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새벽예배 2022.11.08 | 창세기 44장 14-34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44장 14-34절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새벽 묵상


여러분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모리아산에서 바쳐야 했을 때 정말 칼을 들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아브라함을 급히 말리시고 제물될 양을 발견하게 하시고 대신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게 되었을 때에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여러분이 아브라함이었다고 한다면 어떤 마음의 교훈을 얻었을까요? 저는 아브라함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들, 이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까봐 이렇게 시험하신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들이 우상될까봐 이런 충격적인 일을 겪어야 정신 차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혹시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한 것은 아닌지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고 하루 빨리 깨달음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집중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아주 밖으로 크게 외치며 깨달음을 표현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욥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시험을 겪으면서 왜 이 엄청난 고난을 자신에게 주셨는지 도저히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길게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사람이 바로 이 욥이었는데 무려 3장부터 37장까지 계속 욥이 고난의 이유를 찾고 괴로워하며 친구들과 논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 부분에 욥은 38장부터 41장까지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에 대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욥기 42장 초반에 하나님께 이렇게 크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즉 귀로 듣기만 할 때는 잘 몰랐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고백하면서 회개하게 됩니다. 욥기 42장 6절이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저와 여러분도 바로는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고민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깨달음을 얻게 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요셉이 45장에서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기 바로 전, 마지막으로 요셉이 형들을 시험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버렸던 형들을 기억하면서 형들이 베냐민도 자신처럼 버릴지, 아니면 베냐민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즉 요셉은 아버지와 형들을 애굽으로 데려오기 전에 형들이 옛날 일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그런 분 아닙니까? 은혜 베푸시기 전 철저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요셉에게서 하나님의 섭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요셉의 형들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답게 점점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해갔다는 사실입니다. 고난과 시련이 힘들지만 유익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성화의 그리스도인,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요셉의 시험을 보십시오. 2절에 보니까 요셉이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즉 베냐민의 자루에 일부러 몰래 넣게 합니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4절에 형들의 일행이 멀리 가기 전에 청지기를 시켜서 그들을 추격해 그들에게 죄를 묻게 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절 “이것은, 즉 이 은잔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즉 너희가 주인의 은잔을 훔쳐 갔으니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9절에 보니까 아주 자신 있게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아마도 형들은 이 은잔이 자신들의 자루에서 나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1. 첫 번째로 요셉의 형들이 하나가 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9절 보십쇼.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만약에 형들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뒷 문장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라는 대답은 빼고 우리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 사람만 죽이면 됩니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 요셉 팔아버릴 때 형제들이 요셉의 생명을 두고 다투고 불화할 때의 그 분열된 모습과는 아주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 은잔을 그 누구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우리가 다 노예가 되겠습니다. 서로를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기에 말 할 수 있는 제안입니다. 다 함께 책임지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은 오히려 믿음의 형제들을 신앙 가운데 하나로 결속시켜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풍족해짐이 오히려 시기하고 질투하고 서로 분열되게 만들고 어려움과 환란이 믿음의 사람들을 더 응집하게 만든다는 사실, 고린도후서 8장 2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하나 됨을 격려하는 부분입니다. 물질적으로 힘든 가운데서 오히려 기쁨이 넘치고 더 풍성하게 헌금을 넘치도록 하게 하였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언제 가장 하나 되었는지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힘들 때 교회가 눈물로 서로 결속되지 않았습니까? 지금 혹시 우리가 너무 가진 것과 누리는 것이 많아서 서로 미워하고 분열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요셉의 형들은 고난을 통해 사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형들의 단언과 자신감 있는 대답과는 다르게 12절 보니까 모든 형제들의 자루를 풀어 보니 은잔이 막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됩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13절 보십쇼.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가니라” 옷을 찢는다는 것은 가족이 세상을 떠나거나 극한 슬픔의 일을 겪었을 때의 행동입니다. 그토록 자신 있었고 모두가 정말 떳떳했는데 어찌 이 은잔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막내 베냐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인가? 눈여겨 볼 것은 앞에 9절과 10절입니다. 요셉의 청지기는 아무리 이들이 9절에서 우리 중 누구에게서 은잔이 발견되면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했어도 그럴 것까지는 없고 은잔이 나온 사람만 노예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10절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아마도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왔을 때도 청지기는 이 10절 내용을 반복했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죄가 없다. 이 은잔이 자루에 있었던 사람만 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성으로 요셉이 있는 곳으로 함께 되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형들에게 있어 베냐민의 운명은 곧 자신들의 운명과 동일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형제인데 어찌 이게 베냐민만의 일이겠느냐? 생사를 같이 하겠다는 형제들의 결심과 행동, 옛날 요셉만 팔아버리고 나몰라라 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바뀐 형들의 모습입니다.

뒤에 내일 본문 17절에 가면 요셉을 다시 만나게 되고 요셉이 진짜 마지막으로 형들을 최종 시험하게 되죠. 유다가 우리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하니까 17절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이 제안 마지막 요셉의 시험이었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고향 가나안 땅에서 자유를 누를 마지막 기회를 제안합니다. 그런데도 형들은 결코 베냐민만을 내어버리지 않습니다. 비록 자기들의 아내나 자녀와 떨어져 일평생 애굽에서 노예가 될지언정 베냐민을 두고 갈 수는 없었던 사랑의 사람이 된 형들의 모습. 이 모습을 본 요셉이 얼마나 울컥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고난을 겪으면서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시길 바랍니다. 내가 당한만큼 내 밑에 두고보자 이건 한국 군대에서나 먹는 마음이요. 옛날 시어머니에게 고난을 겪은 옛날 며느리가 먹는 마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내게서 고난이 끝나도록 나는 고난을 겪었지만 내 다음에까지 이 고난이 계속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했으니 너희들은 죽을 운명에서 벗어나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라. 주님께 평생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요셉의 형들은 고난을 통해 회개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지금 베냐민이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애굽으로 돌아가면서 노예가 되기 위해 애굽으로 가는 길에 분명히 요셉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아 이 노예가 되어 되러 가는 이 길을 동생 요셉이 갔겠구나. 그것도 혼자서 갔겠구나. 우리는 그래도 함께 가는데 요셉은 어찌 이 길을 홀로 갔을까? 우리를 원망했겠지? 우리가 왜 그런 악한 일을 저질렀을까? 아마도 요셉의 형들은 하나같이 마음의 후회와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일 본문 16절에 보면 유다가 총리 요셉에게 이런 표현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지금 베냐민의 죄를 이야기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요셉의 형들이 그동안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린 죄를 그대로 다 찾아내셨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들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 보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다 보고 계셨고 우리를 똑같이 애굽에 노예가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우리가 얼마나 죄를 짓게 되는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 우리의 작은 것까지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한 것은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삶 속에 찾아온 고난을 통해 내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점점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