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새벽예배 2022.10.17 | 창세기 36장 1-43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36장 1-43절


  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2.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3.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4.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5.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9.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10. 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아들은 르우엘이며

  11. 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요

  12.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13. 르우엘의 아들들은 나핫과 세라와 삼마와 미사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자손이며

  14. 시브온의 손녀 아나의 딸 에서의 아내 오홀리바마의 아들들은 이러하니 그가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에서에게 낳았더라

  15.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으로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16. 고라 족장, 가담 족장, 아말렉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엘리바스의 족장들이요 이들은 아다의 자손이며

  17. 에서의 아들 르우엘의 자손으로는 나핫 족장, 세라 족장, 삼마 족장, 미사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르우엘의 족장들이요 이들은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자손이며

  18. 에서의 아내인 오홀리바마의 아들들은 여우스 족장, 얄람 족장, 고라 족장이니 이들은 아나의 딸이요 에서의 아내인 오홀리바마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라

  19. 에서 곧 에돔의 자손으로서 족장 된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20. 그 땅의 주민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은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21. 디손과 에셀과 디산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세일의 자손 중 호리 족속의 족장들이요

  22. 로단의 자녀는 호리와 헤맘과 로단의 누이 딤나요

  23. 소발의 자녀는 알완과 마나핫과 에발과 스보와 오남이요

  24.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이 아나는 그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

  25. 아나의 자녀는 디손과 오홀리바마니 오홀리바마는 아나의 딸이며

  26. 디손의 자녀는 헴단과 에스반과 이드란과 그란이요

  27. 에셀의 자녀는 빌한과 사아완과 아간이요

  28. 디산의 자녀는 우스와 아란이니

  29. 호리 족속의 족장들은 곧 로단 족장, 소발 족장, 시브온 족장, 아나 족장,

  30. 디손 족장, 에셀 족장, 디산 족장이라 이들은 그들의 족속들에 따라 세일 땅에 있는 호리 족속의 족장들이었더라

  31.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

  32. 브올의 아들 벨라가 에돔의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의 이름은 딘하바며

  33. 벨라가 죽고 보스라 사람 세라의 아들 요밥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4. 요밥이 죽고 데만 족속의 땅의 후삼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5. 후삼이 죽고 브닷의 아들 곧 모압 들에서 미디안 족속을 친 하닷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 이름은 아윗이며

  36. 하닷이 죽고 마스레가의 삼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7. 삼라가 죽고 유브라데 강변 르호봇의 사울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8. 사울이 죽고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9.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죽고 하달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 이름은 바우며 그의 아내의 이름은 므헤다벨이니 마드렛의 딸이요 메사합의 손녀더라

  40. 에서에게서 나온 족장들의 이름은 그 종족과 거처와 이름을 따라 나누면 이러하니 딤나 족장, 알와 족장, 여뎃 족장,

  41. 오홀리바마 족장, 엘라 족장, 비논 족장,

  42. 그나스 족장, 데만 족장, 밉살 족장,

  43. 막디엘 족장, 이람 족장이라 이들은 그 구역과 거처를 따른 에돔 족장들이며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



