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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나 우리나 똑같이 주 예수의 은혜로

새벽예배 2023.07.26 | 사도행전 15장 1-11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15장 1-11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새벽 묵상


서울 강서구의 발음교회 원로목사님이신 권오륜 목사님의 글 중에서 “우리교회도 텃세가 있을까?”라는 글이 있는데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읽어드립니다.

텃세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터 잡은 사람이 위세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옛 속담에 “개도 텃세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일은 어디나 있다는 점을 빗대서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개나 고양이야 텃세해도 그만이지만 사람들이, 그것도 교회 성도들끼리 텃세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새신자가 교회 정착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것은 텃세라고 합니다. (월간 교회성장 2009.3월호) 새로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신앙훈련이 아니라 기존 성도들과의 낯설음이라고 합니다. “기존 성도들이 끼리끼리 다니면서 새로 나온 사람을 외면하는 것 같다.” “믿음의 단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새신자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한다.” 이것이 새가족들의 공통된 바람입니다. 우리교회는 위세 부리는 교회가 아니라 위해 주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교회에 들어온 새가족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씀은 “교회가 편안해서 등록했습니다. 옛날 다니던 시골교회 같습니다. 심지어는, 목사님이 촌스러워서 좋습니다.” 등입니다. 교회가 따뜻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새가족들을 좀 더 배려하고,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텃세 없는 교회, 정말로 좋은 교회, 신앙적인 교회로 발전해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옛날 경기도의 시골학교에 다닐 때 서울의 명문중학교 아이들이 교복입고 떼 지어 활개치고 다닐 때 기가 죽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알아왔던 사람끼리 혹은 중심인물들끼리 휘젓고 다니지 않기로, 할 수만 있으면 섬겨주고 세워주고 끌어주는 사이가 되기로 약속합시다.

그리고 새가족이 들어오면 그분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안내하고,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도록 섬김의 자리에 우선 앉혀 드립시다. 오래 다닌 기존신자들이 양보할 줄 알고, 잘 배려할 줄 아는 공동체, 참 따뜻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 갑시다. 텃세 안 하는 교회, 가족과도 같은 교회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권세 있게 확장해 가십니다.. 여러분 아멘입니까? 우리 윌셔교회도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교회도 다 텃세있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함께 만들어 가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유대인들의 텃세 이야기, 신앙생활은 복음 자체로 이미 충분한데 율법적 요소를 가미하려는 일부 텃세하는 유대인 성도들로 말미암아 갑자기 소집된 예루살렘 총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극 보수적인 유대주의 신자들은 모세의 법대로 모든 신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절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아마도 이 텃세부림이 나오게 된 근본 원인은 사도바울의 1차 선교여행으로 인해 복음이 폭발적으로 이방 세계에 전파됨으로써 맞게 된 정통 유대인들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런 갈등은 기독교가 유대 지역에서 벗어나 범세계적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거쳐 가야 할 관문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총회는 결국 폐쇄적인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할례로써가 아니라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써 구원얻는다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확립하게 되었고 땅끝까지 복음을 확산시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드높여 선교의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장애 요소를 공식적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저 우리들끼리만 있는데 익숙해지고, 본질 아닌 것들이 중요시되며, 지키기 힘든 규례들을 만들지 마시고, 그런 얽매임 때문에 새가족이 들어오기 어려운 냉랭한 교회 만들지 마시고 중요한 본질에 집중하는, 생각을 넓히고 마음을 열어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문제와 갈등은 왜 일어나는가? 어제도 함께 나누었는데 자꾸 내가 주인공 되려고 하니까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내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인공 되시며, 생명까지 다스리시는 최고의 권세가 주님께 있는데 인간이 욕심으로 어리석게도 그 하나님의 고유권한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1절 중간을 다시 보십쇼.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여러분 우선 뒤 문장부터 보십쇼.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여러분 구원받는 것은 누구의 권한입니까? 생사화복과 영원한 삶을 주관하시는 심판자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우리 인간은 구원에 대하여 추측할 수 있을 뿐이지 최종 결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런데 일부 유대인들이 극 보수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받는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억지 주장입니까? 성경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까?

