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잡힌 그리스도인

새벽예배 2022.05.16 | 고린도전서 7장 25-40절 | 이선기 목사



고린도전서 7장 25-40절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새벽 묵상

여러분 여태까지 살면서 가장 건강할 때가 언제이셨습니까? 저는 언제였나 생각해보니까 한국에서 2000년 6월부터 2002년 8월까지 26살 좀 늦은 나이에 군입대해서 26개월 군 생활 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26개월 중에서도 2000년 6월에서 7월 사이 훈련소에 있었을 때 6주 동안이 가장 건강했습니다. 그 때 제 몸무게가 약 30파운드가 빠졌었던 것 같습니다. 바지에 주먹이 두 개가 들어갈 정도로 필요 없는 살들이 싹 빠졌을 때가 그 때였습니다. 늘 일정한 양의 음식을 먹고 일정하게 운동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더니 참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오자마자 도로 30파운드가 그대로 찌고 말았습니다. 안타깝죠. 의무군대인 한국 군대가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지만 좋은 점을 뽑으라면 바로 이겁니다. 너무 마른 사람은 적절하게 살이 찌게 하여 건강하게 만들고 살이 찐 사람은 쭉 빠져서 참 남자로서 멋진 몸매 그리고 건강한 몸을 만드는 곳이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에도 가능하면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시들시들한 건강처럼 열정을 잃어버린 골골하는 패배자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지나치게 비만이 되어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늘어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가장 건강한 상태로 그리스도의 군사 되어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힘 있게 멋지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바로 적절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균형을 잘 맞춰가야 합니다. 너무 마르지도 말고 너무 찌지도 않는 적당한 상태를 지켜가야 합니다. 이것은 삶의 모든 부분에 다 적용됩니다. 잠언 30장을 쓴 야게의 아들 아굴은 이런 균형 잡힌 적절하게 건강함을 유지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잠언 30장 8절 중간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절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너무 등따시고 배불러지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나태해지며, 너무 가난하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할까 하는 걱정이 가득했던 아굴..그저 하나님 내게 딱 맞는 적절한 은혜를 주옵소서. 건강하게 하옵소서.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하옵소서. 그런 기도의 사람이 바로 아굴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태이십니까? 너무 배불러서 하나님과 혹시 멀어져 계시지 않습니까? 반대로 너무 가난하여 원망하며 죄를 지음으로 부끄러운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계십니까? 균형 잡힌 적절한 상태로 회복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할 때에 매일 매일 만나를 주시고 거두게 하신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날그날의 것이 아니라 욕심내서 더 많이 가지려하면 벌레가 나게 하신 하나님, 그날 그날 적당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을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의 주장도 바로 그런 속마음을 가지고 펼쳐지는 내용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은 바로 앞에 고린도전서 7장 1-9절에서 독신과 결혼의 일반 원리와 10-24절에 이혼 문제에 관하여 고린도 교인의 질문에 답변하였습니다. 이어서 이제 오늘 본문 25절 부터는 좀 더 세부적으로 미혼 여성의 혼인 문제와 과부의 재혼에 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선 미혼 여성들에게는 두 가지 결혼관을 제시합니다. 먼저 25절과 26절에 가능하면 독신으로 지낼 것을 권합니다. 26절 끝에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그러나 36절에 중간에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결혼하라) 그것은 죄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즉 결혼할 필요성이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두 번째는 과부의 재혼에 대해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39절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본인 의사가 중요하니 자유롭게 하라는 뜻이죠. 그런데 다시 39절 끝에 한 구절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자유롭게 재혼하되 꼭 주 안에서만(믿는 성도하고) 할 것이라 하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또 한 번 진짜 바울의 속마음 40절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마지막에, 그래도 가능하면 그냥 독신상태를 유지하면 좋겠다 하고 말하는 바울. 여러분 웬만한 사람은 이 구절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도대체 하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분명하게 하라면 하고 절대 하지 말라하면 할 것이지 결혼, 재혼 자유롭게 하라 해놓고 그러나 가능하면 독신으로 지내라 이건 뭔가? 우리는 이런 교훈을 잘 이해하기 위해 바울이 살고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우선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궁극적으로는 독신을 권면하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 때가 29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그리고 26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 하신 후에 약 20여년이 지났을 때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신다. 재림하신다는 임박한 종말사상이 여기저기 팽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재림 직전에 대환난이 있을 것인데 가정을 가진 자들에게는 혼자만의 고통이 아닌 가족으로 인한 더 큰 고통을 겪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독신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그런 차원으로 본문을 잘 이해하면서 바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독신으로 지낼 것을 권면하며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그리스도인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적절한 상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혹시 결혼함으로 재혼함으로 그 균형이 깨질 수 있지 않은가?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얹어 혹시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균형을 깨뜨릴까 걱정했던 바울. 그의 속뜻은 이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속 마음을 이해하시면서 저와 여러분의 소망과 삶의 태도가 바뀌시길 바랍니다. 그러 구체적으로 바울의 속마음이 무엇이었는가?