새벽 묵상


가시나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가사를 읽어드립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가수 조성모 씨가 불러서 일반 가요인가? 하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이 곡은 하덕규 목사님께서 작사 작곡하신 곡이고 하나님께서 죄성으로 가득 찬 자신을 만나주셨음을 간증하는 곡입니다. 하덕규 목사님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지 3년쯤 되었을 때, 내 속이 너무도 훤히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내 안의 죄성을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괴로움을 밖에 있는 숲을 보면서 그리고 내 안을 보면서 깊은 생각과 마주했습니다. 그분이 내 안에 오셔서 가시나무와 같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 가시에 찔리면서 가시를 뽑아주시고 끝까지 품어주셨습니다 그동안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것들을 너무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저 '선물'만을 기다리고 좋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우리 속에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죄성을 발견하시면서 그 죄성을 십자가에서 피 흘려 대신 죽어주심으로 깨끗이 씻어주시고 해결해 주시고 영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에서의 족보, 에서의 자손 이야기입니다. 참 길게 1절부터 43절까지 읽었는데요. 그런데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단순히 에서의 족보와 자손 이야기만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에서가 자기 속에 가시나무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었구나.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내 이기심을 해결하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생각대로 살았던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동생 야곱은 그 이름처럼 속이는 자로 살았고 태어날 때부터 그저 마마보이로 살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장자의 축복권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했기에 비록 중간에 엉뚱한 길로 가다가 비극을 겪기도 했지만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될 수 있었고, 에서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구나 그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자기를 제어하지 못한 것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했다는 것 생각하시면서 교훈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에서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맘대로 살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결혼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시면 에서의 세 명의 아내들의 이름이 발견됩니다. 누구죠? 2절 보십쇼.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헷 족속 아다와, 히위 족속 오홀리바마 이렇게 두 명의 아내하고요. 3절 보십쇼. 세 번째 아내 이름이 나옵니다.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우선 첫 번째 아내 아다와 두 번째 아내 오홀리바마를 아내로 맞이한 시기가 중요한데요. 여러분 에서가 이 두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장자권을 잃기 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이삭이 눈이 잘 안 보이고 늙어서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줄 알고 에서에게 축복할 테니 사냥해 와라 그래서 리브가가 야곱을 에서처럼 꾸며서 아버지에게 축복기도 가로채라고 보낸 것, 이삭이 야곱을 에서인 줄 알고 축복기도 한 것은 바로 창세기 27장에 나옵니다. 에서가 이미 이방 여인과 결혼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장자권의 기도를 받지 못해서 화가 나서 화낌에 가나안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창세기 26장 맨 끝에 두 이방 아내와 결혼한 것 때문에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하고 나와 있습니다. 에서는 철저히 이방 아내와 결혼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분명히 에서에게 아내 리브가를 멀리서 데려오게 한 할아버지 아브라함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늙은 종 엘리에셀과 맹세하면서 멀리 800km 되는 하란까지 가서 아내감을 데려올 정도로 아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이 왜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고향에 가서 아내감을 얻으라고 했는지 정확하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고사하고 자기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을 생각해서라도 아내를 가나안에서 찾으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에서는 자기 맘대로 자기 고집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결혼을 해버린 것입니다. 아니 가나안 여인이면 왜 안 되나? 결혼은 내가 하는 거지? 부모님이 하는 거 아니잖아요? 하고 반항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교훈

