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의 노래가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라

새벽예배 2022.08.09 | 창세기 4장 16-26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4장 16-26절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부르는 노래 가사에 따라 부르는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경희대 서정범 교수가 발표한 이론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대중가요를 부르는 보통의 가수가 히트곡을 내게 되면 통상 5,000번 이상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5000번 이상 히트곡을 부르고 또 부르는 중에 그 노래의 가사처럼 그렇게 의식화되고 그 가사에 맞추어 살기로 결단하고 정말 그 가사와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옛날 가수분들 이지만 예를 들면 마치 자신의 죽음을 찬미하듯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이란 가수는 결국 현해탄에 몸을 던지게 되었고,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후 요절한 가수 차중락, 채 삼십이 안 된 나이에 저 세상으로 떠난 당대 최고의 가수 배호와 그가 부른 노래 마지막 잎새, 여러분 우연일까요?

반면에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노래와 ‘해뜰 날’을 부른 가수 그래서 노랫말대로 세월을 약을 삼아 기다리다가 젊을 때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게 된 가수가 있습니다. 누구죠? 예 송대관이라는 가수입니다.

저는요 예전에 통기타를 가르치며 흘러간 옛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했었는데 그 때 제일 기타 배우는 분들에게 인기 있었던 곡이 “만남”이었습니다. 다 아시죠?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소” 여러분 이 만남을 부른 가수가 누구였습니까? 예 노사연씨였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연이 아닌 만남 노래 부른 가사처럼 좋은 만남을 가지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지 않습니까?

바라기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곡을 불러도 웨슬리 목사님이 힘차게 찬송하십시오. 조는 사람처럼 힘빠지게 찬송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힘있게 소망을 주는 찬송을 많이 부르시고 일반 노래 가요를 불러도 슬프고, 괴롭고 죽고 싶고, 허무한 가요 부르지 마시고 소망을 주고 의미를 주고 보람을 느끼게 하고 미소 짓고 꿋꿋이 이겨내는 노래를 많이 부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처음으로 노래를 불러 기록된 부분이 담긴 “라멕의 노래”가 담겨있는 본문입니다. 23절과 24절 보십쇼. 라멕의 노래입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1절에 보면 둘째 아들 유발이 만든 수금과 퉁소를 들고, 22절에 보면 셋째 아들 두발가인이 만든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나 무기를 들고 거만하게 자신을 과시하며 노래를 부러 외치고 있는 라멕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 라멕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안 봐도 분명합니다. 그 조상 가인의 삶을 닮아 결국 교만의 끝을 보게 되었을 라멕. 그가 부른 노래 속에서 그의 헛되고 부끄러운 삶의 모습이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어제 말씀 드린대로 16절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놋 땅에서 살게 되었다고 되어 있어서 오해하기 쉬운데 놋땅에서 정착하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생명의 삶 책에도 64페이지에 설명되어 있지만 놋이란 단어와 유리하다 라는 단어가 같은 히브리어 “나드”입니다. 그러니까 놋이란 땅에 도착하긴 했는데 가인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기 저기 떠돌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죽은 동생 아벨의 핏소리가 가인이 가는 모든 땅에서 계속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인에게 다행인 것은 17절에 가인이 아내를 얻고 동침하여 아들을 낳고 대를 이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에녹, 18절에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로 이어졌고 므드사엘의 아들이 바로 라멕이었습니다.

이렇게 라멕은 출신이 하나님 없이 대를 이어간 가정에서 출생했고 노래도 그저 교만에 찬 노래만을 하고 있었으니...

이 라멕의 노래를 두 가지로 정리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1. 첫 번째로 라멕의 노래는 지나치게 세속적인 노래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분 하나님께서 세상을 왜 만드셨고 무엇을 원하여 만드셨는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내가 주인되어 내 삶을 즐기기만을 위한 아주 세속적이었던 라멕

