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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압살롬아 내아들 압살롬아!

새벽예배 2023.05.16 | 사무엘하 18장 24-33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18장 24-33절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 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5월 8일이 어버이날이었고, 이틀 전 5월 14일 주일은 mother's day겸 어버이주일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전화 한 통화, 아니면 직접 찾아뵙고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셨습니까? 혹은 부모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기에 만날 수 없고 내 자녀들이 찾아오거나 연락이 와서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경험하셨습니까? 바라기는 부모님의 좋은 것들은 기억하시고 되새기시고 내 후손들, 자녀들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며 기억되도록 하는 모범적인 부모님 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좋은 신앙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신앙의 모델이 되시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부모님께 마음 아프게 했던 일이 있다면 시간이 가기 전에 빨리 뉘우치시고 기회 있을 때 관계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자녀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먼저 손을 내미시고 품어주시길 바랍니다.


자녀 중에 가장 부모를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 다시 만날 기회를 주지 않고 먼저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일 것입니다. 이걸 참혹할 “참”자에 슬플 “척”자를 써서 “참척”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은 심지어 3명의 아들들을 다 먼저 떠나보낸 참척을 세 번이나 겪은, 부모로 봐서는 너무 큰 고통을 겪은 불쌍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였습니다. 왜 3명인가? 우선 잘못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고 생긴 아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통해서 생긴 아들이 얼마 살지 못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금식하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르며 생긴 아들이었기에 먼저 데려가셨습니다. 또 하나 암논이 죽고 말았습니다. 암논이 배다른 딸 다말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알았던 다윗이었지만 제 때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겁탈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다말의 친 오빠 압살롬에 의해서 암논은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아들이 죽는 큰 고통을 겪은 다윗은 아마도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입니다. 행여나 또 아들이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마음에 큰 걱정과 부담을 안고 압살롬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 번째로 압살롬마저 부모보다 앞선 죽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걱정해서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해서 그런지 형을 죽인 죄를 정확히 깨닫고 회개시키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어야 했는데 아버지로서 애정이 지나쳐서 결국 압살롬을 방치하고 그저 괴로워만 하다가 마지막에는 인간적인 아버지의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압살롬의 군대와의 전쟁에서 혹시 압살롬을 대하게 되면 그를 너그러이 대해 달라.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 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요압의 창을 피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명령을 내렸어도 압살롬이 죽지 않았으면 다윗이 죽을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기에 결국 요압 장군에 의해서 압살롬은 죽게 되고 어제 새벽에 보신대로 수풀 사이에 큰 구멍에 던져지고 돌무덤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참혹한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오늘 본문에 보니까 두 사람이 달려와 전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요압장군의 지시대로 혹은 본인의 판단대로 사독 제사장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다윗의 군대의 승리를 전하면서 다윗의 얼굴을 살펴보며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애매하게 대답을 하여 분노하고 절망하는 다윗의 모습을 피하게 됩니다. 29절 보십시오.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사실은 아히마아스보다 먼저 출발했으나 늦게 도착한 구스 사람도 다윗에게 아들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직접 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더 자세히는 전하지 않는 센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1절 보십쇼.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이렇게 우선 여호와께서 왕의 대적에게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보고하는 것으로 먼저 다윗의 마음을 배려하면서 승리의 소식을 전했다는 것은 지혜로운 배려의 모습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좋은 소식, 가장 먼저 하나님의 손길과 역사하심을 전하는 것이 따뜻한 말 전달의 방법임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다윗은 구스 사람에게 묻습니다.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32절 보십쇼.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앞에 아히마아스도 선의의 거짓말, 다윗이 상처받지 않도록 선의의 거짓말을 했지만, 이 구스 사람도 역시 알면서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는 사실, 즉 압살롬이 노새 타고 가다가 상수리나무에 걸렸고 요압과 군사들이 창으로 찔러 죽었다는 것과 구덩이에 던져지고 돌무덤이 되었다는 이 참혹한 소식은 알면서도 자세하게 전하지 않았던 것은 센스였고 배려하는 신하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센스와 배려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소식 전할 때는 정말 마음껏 더 크게 더 환호하며 내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아픈 소식을 전할 때는 정확히 알려주되 가능하면 상처받거나 충격 받지 않도록 피하는 배려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했습니다. 함께 공감해주고 배려해 주고 함께 즐거워하고 울어주는 데까지 이르는 따뜻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이토록 배려하고 선의의 거짓말까지 하는 아히마아스와 구스 사람의 보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했지만 다윗은 그 심히 아픈 마음을 주체하지를 못합니다. 33절 보십쇼. “왕이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어제는 넓은 차원에서 이렇게 살인자였고 죄만 지었던 아들 압살롬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던 다윗에게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는데 오늘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 괴로워하는 다윗의 모습을 냉정하게 비판하면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매튜 헨리 목사님은 이 압살롬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정리하셨습니다.