1. 첫 번째로 이미 정리된 내용인데 바울은 가정으로부터 초연하므로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29절 보십쇼. 중간에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33절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아무래도 결혼한 자들은 마음이 아내에게 또는 남편에게 가 있어서 배우자를 기쁘게 하는데 너무 빠져있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인의 균형은 첫 번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데 그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보냈지만 이 땅에 영원히 속한 자가 아닌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우리들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살아있는 동안 호흡 있는 동안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 다음이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일 텐데 행여나 순서가 바뀌게 되면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그게 바울의 속마음이었습니다.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치라 명령하신 하나님도 바로 그 마음이셨습니다. 행여나 아브라함이 기다리던 아들을 100세 때에 얻었는데 그 귀한 아들 너무 귀해 하나님보다 첫 번째가 이삭이 될까봐. 순서테스트 하셨던 하나님. 저는 퇴근해서 집에 가면 언제 제일 행복한가? 초인종 누르자마자 아이들이 뛰어나와서 아빠를 반길 때, 아 내 아이들이 나를 첫 번째로 생각하는구나? 음식을 해도 항상 제일 좋은 것은 아빠 먼저 말하고 줄 때, 물론 먹을 게 빨리 와서도 기쁘겠지만 그것 때문에만 기뻐하면 저는 사람이 아니라 돼지구요. 집사람이 아이들에게 아빠를 첫 번째로 높여 줄 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하물며 하나님은 오죽하시겠습니까?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 우리 인간이 삶의 가장 먼저의 자리에 하나님을 둘 때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 바울이 오늘 본문에 그냥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낫다고 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인간됨의 첫 번째 이어야 한다는 뜻이었음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이렇게 하루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 사람 만나기 전에 첫 시간을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가장 멋진 모습이죠? 오늘도 아니 평생 동안 삶의 첫 번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세속적인 감정으로부터 초연하므로 그리스도인의 균형을 유지하라고 했습니다. 30절 보십쇼.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무슨 말입니까? 심각하게 인상 쓰면서 지내라 그 뜻이 아닙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불이익 앞에서는 울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 앞에서는 웃지 않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 기분과 감정에 이리 저리 흔들리지 말라. 세상이 주는 근심과 염려 가운데서도 하늘나라의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 할 줄 알아야 하며, 세상 쾌락과 즐거움에 사로잡혀 임박한 심판의 날을 망각한 채 세상의 집착을 이기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들을 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탄식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뜻입니다. 노아가 그런 사람이었죠. 세상 사람들의 감정에 휩쓸려가지 않았던 사람. 다른 사람이 다 놀고 기뻐하고 즐길 때 심각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안타까워했던 사람. 거룩한 탄식이 있었던 사람, 세속적인 감정으로부터 초연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왕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성으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올 때에 그의 아내 미갈은 왕을 놀리고 비웃어도 가장 큰 기쁨이 무엇인 줄 알았기에 옷이 벗어질 정도로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기쁨을 마음껏 표현했던 사람.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는 모든 예배가 배꼽이 빠져야 한다. 춤추며 소리 지르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리도 노래하는 가수 때문에 춤추며 소리지르는데 어떻게 우리는 영생을 주신 분, 죽어 마땅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지신 분의 은혜로 죽음을 극복한 부활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냥 있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셨는데 머리가 나쁜 사람이 돌이 아니라. 구원의 왕이 오시는데도 몰라서 잠잠하면 그 사람은 돌만도 못한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한 예배 예배마다 눈물바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펄젼 목사님 마른 눈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 하셨는데 용서받은 죄인이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는가? 눈물이 메마른 것은 배은망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아 토하여 내쳐지게 되는 라오디게아 교인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속적인 감정을 초연하여 가장 눈물 많이 흘리시고 가장 기뻐할 일 구원의 감격으로 기뻐하고 또 기뻐하면서 뜨거워지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물질 문제로부터 초연해야 그리스도인의 균형이 유지된다고 했습니다. 30절 다시 끝에 보십쇼.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절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여기서 “없는 자”는 헬라어로 메 카테콘테스인데 카테콘테스의 원형인 카테코는 단단하게 붙잡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다 쓰지 못하는 자”의 쓰다라는 말은 헬라어 카타크라오마이 즉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종합하면 단단하게 붙잡지 말고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지 말라는 뜻, 세상의 물질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연연하지 말라는 것은 무조건 없이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확한 의미는 사실 가난한 자에게도 해당되고 부자에게도 해당됩니다. 가난한 자가 너무 연연하면 자신을 비관하게 되고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물질이 생기면 절대 놓지 않게 되는 조금이라도 나누어 줄 줄 모르는 거지근성을 가지게 됩니다. 부자가 연연하면 끝도 없는 물질에 대한 욕심에 역시 불안한 마음에 불행하고 역시 놀부처럼 나눠주지도 않고 이기적인 삶이 계속됩니다. 연연하지 말라는 의미는 부자에게도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도 다 해당된다는 것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까 말씀드린 아굴의 고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절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사도바울의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메시지 속에는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분명한 속뜻이 있었음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하나님이 첫 번째가 되시고 세속적인 감정과 물질을 초연하는 귀한 하루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의 하루를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