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새벽예배 2022.05.23 | 고린도전서 10장 23절 - 11장 1절 | 이선기 목사



고린도전서 10장 23절 - 11장 1절


10장 23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11장 1절.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새벽 묵상


"Not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여러분 누가 한 말입니까? 예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sabeth Johanna Shepping, 1880-1934), 독일 비스바덴에서 태어나 9세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선교를 지원하여 미국 남장로교선교부의 간호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32세에 조선으로 와서 1912년부터 1934년 54세로 소천한 서서평 선교사의 책상 앞에 붙어 있는 삶의 신조입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이건 누구의 말인지 아십니까? 예 1950년대 남미 에콰도르의 살인 부족 '아우카' 부족에게 예수의 이름을 들려주려고 정글로 들어갔다가 그들의 창에 찔려 순교한 다섯 명의 젊은 선교사들 중에 한 사람 짐 엘리엇 선교사의 일기장에 쓰여있는 말입니다. 왜 쓸데없이 아까운 젊은 생명을 낭비하는가? What a Waste! 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결국 그 순교한 선교사의 아내들이 아우카 부족에게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아우카 부족은 변화되었으며 짐 엘리엇 선교사를 창으로 찌른 사람은 변화되어 목사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진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서서평 선교사와 짐 엘리엇 선교사의 순교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가? 나를 위해 생명 주신 주님의 사랑, 그 희생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죄 없으신 분이 먼저 나를 위해 기꺼이 죽어 주셨는데 나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십자가의 큰 사랑을 깨달은 후로 이제는 철저히 나를 부인하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되었기에, 내 꿈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뒤로 하게 되었습니다. 내 욕심, 내 고집,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억누르고 오직 십자가, 즉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주 나의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데 내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내가 아닌 내 이웃 내 형제 자매에 대한 관심이 내 삶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저 불쌍한 조선의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끝까지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던 서서평 선교사의 섬김이 있었고, 복음이라고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살인 부족 아우카족을 정말 사랑하는 길은 복음전하는 일임을 알았기에 아우카족을 내 몸과 같이 사랑했던 짐 엘리엇 선교사님의 헛되지 않은 순교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생의 노련함과 함께 점점 약해져 가는 육신에 대한 한탄은 다 내려놓으시고 내 것을 내 욕심, 내 고집들 다 내려놓는 참 어른이 되어 가시고, 점점 더 주님을 닮아 남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데서 최고의 기쁨을 찾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0장을 마무리하면서 바울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남의 유익을 위하여 사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라. 이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하는 바울의 권면, 그 권면을 잠깐 자세히 살펴보시면서 저와 여러분의 사람의 목적도 이렇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남을 위하여 사는 삶,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 첫 번째로 바울은 원칙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는 최선의 길을 택하라고 권면합니다. 처음 23절을 보면 정신 차리고 읽지 않으면 마치 간장공장공장장은 장공장공장장이요 하는 것처럼 이게 뭔소린가 알 수가 없습니다. 23절을 보십쇼.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이 말은 당시의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시는 워낙 우상이 많은 도시라고 아무리 조심해도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게 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실 아무리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이어도 그런 제물을 먹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가하나”, 그런데 문제는 이런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유익이 못되고 덕을 세우지 못하니 그냥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먹지 않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좋다. 하는 권면입니다. 그래서 24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즉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는 일을 하라. 그런데 또다시 다른 경우를 예로 듭니다. 25절 시장에서 보통 식품처럼 팔리는 것들은 묻지 말고 먹으라 즉 먹어도 된다. 왜냐? 26절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즉 모든 피조물 중에 하나님께서 만드시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느냐? 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에 선한 것임을 기억하라. 27절과 28절은 더 구체적으로 불신자 중에 어떤 사람이 초대하여 음식을 차려 놓았으면 그냥 먹으라 그런데 28절 누가 너희에게 갑자기 이 음식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다 하고 문제를 삼으면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그러니까 먹는 것 먹지 않은 것이 절대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음식보다 모든 사람의 덕을 세우는 일이다. 남의 유익을 위한 길이라면 그게 우선이다 하고 있습니다.