이 라멕의 노래를 누가 듣도록 라멕이 부르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다시 23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이 노래는 그의 두 아내 아다와 씰라가 듣도록 부른 노래였습니다. 아다는 꾸미는 자란 뜻이 있고 씰라는 딸랑거리는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라멕이란 뜻이 힘센 자라는 뜻이니까, 힘센 자가 꾸미는 여인에게와 딸랑거리는 여인에게 자기 힘자랑하며 뻐기면서 부르는 노래. 얼마나 세속적입니까? 처음으로 일부일처의 규례를 깨고 일부 다처의 기초를 다진 것도 세속적인데 그저 힘자랑하고, 얼굴 외모 예쁜 것 자랑하고, 온갖 아름다움으로 장식하고 다 눈에 보이기에 좋은 것들만 서로 드러내고 추구하고...여러분 이런 자랑과 노래, 이 세속적인 모습이 바로 하나님 없는 세상이 추구하는 목표 아닙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가져보았던 솔로몬은 뭐라고 결론짓습니까? 헛되고 헛되니 다 헛되도다. 다 유한하고 한 때이고 잠시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첫째 아들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기름 부으려고 했습니다. 둘째와 셋째 아들의 겉모습에 감탄했습니다. 하나님은 교훈하십니다. 너는 그의 외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금방 헛된 것 될 것들 붙들지 마시고 썩은 동아줄 붙들지 마시고 영원한 것 중심 보시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들 그것들 추구하고 노래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라멕의 노래는 보복의 노래였습니다. 어제 4장 15절에서 하나님은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어제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사실은 이 보호의 표를 주시며 표현한 칠배의 벌은 그냥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벌을 칠 배나 받을 것이니 보복하지 말라 즉 개인적으로 보복하지 말라 보복하는 것과 복수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라멕은 이런 하나님의 공의의 보복 금지 명령을 비웃고 보란 듯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23절 끝문장 보십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하며 자랑스럽게 살인을 저질렀던 것을 뽐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생명의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표현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 허리보다 굵다. 아버지는 채찍으로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징치하리라 하면서 아버지보다 더한 사람임을 자랑하며 결국 이스라엘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게 만들었는데 라멕은 아버지보다 더한 사람임을 자랑하는 것 이상으로 아버지를 넘어서 하나님까지 날 어떻게 할 수 없다. 자랑하는 교만 중의 교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4절 보십쇼.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즉 내 털끝하나라도 누가 건드리면 결코 용서하지 않고 그 몇 배로 보복하겠다는 잔인함과 보복의 표현입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라멕을 이 땅의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 짐승의 세계 같은 라멕의 표현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12장 19절에 나온 표현대로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음을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보복하고 원수 갚는 것은 당장에는 내 속을 시원하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들 지으신 하나님의 뜻과 정 반대의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라멕의 노래까지 24절까지만 보면 참 한숨이 나오고 한탄이 나오는데 25절과 26절에는 이와 상반된 아벨 대신에 얻은 아들 셋에 대한 이야기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만 남은 아담과 하와 사이에 다시 아들을 주심으로 죽은 아들 아벨을 대신하여 위로해 주셨습니다. 셋 이란 이름은 한국어 표현으로 세 번째 나와서 셋이라고 웃음을 주기도 하는데 히브리어의 뜻은 지정된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이 죽고 슬픔에 있는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지정하여 위로의 아들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큰 절망의 순간에 지정하여 위로의 선물을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한 것은 셋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서 셋이 어떤 아들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노스라는 뜻은 “사람, 죽어 썩어질 사람, 연약, 병든 사람”이란 뜻입니다. 즉 그동안의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있었던 일들을 듣고 자라면서 셋은 종합적으로 묵상하고 겸손히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의 아들의 이름에 그 의미를 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셨고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죽는 존재, 연약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 죽음에 이르는 병든 존재가 되었음을 에노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겸손히 깨닫고 또 겸손히 낮아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겸손히 사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니 26절 마지막절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즉 사람이라면 당연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존재,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고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깨닫고 찬송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면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라멕의 노래는 검의 노래라고도 불립니다. 사람이 사람의 힘으로 사람의 무기나 꾸며짐이나 힘으로 아무리 대단한 검을 만들고 힘자랑을 해도 이는 결국 썩어질 아무것도 아닌 헛된 것일 뿐 의지할 분은 오직 여호와의 이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검으로 하나님의 무력으로 금방 끝내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검이 아닌 독생자를 십자가의 죽게 하심으로 십자가에서 독생자 예수님이 아버지여 부르며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면서 숨을 거두시게 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내시고 죽음으로 끝날 운명이었던 우리의 허무한 삶을 영생의 소망을 가진 부활 소망의 삶으로 바꿔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이 부활의 소망으로 다시 뜨거워지시고 구원받은 감격으로 뜨거워지시며 감사와 기쁨으로 하루를 승리하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