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5.09 | 사무엘하 15장 24-37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15장 24-37절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왕의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알리라
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가 듣는 모든 것을 그들 편에 내게 소식을 알릴지니라 하는지라
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새벽 묵상
인도의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요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대표자로 위대한 영혼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간디, 간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항상 진리 편에 서서 일을 행하면, 우주의 지지를 얻게 된다” 멋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표현보다 더 멋있는 진짜 멋있는 표현을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 해방을 위한 남북전쟁 중에 남군에게 밀려서 패전의 위기를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링컨의 한 참모가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라고 참모회의에서 건의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진리 편인가? 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인가?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게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멋진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모습 아닙니까? 내 삶의 주인공이 누군지를 분명히 알고 세상의 주인이 누구신지, 우주의 주인이시요 창조주가 누구신지 분명히 깨닫고 그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가장 멋있고 지혜로운 인생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나오는 다윗왕, 비록 아들 압살롬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자의 길을 가고 있는 다윗이지만 다윗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 바로 “내가 하나님 편인가?” 하는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어제 묵상했지만 다윗은 지금 자기가 지은 죄 간음죄와 살인죄로 인해 나단 선지자이 말했던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압살롬을 피해 도망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요압의 계획대로 아들 압살롬을 곁으로 오게 한 후에 2년이 되도록 제대로 회개시키지도 않고 애매하게 뻘쭘하게 방치해 두었던 우유부단함이 이렇게 압살롬에게 반역을 일으키게 하였구나 하는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참 감사한 것은 다윗이 이렇게 후회막심하고 아들의 반역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길을 가고 있지만 다윗이 홀로 절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은 꼭 필요한 사람들을 붙여 주셔서 다윗에게 용기를 주셨고 격려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어제 본문 마지막에 나중에는 다윗의 세 용사 중 하나가 된 “잇대”가 다윗과 끝까지 동행하기를 결단했습니다. 다윗이 “네가 어찌 우리와 함께 떠돌아 다니게 하리요” 하며 만류했지만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다윗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면서 어느 곳에 가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하면서 끝까지 다윗과 함께 하겠다고 결단하는 용사 잇대, 다윗이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낫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잇대 말고 어제 짧게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사람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과 레위사람들이 또한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다윗을 따르겠다고 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24절 보십쇼.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여기서 사독은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이고 아비아달은 아론의 넷째 아들 이다말의 후손으로, 다윗 시대 거룩한 제사장직을 수행했던 양대 가문의 대표였습니다. 이들이 지금 다윗이 예루살렘을 빠져나갈 때 왜 이렇게 언약궤를 가지고 나오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 언약궤였기에 궁지에 몰린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있으면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무사히 귀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뭐가 기억나십니까? 사무엘상 4장에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 싸울 때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던 것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만 가지고 나가면 무조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언약궤는 빼앗겨 버리고 전쟁에서 지고 엘리의 두 아들은 죽고 엘리는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서 죽고 비느하스의 아내는 해산하다가 죽어버리는 온 집안이 다 몰살되고 말았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의 언약궤 자체에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힘이 있는 줄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언약궤라는 틀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상징일 뿐이지 물건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영적으로 우둔했기에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독과 아비아달과 레위인들도 하나님의 언약궤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데 이렇게 언약궤 자체에 집착했다는 것, 그래서 다윗은 이 사실을 깨닫고 언약궤를 도로 메어 가라고 명합니다. 25절 보십쇼.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여러분 아멘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이 은혜주시면 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교훈 1.