 마음, 로마 제국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극에 이르러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 당하는 상황인데 이 틈을 타서 유대주의자들이 다시금 복음을 위협하는 힘든 시기에, 유대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복음의 본질을 아주 정확하게 전하고 싶었던 히브리서 기자의 마음, 여러분 지금도 교회가 이런 비슷한 시기가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외적인 핍박은 없지만 교회가 본질을 놓친 나머지, 혹은 껍데기와 형식이 너무 지나쳐 핵심, 예수 그리스도를 놓친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중심을 흐리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음의 본질을 다시 분명히 하고 다시 첫 신앙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닙니까?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본질,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시선을 모으시고 다시 뜨거워지시고 그 은혜를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 완전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결론 부분에서 히브리서 기자의 마음을 느끼며 우리가 깨달을 교훈은



1. 첫째로 율법은 그림자일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1절 보십쇼.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유대주의자들이 그토록 목숨과 같이 생각하는 율법, 그 율법의 참 목적, 그 율법의 본질을 짚어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다. 여기서 그림자는 헬라어로 “스키안”이라고 발음하는데 여러분 그림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 실체를 어렴풋이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그림자입니다. 실체, 본질이 있는데 대략 어떻게 생겼는지 겉 테두리 정도를 알게 해 주는 역할, 태양이 비추어져서 본질 그 뒤에 어렴풋이 생기는 것이 바로 그림자입니다. 율법은 그림자 역할을 하는데 본질은 바로 그리스도시다. 모세가 받은 십계명부터 시작된 그 율법은 바로 최종 목적, 최종 주인공 율법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를 미리 예표하는, 미리 어렴풋이 주님을 소개하여 그 테두리 정도를 알게 해 주는 것으로 이제 주인공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 율법의 시대가 끝이 났다. 율법의 역할이 다 끝났다. 그런 표현입니다. 그림자라는 설명이 부족할까봐 바로 뒤에 “참형상이 아니므로” 라는 표현까지 첨부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예수님의 그림자의 역할을 했던 사람 아닙니까? 마태복음 3장 11절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결혼식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등장하는 들러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랑 신부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에 기대감을 주는 역할 신랑 신부를 소개하는 그림자 역할을 감당하지 않습니까? 이제 율법의 주인공,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 율법의 역할 그림자 역할을 다하였다. 이제는 그림자 붙들지 말고 본질을 붙들라.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고 들러리 붙들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라.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태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도 아직도 그리스도를 그냥 선지자중의 하나로 밖에는 인정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껍데기들이 얼마나 주인공을 못 보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삶의 주님을 가리는 그림자들이 있다면 이제는 다 벗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이건 다 쓰레기다 하고 태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동안 주인공에게로 인도하기 위한 필요한 도구였음을 기억하시고 주인공께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율법의 역할과 한계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아무리 그림자라고 해도 율법이 악한 것,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율법이 주인공을 가리고, 본질을 못 보게 하면 악한 것이 되지만 율법이 좋은 도구가 되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 역할을 정확히 하면 됩니다. 3절 보십쇼.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즉 율법의 역할, 제사의 역할은 바로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 즉 죄가 죄임을 깨닫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있으므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경고, 옐로카드 역할을 한다는 것, 처음에 오리겐이 스스로 고자가 된 것, 오리겐은 죄를 짓는 자신을 자꾸만 발견하며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옐로카드를 보냈습니다. 너무 옐로카드를 보내고 또 보내다 너무 힘들어서 아예 레드카드로 잘라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의 이런 애절한 자기와의 싸움이 있는 것은 사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죄짓고 아무런 구별 없이 살아가는 아주 세속화된 이들이 있습니다. 좋은 게 좋다고 세상도 좋고 교회도 좋고 이런 분은 아직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끊어내야 할 것들과 붙잡아야 할 것들을 잘 찾으시면서 율법의 역할을 깨닫고 죄에 예민하시고 죄와 싸워 이기는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제사를 원하시지 않고 완성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6절 보십쇼.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동안 구약의 제사, 양과 소를 잡아 짐승이 피를 대신 흘려 제사지내는 것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8절에도 보십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제 하나님은 구약의 제사를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않으신다. 예전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내 죄 대신 양과 소를 잡고 피를 흘리며 뉘우치는 그 모습을 보시고 그나마 다시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셨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짐승의 피를 보시고 그 연기를 받으시는 것 그게 과연 하나님께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아이가 잘못했다고 저금통 깨뜨려 아이에게는 금쪽같은 돈 가져다준들 엄마에게 그게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알고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유대인들은 율법, 아직도 신앙의 옛모습에 사로잡혀 그저 양과 소만 잡아 바치면 되는 줄 알고 있으니 하나님의 본심, 독생자를 보내사 죽는데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 이걸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예배드림으로, 우리들이 드리는 헌금이나 예물이 크게 하나님을 기뻐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귀한 것을 드려도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 성의를 드리는 그 마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진심을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참 예배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율법에 꽉 사로잡혀 있지 말고 본질을 깨닫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드리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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