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2.07 | 사무엘상 9장 1-14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9장 1-14절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새벽 묵상
어느 병약한 사람이 몸 치유를 위해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부터 매일 아침 마당에 있는 큰 바위를 밀어라’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푼 꿈을 안고 매일 아침 바위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바위를 밀면 그 밑에 금 은 보화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그는 열심히 바위를 밀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밀었지만 바위는 꿈쩍하지 않습니다. 점차 자신의 행동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기 싫어졌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1년 동안 바위를 밀었는데 1mm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시키신 것입니까?’ 원망어린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에게 바위를 밀어 그 밑을 파 보라고 한 적이 없다. 다만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다. 이제 실망하지 말고 거울 앞에 서서 너의 모습을 보아라’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1년 전, 병약하여 골골하던 자신이 아니라 근육이 우람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늠름하고 누구보다 건강한 청년이 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돌아보니 지난 1년 동안 아프다고 누워 있었거나, 골골거리며 기침한 적이 없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바위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에 너무 집착하여 하나님의 뜻을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불평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만드시고 이 땅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 내가 생각지도 못할 귀한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며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평생 동안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 깨닫고 감사하면서 열심히 전하면서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절묘하신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어제 새벽에 말씀 드렸지만 사무엘을 통하여 왕을 세우면 왕은 너희들의 자녀들이나 모든 소유를 가져갈 것이고 잃고 괴로울 것이 너무 많을 것이다. 그래도 기어코 왕을 세워야 하겠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장로들을 비롯한 백성들은 고집을 부리면서 끝까지 왕을 세워달라는 완악한 요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져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마침내 이스라엘에게 눈에 보이는 왕을 세우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이었다면 꼴도 보기 싫게 계속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 보란 듯이 처음부터 왕을 세우는 일을 방해하시고 일부러 어렵고 고통스럽게 만드셨을 텐데 하나님은 비록 어리석은 백성들의 요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리하시사 절묘한 방법으로 왕을 세우십니다.
사실은 오늘 본문은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의외로 얼마나 순수하고 괜찮았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으로 왕이 된 후에 너무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기에 그 악한 왕의 모습에 가려서 잘 기억되지 않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우선 사울은 집안이 대단하고 겉모습 외모부터 참 괜찮은 사람 훈남이라고 하죠? 참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1절 보십쇼.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유력한 사람이었다는 것, 유력한 사람은 “깁보르 하일”이라고 발음하는데 돈이 많은 부자요 세력 있는 자, 명예와 권력을 골고루 갖춘 자라는 뜻입니다. 부잣집에 명성까지 있는 사람 기스의 아들이 바로 사울이었고 2절 보십쇼.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위만큼 더 컸더라” 집안만 빵빵해도 좋은데 외모까지 일석이조, 금상첨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가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진짜 괜찮은 것은 이렇게 집안도 좋고 잘 생기고 키가 큰데 거기다가 부모에게까지 효도하는 아들이었다는 것, 3절 보니까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려서 아들 사울에게 명합니다.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으라. 4절 사울은 암나귀들을 여기 저기 찾아다니다가 5절 숩 땅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울은 암나귀 찾는 것 말고 우리를 걱정하실 것 같다 하면서 집에 가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사환이 6절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있으니 그에게 가서 길을 물어보자고 권합니다. 7절에 사울은 사환에게 어떻게 빈손으로 갈 수 있느냐 하고 8절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을 준비하여 가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첫 번째로 용두사미의 부족한 인간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울은 재력 외모뿐만이 아니라 방금 본 대로 부모에게 순종했고, 암나귀 찾는 자기의 일을 최선을 다했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렸고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사무엘에게 가되 예물까지 준비하여 가는 정말 아주 진짜 최고의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랬던 사울이 이게 웬말입니까? 이 최고의 모습은 다 사라져버리고 후에 왕이 된 후에는 시기 질투심 때문에 수년동안 자기 사위 다윗 죽이러 다니다가 일생을 마무리짓습니다. 길보아 산 전투에서 한 병사보고 죽이라 했다가 안되니까 스스로 칼에 엎드러져 일생을 마감했던 추하게 인생을 마무리 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3절에서 8절까지의 왕 되기 전 모습하고 왕이 된 후의 모습하고 차이가 나도 너무 나지 않습니까? 용두사미의 모습을 보입니다. 처음에만 최고의 남자였고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었지 끝에는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한탄이 나옵니다.