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을 수 있는가?를 생각했던 다윗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사장들은 “이 언약궤만 가지고 나가면” 결국 다 회복된다 생각했는데 다윗은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모든 것을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헌금할 때 이것 비슷하게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을 드리는데 하나님 내 소원을 꼭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게 바로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의 “이 언약궤만 가지고 나가면”의 모습 아닙니까? 엄밀하게 보십쇼. 내가 무엇을 하는 데 거기에 하나님을 가져다 붙이는 것 아닙니까? 주인공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고 최선을 다해 드립니다. 다 하나님의 것인데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게 올바른 봉헌자의 모습 아닙니까?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내가 새벽마다 기도드립니다. 몇 일을 금식기도 합니다. 작정기도 합니다. 내 기도를 꼭 들어주시옵소서. “이 언약궤만 가지고 나가면” 즉 내가 이만큼 기도하니까 내 기도 들어주소서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제가 이런 소원이 있습니다.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즉 나의 이 기도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라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면 응답해 주시옵소서. 이게 올바른 기도 아니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이 언약궤만 가지고 나가면”인가? 아니면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인가? 하나님이 내 편이신가? 인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 편인가? 진지하게 고민하시면서 겸손히 주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윗의 명대로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메어다가 놓게 됩니다. 다윗은 더 철저히 회개자의 모습으로 더 낮아지고 더 낮아져서 엎드립니다. 30절 보십쇼.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깊은 참회의 모습입니다. 이런 가운데 다윗 귀에 반역한 압살롬의 무리 중에 아히도벨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지게 됩니다. 여러분 이 아히도벨이 참 중요한 인물인데 바로 다윗 정부 때에 최고의 전략가였습니다. 전략가가 뭔가 하시는 분이 있는데 제갈 공명 같은 존재였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전략가는 당시의 수 천명의 군사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다윗은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압살롬이 최고의 전략가를 보유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겁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즉시 이 위기 앞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됩니다. 31절 끝 문장 보십쇼.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2. 내가 하나님의 편인가 생각하는 사람은 즉시 기도의 사람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수소문하여 그를 따르는 자 중에 지혜자가 있는지 찾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가지 않았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꿇고 간구해 보세요. 즉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솔직히 아룁니다. 하나님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즉 하나님 아히도벨이 당시 최고의 전략가요 지략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능하게 하옵소서. 여러분 이게 바로 내가 하나님 편인가를 돌아보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것은 사람 바라보지 않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겠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기도했더니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즉시 기도의 사람, 즉각 기도의 사람은 항상 기도가 습관이 된 사람, 쉬지 말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항상 기도의 사람, 늘 기도의 사람, 기도에 진심인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자 이렇게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언약궤를 도로 매어 갔다 놓으라 하면서 내가 하나님 편인가, 오직 여호와 앞에서 은혜 입는 자 되기를 원했던 다윗, 아히도벨 소식을 듣고 바로 즉시 기도에 들어간 다윗에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용사 잇대 말고, 사독과 아비아달 말고 또 다른 조력자, 아렉 사람 후새를 붙여 주십니다. 이 후새와의 만남은 즉시 기도할 때에 주신 하나님의 빠른 응답이기도 했습니다. 32절 보십쇼.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 지라” 여러분 이 후새는 역대상 27장 33절에 보면 다윗의 친구였고 아히도벨 못지 않은 지략가였습니다. 결국 이 후새를 첩자로 압살롬에게 보내어 36절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들을 비밀 연락자로 삼으며 압살롬의 신하로 들어가서 17장 14절에 보면 아히도벨의 지략을 무용지물로 만들게 되고 결국은 압살롬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깨달을 것은 3. 내가 하나님의 편인가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꼭 필요한 사람을 붙여 주셔서 결국은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최고의 전략가 아히도벨을 곁에 두었다고 해도 압살롬에게는 아버지 다윗과 다르게 결정적인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신비한 은혜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지금 생명의 위협을 받는 위기의 순간에서도 엎드리는 즉시 기도, 내가 하나님의 편인가 고민하는 그 겸손함으로 결국 모든 왕권을 되찾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던 내가 하나님 편인가의 사람이셨습니다. 오늘도 내가 과연 하나님 편인가 생각하시면서 하루를 온전히 주와 함께 동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