중세 가톨릭이 비슷했습니다.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백성들은 사제가 말하는 대로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면죄부를 돈 주고 사면 예수를 모르고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연옥에서 천국으로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며 구원받는다고 믿었습니다.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그 당시의 백성들은 성 베드로 성당의 빚을 갚기 위해 헌금을 착취하는 중세 카톨릭의 검은 속내를 모르고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그대로 믿고 너도 나도 면죄부를 사게 되었습니다. 이 타락한 중세 카톨릭을 반대하며 루터는 95조개조 반박문을 붙이게 되는데 sola fide! 면죄부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sola gratia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는 것이다. sola scriptus 오직 성경을 강조하면서 타락한 중세 기독교의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기게 됩니다. 성경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독일어로 직접 번역하면서 성경의 본 뜻을 세상에 밝히게 되죠. 로마서 1장 17절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하고 진실을 밝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 반드시 이걸 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심하시고 아예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한 때 구원파에서 몇 날 몇 일 몇시에 구원받은 정확한 기록이 없으면 아직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다녔는데 여러분 성경에 그런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구원받는 것은 과거의 특별한 날짜와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지금 내가 그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오래 다녔다고 다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모태 신앙이라고 무조건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모태 신앙은 전도도 못해, 기도도 못해, 그래서 못해 신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결국 그냥 신앙생활 못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제가 4대째 감리교 집안입니다. 그런데 그게 구원받는 것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아무리 5대 6대 집안이고 집안에 목사님이 수십 명 있어도 내가 지금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는 것을 믿지 아니하면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 극 보수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할례를 오늘날로 말하면 세례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례 안 받으면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단하며 그 결단의 표시로 받는 것이 세례입니다. 주객이 바뀌면 안 됩니다. 헌금도 마찬가지고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용서받은 감격으로 받은 은혜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 헌금이고 구원받은 감격 가지고 은혜를 사모하며 주일 말고 계속해서 새벽이고 수요일이고 나와서 다시 한 번 은혜로 충전되는 시간이 예배입니다. 저 사람이 헌금을 제대로 안하면 신앙생활 잘못 하고 있고 예배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하지 않으면 병든 성도이고 이렇게 판단하는 일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할례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했다 주장하는 유대인 같이 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무거운 멍에를 얽어매는 할례 주장하는 유대인들이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구원받은 감격이 먼저입니다. 할례가 먼저가 아니라 은혜와 구원받은 감격이 먼저인 참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안디옥 교회는 4절 바울과 바나바를 포함한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어 자문을 구하게 되고 이 할례 논쟁은 어떻게 해결점을 찾았는가? 7절 보십쇼.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베드로는 이 텃세 논쟁으로 시간이 계속 허비되는 것을 발견하고 이제 그치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일어나 확신에 차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7절 중간을 보십쇼.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절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베드로는 우선 지금 이렇게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면서 그 실제적인 예로 앞에 사도행전 10장 44절 이후에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성령 받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고넬료에 대해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성령께서 분명히 이방인들에게도 나타나셨다. 이방인을 통해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는 것이다. 9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즉 일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할례를 통해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지시고 죽어주셔서 구원하신 사실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10절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아주 강하고 확신에 찬 권위 있는 사도 베드로의 강력한 설득으로 이방인의 복음 전파에 대한 논쟁이 확실하게 결론지어지고 있는 강력한 한 방의 메시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베드로가 강하게 분명하게 논쟁을 해결하는 영적 권위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가 철저히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문제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자꾸 인간적인 토론이 길어지면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서로 분쟁하다가 삿대질 하다가 끝나기 쉽습니다. 교회에서 회의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안이 지금 하나님이 보실 때 맞는 것인가? 사람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고민하십시오. 갈라디아서 1장 10절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달라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좋게 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결론이 되지 않도록 오직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대로 되도록, 하나님께 집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강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마지막 11절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주장이 인간적인 이기적인 표현이 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합니다. 11절 보십쇼.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이렇게 마지막 문장을 전하니 그 다음절이 내일 본문인데 12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즉 이 영적인 권위자의 결론 앞에 논쟁하던 모두가 잠잠해졌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너무 은혜로운 결론 아닙니까? 모두가 존경하는 베드로 사도의 한 방의 메시지 앞에 그 영적인 권위의 말씀 앞에 다 잠잠하게 되는 이 놀라운 은혜의 현장.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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