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을 바라봅니다

새벽예배 2022.06.21 | 에스더 8장 11-17절 | 이선기 목사



에스더 8장 11-17절


11.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13. 이 조서 초본을 각 지방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14. 왕의 어명이 매우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새벽 묵상


1967년 6월 30일 열일곱 살의 운동선수 조니 에릭슨은 체사피크 만에서 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목 아래부터 전신이 마비된 그녀는 쓰라림, 좌절, 원망, 분노,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침체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재활 훈련 및 치료 기간을 통해, 그리고 부모님, 자매들과 친구들의 열렬한 후원을 통해 점차 깊은 블랙홀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녀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후원하는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변화의 중심에는 성경을 재발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무력하며 마비된 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그녀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된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늘에서 ‘영화롭게’된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내가 내 발로 춤을 출 것입니다. 손가락은 오그라들어 구부러지고, 근육은 쇠약해지고, 무릎은 비틀리고, 어깨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는 내가, 그 날에는 가볍고 밝으며 강력하고 눈부신 의로 옷 입은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이 나처럼 척추를 다친 사람에게, 뇌 손상을 입은 환자 혹은 조울증 환자에게 어떤 비전을 주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도 새로운 몸과 정신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 안에서만, 상처 입은 사람이 이처럼 놀라운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날을 바라봅니다”


저와 여러분도 거듭난 주의 자녀로 삶의 가치 기준이 바뀌어 그 날을 바라보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돈과 줄과 빽과 사람이 아니라 권세가 아니라 그 날을 사모하는 자 꿈꾸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어제는 하만의 모든 계략을 발견한 아하수에로왕이 하만을 처형하고 자신의 민족을 살려달라고 온 에스더에게 집을 주고 모르드개에게는 왕의 반지를 주었던 이야기, 마지막으로 새 조서를 쓰게 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왕의 친서와 도장을 찍어 한번 선포된 조서는 철회할 수 없다는 것 기억하시죠? 그래서 두 달 열흘을 고심한 끝에 새로운 조서, 즉 그날에 유대민족이 유대민족을 대적하는 적과 싸울 수 있다. 심지어 그 가족을 죽이고 진멸하고 재산까지 죽일 수 있다 하는 새로운 조서를 만들게 됩니다. 11절 보십쇼.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왕이 이미 내린 조서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유대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지혜로운 새 조서의 내용입니다.


특별한 것은 이렇게 새롭게 내려진 조서가 그냥 내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아하수에로왕이 이런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바사 제국 내에서 어떤 한 민족이 칼로 무장하고 군대로 조직하는 것은 자칫하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일제 치하 36년 동안 어느 날 갑자기 일제가 한국 사람들에게 무기를 가져도 된다 했다고 생각해 보십쇼. 이게 보통 일입니까? 또한 유대민족이 바사제국의 127도 전역에 퍼져 있었을 텐데 이렇게 유대민족이 무기를 가지고 싸워도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면 분명히 다른 민족들을 자극하여 제국의 도처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왕이 정치를 아예 모르면 몰라도 이 일은 정상적인 왕이라면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택한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어 이를 허락하게 됩니다. 1차 조서가 시행될 12월 13일까지 무려 8개월에서 9개월을 남겨두고 스스로 무장하여 군사를 조직할 기회를 얻게 된 유대민족.


우리가 여기서 첫 번째로 기억할 것은 1. 대 바사제국 아하수에로왕이 이렇게 나라의 존폐가 결정될 중요한 일을 에스더를 너무나 사랑해서 결정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시는 증거였습니다. 바사 왕이 에스더를 사랑하되 너무 사랑하게 하셔서 민족 전체를 신뢰하게 하신 하나님


