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채색옷 때문에

새벽예배 2022.10.18 | 창세기 37장 1-11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37장 1-11절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자매를 길러보셨습니까? 저는 어릴 때 자라면서 누나와 여동생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참 가까운 모습으로 자라는 자매를 보았는데, 제 집사람이 또 자매인 여동생과 약간 타투면서도 누구보다도 가까운 모습으로 지내는 것을 보아왔고 두 딸이 또 자매로서 작은 다툼을 하면서도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매의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형제들보다는 자매들이 많이 그러는 것 같은데. 특히 입는 옷 때문에 가끔 삐그덕 거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서로 차이가 많이 나거나 하면 안 싸울 텐데 서로 사이즈가 비슷해서 언니가 몰래 동생 옷을 입고 나간다든지 동생이 몰래 언니 옷을 입고 나간다든지 해서 서로 싸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희 집에 와 보시면 특이하게도 작은 딸이 있는 방에 번호키가 설치되어 있는데 왜 그럴까요? 예 언니가 동생 방에 들어와서 몰래 옷을 입고 나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호키를 설치해 주었더니 그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혹시 딸 중에나 손녀들 중에 이런 일이 있어서 저에게 연락주시면 번호키 어디서 사서 어떻게 설치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이 바로 입는 옷, 이 옷 때문에 작은 다툼이 아니라 큰 싸움이 났던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늘 본문을 읽으시면서 드디어 나왔구나. 요셉 이야기가 이제야 나오는구나 하셨을 텐데. 여러분 많은 분들이 요셉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성공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처럼 고생고생하다가 왕자님을 만나서 왕비가 되어 크게 성공하는 동화를 좋아하는 것처럼 성경에서도 요셉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하고 통쾌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이야기는 다른 동화처럼 주인공이 누구보다도 착하고 선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얄밉고 미움 받을 만한 짓을 하는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사실은 그래서 더 감동적인 것입니다. 자격이 안되고 엉망징창인 인물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변화시키셔서 존귀하게 세워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 중에 좀 성품이 괴팍하거나 속썩이거나 하는 자녀가 혹 있더라도 그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그를 변화시키고 들어쓰시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실 수도 있음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부모일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부모의 편견이 자녀의 마음에 불씨가 되어 그를 엉뚱한 길로 가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바로 요셉의 아버지 야곱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요셉을 다른 아들보다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라헬을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라헬이 낳은 아들이기에 더 좋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비롯된 편애의 마음이 자녀들 간에 불공평한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은 미움의 불씨를 만드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3절 보십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라헬이 낳은 아들이기도 하고 또한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에 더 귀히 여겼던 야곱 곧 이스라엘, 문제는 그 요셉을 너무 지나치게 사랑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냥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사랑하므로 해도 되는데 “더 사랑하므로”라고 표현해서 아주 대놓고 너무 지나치게 사랑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희 두 딸도 가끔 물어봅니다. 아빠 언니가 좋아 내가 좋아? 그럼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요? 언니도 좋고 너도 좋지. 리고 해야 하는데 저는 좀 다르게 대답합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빠는 한 여자만 좋아해 그건 바로 너네 엄마!” 참 지혜롭지 않습니까? 여하튼 야곱은 요셉을 너무나 사랑하고 더 사랑해서 3절 끝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우리는 여기서 첫 번째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이기적인 사랑이 편애함이 문제의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은 야곱의 아버지 이삭도 그랬습니다. 두 아들을 너무 편파적으로 편애하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이 에서를 더 사랑함 때문에 어머니 리브가는 반대로 야곱을 더 편애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야곱을 에서인척 하게하고 축복의 기도를 가로채고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하게 되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 아버지 이삭의 피를 그대로 받아서 그런지 똑같이 자녀들을 사랑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울왕을 생각해 보십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사울의 마음의 미움이 바로 이 편애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기보다 다윗을 더 좋아하는 여인들의 환호성, 감히 나보다 누굴 더 좋아해? 내가 왕인데 그 어떤 인간이 왕보다 더 귀한가? 하면서 결국 다윗을 죽이려 하고 수년 동안을 다윗 잡아 죽이려고 세월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편애하는 마음은 시기 질투의 마음, 심지어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살인의 마음까지도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조그만한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엄마 아빠가 동생을 낳아가지고 첫째를 만날 때 반드시 누가 둘째 아이를 안아야 한다구요? 예 아빠가 아이를 안고 들어오고 엄마는 달려와서 첫째 아이를 꽉 안아줘야 한다고 하죠? 안 그러고 엄마가 둘째를 안고 들어가면 큰 아이는 큰 상실감 배우자를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고 심리학자들은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인간 속에 도사리고 있는 시기. 질투를 잘 이기려면 편애를 없애야 한다는 사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편애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류를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보내주시고 예수 믿는 사람들만 위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편애하지 않고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사 끝까지 십자가의 사랑을 완성하셨다는 사실. 