1. 첫 번째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버림받은 자를 용모가 잘생겼고 재치가 있다고 해서 버릇없는 아들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윗이 아무리 아버지로서 아들 압살롬을 사랑한다고 해도 어떤 이유 때문에 잘생긴 것 때문에 그래서 그랬는지 너무나 버릇없는 즉 너무 버릇이 없어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그런 혈기 있고 복수하는 아들을 그냥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평가입니다.


여러분 자식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이 볼 때 잘못을 저지를 때는 냉정해야 합니다. 잠언 29장 17절에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저도 딸이 둘 있는데 이게 쉽지 않더라고요. 아들이라면 어디라도 좀 체벌을 할 텐데 딸이니까 이게 어렵더라구요. 너무 사랑스럽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따끔하게 가르치는 것, 다윗은 이걸 미루고 또 미루고 방치했기 때문에 결국 그 비참한 압살롬의 최후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함께 실천해야 할 진지한 숙제가 되시길 바랍니다. 바른 길을 제시하는 부모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묵묵히 따라야 할 하나님의 섭리뿐만 아니라 찬양하고 경배해야 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싸우려는 점이다.


압살롬과 그 참모들 그 군사들이 하나님 없이 인간의 힘으로 다윗의 군대와 싸우려 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그 누구도 함부로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군사가 많고 최고의 무기를 가졌어도 하나님이 바야르 수풀 속에서 그냥 묻어버리시면 칼에 죽은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많게 하시는 것을 모르고 함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헛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소망하기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가 아니라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는 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세 번째 행정 집행권을 위임 맡은 왕으로서 다윗은 공리를 위하여 일해야 할 사람으로서 국가의 정의를 역행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본능적인 애정에 앞서서 국가의 이익을 기뻐해야만 한다.


즉 지금 압살롬 군대와 다윗 군대의 그 어마어마한 싸움에서 목숨 걸고 싸워 압살롬 군대를 이겨낸 역전의 용사들, 당연히 그 군인들을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지는 못할망정 사사로운 그것도 반역한 아들 때문에 본능적인 아버지의 애정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것은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때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면 어떻게 됩니까? 공정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바로 그 교훈입니다. 내 사사로운 감정을 이겨내고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대중의 뜻을 헤아리고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신 최고의 지도자 하나님을 닮은 지도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한 사적인 마음을 잃어버리지 못해 제물을 훔쳐도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겁탈해도 방치하더니 결국 두 아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서 블레셋에 빼앗기고 패전하고 패전의 소식과 엘리 아들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질 때에 엘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엘리는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비느하스의 아내는 해산하다 세상을 떠나지 않습니까?


지도자의 책임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편협한 사람 되지 말고 지도자답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견고한 지도자로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맹렬한 감정에 빠져서 그의 입술로 분별없이 말한 점이다.


33절에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이런 감정에 빠진 말들이 문제가 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내일 본문 1절과 2절에 보면 왕이 이렇게 통곡하며 슬퍼하며 자기가 죽었어야 한다고 괴로워한다는 소식이 백성들에게 들려지고 백성에게 슬픔이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지도자가 감정에 빠져서 함부로 말하면 그 말 때문에 결국 곤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 13장 3절에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하셨습니다. 더 책임이 큰 지도자가 될수록 더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까지 입술을 지키시고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 내 아들아가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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