여러분 요셉을 기억해 보십쇼. 애굽 땅에 팔려갔으나 보디발 집에 팔려 갔으나 보디발에게 큰 사랑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 요셉, 여러분 보디발이 정말 요셉을 미워했다면 정말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말을 믿었다면 보디발은 그 자리에서 요셉을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자기 아내의 말이 지나친 말이라는 사실을 보디발은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보디발에게 너무나 사랑과 신뢰를 받게 하시는 하나님,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고서 바로왕이 요셉을 지나치게 믿고 신뢰하고 사랑한 것도 역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창세기 41장 40절에 보면 바로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간신배들의 질투 때문에 사자굴 속에 들어간 다니엘을 기억해 보십시오. 당시의 왕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에 가서 슬퍼 소리를 지릅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셨느냐? 다리오왕은 사자 굴에서 다니엘을 살려주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합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요 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에스더 같이, 요셉같이, 다니엘 같이 사랑받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행하는 자는 어디 가든지 누구에게든지 사랑받는 자 신뢰받는 자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왕의 반지를 받고 하만 대신에 바사의 둘째 치리자가 된 모르드개의 찬란한 모습을 보고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15절 보십쇼. 모르드개가 얼마나 휘황찬란하게 되었는지 보십쇼.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푸르고 흰 색은 왕의 색깔입니다. 왕과 같은 위엄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조복은 사람 죽어서 입는 상복이 아니라 왕이 내린 왕이 하사한 귀한 옷이라는 뜻입니다. 왕이 신뢰하여 내린 최고의 하사품을 입은 모르드개, 제일 찬란하게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 큰 금관입니다. 왕의 왕관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바사에서 왕 다음으로 쓸 수 있는 최고의 금관이 바로 모르드개에게 씌워졌습니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대궐 문에 앉아 있던 아주 납루한 옷을 입은 모르드개였습니다. 자색 가는 베옷을 입고, 즉 당시 최고의 옷감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여기 “왕 앞에서 나오니”라는 표현은 아주 특별한 표현입니다. 앞에 말씀 드린 대로 바사의 법은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 앞에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것이 국법이었습니다. 함부로 나아갔다간 사형을 면치 못했습니다. 왕 앞에서 나오니라는 표현은 그 엄중한 국법에서 제외되었다는 표현으로 나라의 2인자인 모르드개는 왕이 부르지 않았어도 자유롭게 왕 앞에 가서 왕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만나고 나왔다는 표현입니다. 얼마나 왕의 총애를 받았으면 이런 권한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저는요 경기도 용인에서 단독목회를 할 때에 작은 교회였는데 가끔 제가 설교할 때 되면 제 뒤에 와서 제 엉덩이를 만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설교시간에 강단에 자유롭게 올라오는 것도 특별한데 설교하는 목사 엉덩이를 건드리는 대단한 사람이 있었는데 3살 된 제 딸이었습니다. 이 딸이 지금 대학생이 되었는데 아직도 그 때 강단에 올라오는 딸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얼마나 아빠와 가까왔으면 설교시간에 자유롭게 강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설교 강단 정도가 아니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긍휼과 그 보혈로 인하여 자격없는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어제는 모르드개가 반지를 왕에게서 받은 것은 신분이 상승된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오늘 이 15절에 최고의 옷 왕이 하사한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왕 앞에 자유롭게 나오게 된 모르드개가 바로 우리의 모습, 영생의 특권 부활의 특권을 얻게 된 우리들임을 기억하시고 감격하시고 감사하시고 자다가 일어나서도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참 감동적인 것은 이렇게 찬란한 모습의 모르드개의 모습을 보고 15절 맨 마지막 “수산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즉 수산성에 있는 온 페르시아 사람들이 기쁘고 흡족하여 소리를 지르고 환호했다 하는 사실입니다. 16절에 보니까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수산성에 있는 모든 바사 사람들에게도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바사 전국에 퍼져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도 또한 영광과 기쁨과 즐거움이 나타나는 역사.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이 구절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도 기쁨을 가져오는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 사업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아픔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음식을 하나 만들어도 정직하게 성실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기억하시고 어디에 있든지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결국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온 유대인들이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6절 다시 보십쇼.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여기서 존귀함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예카르라는 단어로 명예와 재산과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민족 전체가 멸절의 위기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에스더의 용기와 모르드개의 지혜로 온 민족이 자유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며 명예롭고 존경받는 부자가 된 유대민족, 이사야 43장 3절과 4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며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특권을 얻게 되었으니 이미 존귀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이 땅에서도 존경받는 존귀한 자 되시고 그날을 바라보면서 준비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존귀한 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