우리가 할 일은 편애하지 않으신 누구나 사랑하셔서 대신 십자가 지신 주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아직 몰라서 그렇지 누구든지 다 그 사랑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불교인도 그렇고 모든 다른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 한명도 제한 없이 사랑하셔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 저와 여러분도 마음속에 편애의 마음이 있다면 잘 이겨내시고 사랑에 제한이 없이 누구든지 다 사랑하시는 주님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이렇게 편애해서 지어 입힌 채색 옷을 입고 너무 교만했던 요셉, 형들의 허물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참 얄미운 짓만 골라하는 요셉의 행동이 문제였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지금 몇 살 입니까? 2절 보십쇼.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 세의 소년으로서” 여러분 17살이면 알 것 다 아는 시기 아닙니까? 어떤 일을 하면 미움 받고 어떤 일을 하면 좋아하는지 다 아는 나이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요셉은 처음부터 채색 옷을 입지 말았어야 합니다. 여러분 채색옷은 어떤 성경 삽화에 옷 전체가 빨주노초파남보인것처럼 화려하게 칠해 놓았는데 사실 옷 전체가 색깔이 있는게 아닙니다. 당시 목축업을 하는 이들의 옷은 팔 소매가 없고 밑에는 무릎 정도까지 오는 통으로 된 옷이었습니다. 팔 소매가 없고 바닥에 끌리는 옷이 아니어야 산에 다니고 목축업을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지어 입힌 옷은 바로 소매에 색깔이 알록 달롯한 옷이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완장 찬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 팔에 완장 차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목이 곧게 합니까?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 듯이 스스로 높아졌을 요셉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요셉은 채색옷 때문에 완장을 찬 사람이 되어 형들을 감시하고 다녔습니다. 2절 끝에 보십시오.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이게 문제였습니다. 형들이 양들을 치러 나갔다가 좀 게으르거나, 엉뚱한 일을 하면 쪼로록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르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일은 안하고 빈둥빈둥 완장차고 돌아다니며 그저 여기 저기 지적하고 교만한 사람이었던 요셉. 우리도 채색 옷을 조심해야 합니다. 완장차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조금 많이 배웠다고 완장차는 사람, 돈이 많다고 완장차는 사람, 정치적으로 명예나 권력의 완장을 차는 사람 이 채색옷은 어느 날 찢어지거나 벗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내일 본문 23절에 보면 형들에게 요셉이 당도하자 제일 먼저 요셉에게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형들은 가장 먼저 그 채색옷을 벗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토록 완장을 차고 자기들의 모든 것을 다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는 정말 꼴보기 싫은 요셉, 그 채색옷을 벗길 뿐만이 아니라 나중에는 찢어버리기까지 합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채색 옷이 있다면 빨리 벗으시길 바랍니다. 평등이야기 기억하십니까? 나이 40대는 지식의 평등 : 40대가 되면 대학을 나왔건 안 나왔건 다 똑같아 집니다. 옛날에 배운 것 다 소용없고 써먹을 것 하나도 없어진다. 50대는 외모의 평등 : 50대가 되면 다 쭈글쭈글 해져서 미운 것도 예쁜 것도 다 비슷해집니다. 수술하면 조금 나을 수 있지만 그것도 잠시 뿐 다 비슷해집니다. 외모 때문에 고민이신 분들 다 비슷해지니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60대 남녀의 평등 : 60대가 되면 남녀가 서로 섞여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남성 여성 호르몬이 달리 나오기 시작하면서 젊어서는 남자가 큰소리치지만 늙어서는 여자가 큰소리치게 됩니다. 70대 건강의 평등 : 아픈 사람이나 안 아픈 사람이나 누구나 다 한두 곳 병이 들어 병원을 드나드는 나이입니다. 80대 재물의 평등 : 돈이 많으면 무엇 합니까 쓸 데가 없는데…… 먹을 것을 제대로 먹을 수도 화려하게 옷 차려 입고 외출할 곳도 없습니다. 집이 넓고 좋으면 무엇합니까? 마지막으로 90대 생사의 평등 :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이 다 마찬가지인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채색 옷을 다 벗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자족하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하는 바울과 같이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만족하면서 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마지막으로 말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시는 대로 요셉은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합니다. 5절 보십시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앞에 4절 끝에 보면 형들이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라고 되어 있는데 5절에서 요셉은 거침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채색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형들 앞에서 이토록 자신있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 속에 내가 누군데. 내가 얼마나 대단한데 하는 자신감을 넘어 교만함이 생겼고 분명히 싫어하는 것 알았을텐데 9절 보십쇼. 또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러분 이 말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 말처럼 중요한 것이 또한 없습니다. 말을 보면 그 사람의 속마음, 그 사람의 인격까지 다 드러납니다. 가인의 말을 기억해 보십시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의 자손 중에 라멕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말을 기억해 보십시오. 가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확 티가 납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나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배이리로다” 이 칠배 칠십칠배 이야기하기 바로 전에 라멕의 말을 들어보면 아주 혀를 찰 정도입니다.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여러분 이게 말이나 되는 말입니까?

요셉이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완장, 채색 옷이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내일 본문에 요셉은 형들에게 잡혀서 채색 옷이 벗겨지고 빈 구덩이 물 없는 구덩이에 빠질 때에야 비로소 깨달았을 것입니다. “내가 채색 옷만 입지 않았었다면 이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화려하게 보이는 채색 옷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영광의 나라에서 입게 될 부활의 몸에 맞는 옷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처럼 찬란하게 빛날 영광의 옷을 입을 그날을 사모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