1. 에서가 자기 부모님의 뜻에 불순종 했고 하나님의 뜻에도 불순종했기에 축복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물론 결혼 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뜻을 달리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좋아하시는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과 혹은 딸이 좋아하는 사람과 부모님의 뜻이 다른 경우에서 오는 갈등.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봐라. 심지어 그 사람을 찾아가서 그만 헤어지라고 돈 봉투까지 전해주는 것, 참 많이 익숙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부모님과 뜻이 다르긴 해도 결국에는 웬만하면 부모님이 양보하지 않습니까? 저는 두 딸에게 지금부터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왠만하면 한국 아이랑 교제해라 한국말 할 줄 아는 남자애를 데려와라. 혹시 일본 남자애를 데려오면 아빠는 딱 한가지 확인할 거다. 그 남자애한테 물어볼 거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 한국이라고 하면 오케이 아니라고 하면 그 남자애는 땡이다. 제가 너무 앞뒤가 꽉 막힌 건가요? 여하튼 이렇게 부모님하고 결혼문제 때문에 의견을 달리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에까지 어긋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 여인과 결혼하면 우상을 섬기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기 쉽기에 고향에 가서 아내감을 찾아오라 한 것인데 에서는 부모님의 뜻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도 저버리고 그저 내가 기준이 되어 내 맘대로 결혼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방 족속 아내를 두 명이나 한꺼번에 얻은 것도 문제입니다. 일부일처제 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인데 에서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의 뜻도 순종하시고 혹시 부모님과는 의견이 다르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그대로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시면서 얼마나 우리의 구하는 것을 이루시는지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부모님도 거역하고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도 거역한 “에서”,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세 번째 아내를 맞이한 것도 또 문제가 있습니다. 3절 다시 보십쇼.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아내가 두 명이어도 문제인데 세 번째 아내까지 얻게 됩니다. 세 번째의 아내여서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 세 번째 아내가 누구의 딸입니까? 이스마엘의 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아내까지 얻고 나서 말씀드린 대로 창세기 27장에 보면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형 에서로 꾸미고 장자의 축복기도를 가로채고 났는데 이삭과 리브가가 이 야곱을 아내감을 구하러 고향으로 리브가의 고향으로 보내는 것을 에서는 보게 됩니다. 에서는 깨닫게 됩니다. 아! 아내는 내 뿌리에서 찾아야 되는 거구나! 문제는 그 다음, 뿌리는 뿌리인데 엉뚱한 뿌리에서 에서는 자기의 세 번째 아내를 얻게 됩니다. 여러분 이스마엘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사라가 25년을 기다리다가 중간에 너무 견디지 못해 잠깐 한눈팔고 혹시 여종을 통해서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잔머리 굴려서 나온 아들, 몸종 하갈을 통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약속하신대로 분명히 사라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이 아니라, 철저히 인간의 계획으로 태어난 아들 이스마엘, 에서는 혼자 생각했던 것입니다. 내 뿌리 응, 배다른 삼촌이지만 어쨌든 삼촌 이스마엘의 딸이면 되겠구나. 아직도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 부모의 뜻을 묻지도 않고 마치 사라가 잔머리를 써서 몸종을 통해 자식을 얻으려 한 것처럼, 에서도 잔머리를 굴려 얻은 아내가 바로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이었습니다. 이 바스맛을 세 번째 아내로 얻으면서 에서는 자신 있게 이삭과 리브가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됐지요? 이 바스맛이 이스마엘의 딸이니 이제 드디어 제대로 된 결혼을 한 것 맞지요? 저 같앴으면 맞아라 이 놈아 하고 몽둥이로 휘둘렀을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은 철저해야 합니다. 중간에 잔머리 써서 적당히 하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사울왕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죽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사울왕은 적당히 순종합니다. 왠만한 것은 다 죽였습니다. 단 하나님께 제사할 때 쓰려고 아주 조금 양과 소를 살려가지고 왔습니다. 이 적당한 순종은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대답합니다. “왕이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났습니다. 하나님은 왕을 버리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교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2. 에서는 적당히 순종하려고 하다가 그저 구색을 맞추려고 했다는 것, 결국 불순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완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바깥으로 나와 나아만을 만나지도 않고 종을 시켜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 명한 것은 순종의 테스트였습니다. 자기가 높은 사람이라는 교만을 버리라.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라. 즉 완전히 씻으라 중간에 적당히 하고 그만 두지 말고 완전히 씻으라. 완전히 순종하라. 결국 나아만은 나병에서 나음을 입게 되고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적당히 지는 척 하시지 않았습니다. 온갖 채찍질 조롱 비웃음 다 당하시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 쓰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끝까지 십자가에서 순종하신 분이셨습니다. 적당히 순종하지 마시고 완전한 순종의 사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에서는 우선순위에 전혀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6절 보십쇼.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여러분 한국에서 요즘은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요. 여성들의 인권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이사 갈 때 남편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꼭 안고 있어야 한다. 무슨 말입니까? 남편을 두고 이사가 버리니까 강아지나 고양이 안고 있으면 절대 두고 가지 않는다는 거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에서는 첫 번째가 자기 아내들이었고, 두 번째가 자기 자녀들, 세 번째가 자기 집안 사람들, 그 다음이 가축, 짐승, 재물들이었습니다. 그 어느 순서에도 하나님도 없고 부모님도 없고 신앙적 가치관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에서가 장자의 축복권을 놓친 결정적 이유는 야곱에게 뺏긴 것도 있지만 에서 스스로가 전혀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생각이 일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저 세상의 가치,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가치는 과연 잠깐 있다 없어질 이 땅의 것들에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있습니까?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내가 우선 순위가 아니라 내 삶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첫 번째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