한 8년 전에 제가 조지아주 어거스타에서 살 때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 체육관을 한인회가 체육대회를 하기 위하여 빌려달라고 했고 교회가 빌려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체육대회 하루 전 체육대회 전야제를 하는데 교회 여선교회에서 두 번째로 젊은 여선교회 40대 50대 분들이 모여서 우리도 저기 안 믿는 분들이 그래도 교회 체육관까지 왔으니 우리가 교회는 너무 딱딱한 곳이 아니다. 교회도 재미있고 활기찬 곳임을 보여주자. 찬조 출연을 하자 하고 전야제 한 순서로 교회 여선교회 이름으로 나가서 강남스타일 댄스를 추게 되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앵콜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연세가 높으신 할머니 권사님들이 이걸 보시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 교회 체육관에서 성적인 노래 강남스타일을 부르면서 불경스럽게 추하게 엉덩이를 흔들면서 춤을 추느냐? 노발대발 하셨고 젊은 여선교회랑 논쟁이 붙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국 젊은 여선교회 회원들이 다시는 그 같은 일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서 마무리 되었는데...성전도 아니고 체육관인데 괜찮지 않느냐는 의견과 그래도 교회가 그렇게 음란한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 대립, 야간은 아쉬움이 남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유익을 끼치는 일이 되지 않았기에 다시는 하지 않도록 결의했다는 사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강남스타일 춤추는 여선교회를 보았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해도 된다 그러나 누가 너희에게 이건 아주 성적인 것을 자극한다 하면 하지 말라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남의 유익 교회의 덕을 세우고 영혼 구원을 위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양보할 자세가 되어 있었던 바울, 저와 여러분도 애매한 이런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기준은 이 일이 다른 이들의 유익이 될 만한 일인가? 진지하게 생각하시고 기도하시고 최선의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는 아시겠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바울의 권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보십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라는 구절을 보면 지금 우상 제물을 먹고 마심에 대한 최종 결론, 무엇을 하든지 라는 구절은 바로 이렇게 우상 제물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사실 모든 일에 있어서 이렇게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해도 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최종 결론은 그 결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아닌가 생각하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32절 어떤 결정이든지 보수적인 유대인이나 자유로운 헬라인에게나 나아가서 전체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기준이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는 것, 민주주의도 아니고, 어느 게 돈이 되는가 하는 자본주의적인 태도도 아니고, 기준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

제가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권면하는 것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결혼식에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인 것을 절대 잊지 말라. 결혼식에 갈 때 자기가 신부보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예쁘게 화장하고 가지 말아라 화장을 아예 안하고 가든지 여하튼 못 생기게 하고 가야 한다. 신부보다 예쁘면 그것만큼 민폐가 없다. 주인공은 오직 신부 한 사람이어야 한다. 남자 청년들에게도 신랑이 키도 작도 못생겼는데 내가 키도 크고 잘 생겼으면 옷을 후질근하게 입고 가든지 그리고 가서도 가능하면 신랑과 멀리 떨어져서 사진을 찍으라. 그날의 주인공은 오직 신랑임을 잊지 말라. 제가 참 잘 가르치죠? 주인공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주인공만 높아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여러분 내 삶의 주인공이 누구이십니까? 우리가 아직도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면 아직도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요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바로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면 달라집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너무 큰 빚을 진자로 삶의 이유가 달라집니다. 어떻게 하면 그 큰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주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하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임을 깨닫고 이웃을 위하여 남의 유익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내 삶의 중심은 온통 하나님으로 채워져 늘 이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인가?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것은 어제라구요? 예 핸드폰 배경 사진이 남편이나 내가 아니라 손자 손녀 사진으로 바뀔 때 비로소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면 내 모든 관심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있게 됩니다.

지금 내 관심이 어디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사는 것도 내가 죽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런 고백이 바로 내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11장 1절은 다시 한 번 바울의 삶의 주인공이 누구신지를 한 번 더 밝히는 구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우리 감리교회 창시자 웨슬리 목사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제목이 바로 토마스 아 캠피스가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입니다.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남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