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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주시고

새벽예배 2022.12.06| 시편 40편 1-10 절 | 이선기 목사




시편 40편 1-10 절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4.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9.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10.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새벽 묵상


여러분 요즘 Youtube로 어떤 영상을 보고 감동하고 계십니까? 어제 브라질 하고 축구한 것 말고 그 전에 포르투갈하고 축구해서 2대 1로 이긴 영상을 찾아보고 감동하십니까? 저는 요즘 두 개의 영상을 보고 참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하나는 13년 전 영상인 것 같은데요 한국 군악대가 버지니아 국제 군악제에 나가서 태평소로 amazing grace를 처음 연주하고 모든 군악대가 합주하는 영상인데요. 얼마나 가슴이 차오르고 얼마나 뿌듯한지요... 10번 이상 보고 또 보았습니다. 또 하나는 작년에 만들어진 영상으로 역시 amazing grace인데요 세계 국제 군악제에서 불안한 음정의 프랑스와 러시아 음악가 다음으로 대한민국의 유영광씨가 한국어로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라는 가사로 노래하는 부분을 직접 찍은 영상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지요...여러분도 한번 기회 있을 때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게 감동이 오고 마음이 뭉클해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까 이 노래를 만든 존 뉴턴의 특별한 은혜의 고백, 즉 죄인임에도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격이 녹아져 있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사람은 왜 이 노래를 부르는데 마음이 뭉클하지? 하고 그 이유를 알 수 없겠지만 저와 여러분은 왜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입니다. 노래가 지어진 배경을 잘 기억하시면서 전하시고 감격이 두 배가 되시길 바랍니다. 더 많은 이들이 주 앞으로 돌아오는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존 뉴턴은 1725년 7월 24일 영국 런던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뉴턴은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로부터 많은 신앙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뉴턴이 일곱 살이 되기 전 1732년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곧바로 재혼했고 뉴턴은 행실이 좋지 못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1살이 되자 선원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거친 선원들 틈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독하며 저주하게까지 되었지만 그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에는 지옥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열여덟이 되던 해 아버지의 소망에 따라 해군 소위 후보생이 되었지만 나쁜 친구들을 만나 탈영하여 잡혔다가 노예상선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5개월간의 처절한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게 된 그는 오히려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서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했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그는 죄책감으로 인해 계속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긴 항해를 하던 중에 거대한 폭풍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울부짖으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뉴턴은 이 항해를 끝으로 모든 죄악 또한 끝을 내고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16년이란 긴 시간 동안 독학으로 신학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올리라는 작은 마을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죄인 중에서도 괴수와 같았던 예전의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찬송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는 설교하는 중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이 다음에 내가 천국에 가면 세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천국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놀랄 것이고, 둘째는 그곳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마지막으로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내가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린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만큼은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는데, 그것은 내가 과거에 너무나 큰 죄인이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 시기에 그냥 캐롤만 부르시고 끝나지 말고 구원받은 감격으로 뉴턴과 같이 뜨거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시편 40편이 바로 다윗이 구원받은 감격을 뜨겁게 노래로 지은 감사의 찬양시입니다. 학자들은 아마도 아들 압살롬의 반란의 위기를 다 극복한 후에 그 구원받음의 감격을 노래한 찬양시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시편 40편이 더 익숙한 것은 이 시편 40편으로 만든 찬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귀를 기울이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하네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주시고 나의 발을 반석위에 세우시사 나를 튼튼히 하셨네 새 노래로 부르자 라라라 하나님께 돌릴 찬송을” 기억하시죠?

우선 다윗은 말씀드린 대로 압살롬에게 고통당한 상황을 기억하며 2절에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에 구덩이는 보통 구덩이가 아닙니다. 사막지역의 구덩이는 웅덩이라고 하는데 한번 빠지면 도저히 스스로는 그 누구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웅덩이입니다. 그런데 왜 기가 막히는 웅덩이인가? 한번 빠지면 스스로 나올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혹시라도 웅덩이에 물이 있으면 바로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고 행여 물이 없으면 다행이다 싶지만 밑 부분이 진흙이라 서서히 빠져 죽는 곳이 바로 이 웅덩이이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예레미야도 이 웅덩이에 빠진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심정이 아들에게 쫓겨나 괴로움 가운데 보냈던 상황이 바로 그런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극한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다윗을 기억하시사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웅덩이에서 끌어 올려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2절 뒷 부분 보십쇼. 끌어 올려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즉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곳에 두시고,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성경의 걸음은 주로 인생을 나타내죠. 그러니까 다윗의 인생을 견고하게 하셨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오늘 새벽에 그동안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내 인생 전반을 견고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특별한 것은 다윗이 이러한 구원받음의 감격을 반복적인 표현을 쓰며 그 감격을 노래하고 더 강조해서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다윗의 반복적 표현에서 더 감격하시고 저와 여러분도 뜨겁게 감격하며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1. 첫째로 “기다리고 기다렸더니”하고 고백하는 다윗을 보십쇼. 1절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여기서 기다리고 기다렸더니는 히브리어로 “카오 키위치”라고 발음하는데 끝까지 기다렸다는 표현입니다. 응답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고대하며 바라며 소망하며 다윗의 억울함이 풀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왕권을 회복시키실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다윗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는 사람, 약한 사람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고 참고 견뎌내면 결국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몇 년을 기다려서 응답받았습니까? 2년 5개월도 아니고 무려 25년을 기다려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중간에 이게 아닌가보다 하면서 몸종 하갈을 통해 주시나 보다 하고 잔머리를 썼겠습니까?

우리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을 너희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진득하게 응답받을 때까지 참고 견디시면서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시길 바랍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다윗은 결국 하나님이 압살롬의 계획을 무너뜨리시고 모든 왕권을 회복하게 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이 행하신 많은 것들을 많이 기억하시고 또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5절 보십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많아”가 5절 한 절에 3번이나 나옵니다. 그동안 다윗에게 보여주신 기적이 얼마나 많은지, 또한 우리를 생각하시는 주의 생각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주께서 행하신 것들을 말하고자 하나 너무도 많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찬송의 3절 가사는 언제 들어도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 12월이 다 가기 전에 한 해 동안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시면서 새로운 2024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들을 원하지 아니하시며 아니하신다 깨달으시고 심중에 하나님의 법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6절에 나오는 반복을 보십쇼.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즉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 때문에 좋아하시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강조하기 위해서 뒤에 번제와 속죄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사울왕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제사를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블레셋이 코앞에 오니까 빨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버리자. 제사장이 없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제사 자체라고 생각하고 빨리 후딱 해버리고 전쟁에 나갑니다. 두 번째 아말렉과 싸울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번 실수했으면 정신 차려야 하는데 또 불순종하여,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좋은 제물을 좋아하실 것이다. 하고 좋은 양과 소를 살려가지고 옵니다. 생명 있는 것은 다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또 불순종합니다. 사무엘이 뭐라고 합니까? 왕이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은 왕을 버리셨나이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 마음을 보십니다. 그 중심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8절에 다윗은 정확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표현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여기서 나의 심중은 히브리어로 “메아이” 이 메아이는 정확하게는 나의 창자라는 뜻입니다. 내 속 깊은 곳에 창자가 있는 그 깊은 곳에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겠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가장 중요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곳에 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중에 간직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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