남왕국 유다의 왕 중에 10대 왕인 웃시야라는 왕이 있습니다. 16살에 왕이 되어 무려 52년을 잘 통치합니다. 52년 하나님을 찾고 정직히 하나님 앞에서 행한 참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인생의 말년에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을 하려고 합니다. 결국 다 쑨 죽에 코빠트린 인생, 나병에 걸려 별궁에서 거하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용두사미의 인생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잘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좋아지고 더 좋아지는 사두용미의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처음에도 잘하고 맨 나중에도 잘 하는 용두용미의 삶은 더 좋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주님을 뜨겁게 만났을 때를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구원받은 감격이 좋아서 교회 가는 게 최고의 기쁨이었던 그 때, 저는 학생 때 주님을 뜨겁게 체험하고 학교 가기 전에 교회 들렸다가 학교 끝나면 다시 교회 들려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집에 오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내 집보다 교회 가는 것이 더 행복하고 좋았던 순간, 그 때를 떠올리실 뿐만 아니라 다시 그 감격의 때로 회복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울은 이렇게 처음에만 좋았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시고 알려주시면서 처음부터 좋으신 분이었고 지금 좋으신 분이시고 미래에도 좋으신 섭리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앞에 블레셋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갔다고 독종의 재앙을 블레셋 여기 저기 일으키신 하나님, 블레셋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젖나는 암소 둘을 준비하여 똑바로 가는지 새끼에게 가는지 시험하는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젖나는 암소의 발걸음까지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암소가 아니라 암나귀까지 섭리하셔서 사울의 발걸음을 제사장 사무엘과 만나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일까? 하나님은 우연히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미리 준비하시되 세밀하게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내일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기 하루 전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이맘때에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하루 전날 말씀하셨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100살에 낳은 귀한 아들을 바치고자 할 때 나뭇가지에 걸린 숫양을 보게 하셔서 아들 대신 제물로 바치게 하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바울 눈이 멀게 하시고 아나니아 선지자를 통해서 기도 해 줌으로 눈을 뜨게 하신 하나님, 우연의 하나님이 아니라 섭리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에 옥터가 무너지고 옥문이 열리게 하신 하나님 딱 그 자리에 믿음의 씨앗이 될 간수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 그래서 그와 그의 가족이 다 세례 받고 구원받게 하신 주님, 우연이었을까요? 어쩌다 일어난 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보십쇼. 선견자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물음에 답하는 이들이 이렇게 답합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여기서 오늘, 오늘 이란 표현은 오늘 어떻게 딱 맞추어 보게 되셨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13절 보십쇼. “당신들이 성읍에 들어가면.. 중간에 곧 만나리이다.” 13절 맨 끝 문장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여기서 곧 만나리이다. 곧 그를 만나리이다. 이 “곧”을 반복 표현하는 것도 이 일이 그냥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입니다. 마지막절 14절 보십쇼.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여기서 “마침”이란 단어, 하나님의 섭리를 아주 잘 표현한 단어입니다.
2023년 2월 7일 새벽예배에 저와 여러분이 윌셔교회에서 만나 기도하게 된 것 이게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최고의 섭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보내신 사건입니다. 인카네이션 성육신이라고 하죠? 그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감사하시고 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그 섭리가 무엇인지 귀를 열고 영적인 귀를 여시고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보여주실 줄 믿고 엎드리시고 응답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