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람의 불량대로

새벽예배 2022.11.21 | 창세기 49장 22-33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49장 22-33절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행복과 그냥 복의 차이를 아십니까? '행복'과 '복'이란 두 단어의 영어 어원을 살펴보면 확실한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행복 Happiness는 '우연히 일어나다‘는 뜻의 Happen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보이는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소유가 많아지고 자녀가 잘 되고 의식주가 풍요로워졌을 때 갑작스런 횡재를 만나게 될 때에 생기는 마음이 바로 행복입니다. 반면에 복이란 뜻의 단어 Blessing은 어떤 단어에서 왔을까요? Blessing하고 비슷한 단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 Blessing은 피를 흘리다라는 Bleed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복은 행복과는 다르게 피를 흘리는 것과 같은 고난과 아픔의 대가를 지불하는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 이 추수감사의 때에 더욱 더 감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예 우리 대신 죄 때문에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대신 피 흘려 주심으로 우리의 인생을 죽을 절망의 존재에서 Blessing 즉 복이 있는 인생으로 바꾸어주신 우리 주님께,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행복이 아니라 주님의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 복된 인생이 된 것을 자다가 깨서도 감사하면서 복 있는 사람으로 사명 붙들고 뛰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야곱은 요셉을 만나고서 애굽에서 사는 17년 동안 참 평안했습니다. 비록 그동안 참 험악한 130년의 세월을 보냈지만은 노년에 요셉과 함께 온 가족이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야곱은 17년 이제 참 만족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하고 감사로 충만한 그 때에 자신의 이 땅에서의 연수가 거의 다 됨을 느끼고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12아들을 하나하나 축복하게 됩니다.

바로 토요일부터 어제 주일까지 생명의 삶 본문에 보시면 형제들 맏아들 르우벤부터 시작해서 쭉 차례로 하나하나 그들을 축복하며 예언하는, 앞날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언하는 야곱의 축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11번째 아들 요셉에 대한 축복이 22절부터 26절까지, 막내아들 베냐민에 대한 축복이 27절에 나와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죽음이 임박한 것을 느끼는 야곱이 얼마나 아들들을 좋은 내용으로 축복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건 야곱의 생각이고 하나님께서 야곱의 입을 주관하셔서 야곱의 의도와는 많이 다른 축복을 대언하였다는 사실입니다. 28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즉 적절하게 그 사람의 그릇에 따라서 축복했다는 뜻입니다. 각 사람의 분량대로라는 표현을 조금 더 이해가 되도록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즉 아무리 아버지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어도 이 축복을 받은 아들 중에서 겸손히 그 뜻을 아멘하고 받아들인 사람은 축복의 대언 들은 것보다 더 복된 삶을 살아가기도 했고, 이 축복의 대언을 그냥 무시했거나 소홀히 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축복의 메시지를 들었어도 후에 부끄러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일방적이고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운명이다 하고 낙담하는 것은 뭔가 부족하고 오해하는 생각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랬습니다. 주인을 오해하고 절망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땅에 한 달란트를 묻어 놓았습니다. 왜 우리를 로봇처럼 만들어 놓으셨냐고 어차피 하나님 맘대로 할 것 아닙니까? 하고 불만을 표하는 비관론의 사람 역시 똑같은 사람입니다. 굉장히 냉철한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사람은 속에 비교하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람입니다. 비교하지 말고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내 주어진 것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사명붙들고 일하시길 바랍니다. 5달란트를 더 남긴 사람과 2달란트를 더 남긴 사람의 상급이 똑같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계산은 우리의 계산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다하시면서 성숙한 감사와 열정의 사람, 자족의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축복이 아니라 복, 즉 각 사람의 분량대로 라는 차원에서 복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의 요셉과 베냐민이 받은 복을 살펴보면서 성숙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1. 첫 번째로 요셉은 너무 큰 복, 가장 큰 복이 주어졌지만 실제로 영적 장자의 복을 이어받지는 못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22절부터 26절까지 모든 형제 중에 요셉이 가장 길게 복을 받았구나 생각하면서 요셉을 많이 부러워하고 바로 이 22절부터 26절을 배경으로 만든 찬양 야곱의 축복이란 제목의 찬양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 를 많이 부르시면서 더욱 더 요셉은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22절부터 26절을 하나하나 보니까 정말 부러워할 만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22절은 가지가 무성하고 샘 곁에 있고 담을 넘을 정도로 잘 자란다. 즉 산업의 축복입니다. 23절과 24절은 요셉의 활, 그의 팔은 힘 있다. 즉 전쟁에서 승리하는 축복입니다. 25절과 26절은 풍부한 자연의 소산과 대대 손손 번창하는 후손의 축복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좋습니까? 너무 너무 부럽습니다. 그런데 99.9% 다 좋은데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제 본문 10절에 넷째 아들 유다가 받은 축복을 보시기 바랍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규”나 “통치자의 지팡이”는 왕권을 상징합니다. 왕으로 오시는 분 만왕의 왕, 온 인류의 왕으로 오시는 분 누굴까요? “실로가 오시기까지” 여기서 실로는 샬롬 즉 평화, 평화를 가져오는 자 누구입니까? 만왕의 왕이시고, 평화를 가져오는 자 즉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축복권이 넷째 아들 유다로 이어져 유다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산업의 축복, 전쟁의 승리, 자손의 번성이 좋습니까? 내 자손 중에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나오는 영적인 장자의 축복권이 좋습니까?

믿음의 사람으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와 여러분의 축복의 기준이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많고,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있고 자식이 잘 되고 이건 세상 사람도 똑같이 자랑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자랑거리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저와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천국의 소망, 부활의 소망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의 축복이 주어졌는데 이 베냐민 지파에서 용사가 나왔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형제 중에 몇째이십니까? 혹시 막내이십니까? 12아들 중에 막내요 사랑하는 라헬이 낳은 아들 들 중에도 막내인 베냐민, 이 베냐민을 야곱이 얼마나 애지중지 했습니까? 요셉이 죽은 줄로만 알았을 때는 아마 야곱은 베냐민을 거의 업고 다녔을 것이고 다 따라 다녔을 것입니다. 행여나 조금이라도 어디 상할까봐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귀하게 키웠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베냐민을 위한 축복기도를 할 때 야곱은 이렇게 기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베냐민은 존귀하게 되고 어려움이 없게 되고 어디가든지 누구에게나 사랑받게 되고 고귀하고 귀하게 되리라. 그리고 마지막 12번째 아들을 위한 기도이니까 가능하면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해서 길게 축복의 기도를 외칠만 한데 그런데 웬걸 27절 보십쇼. 딱 한 절로 그것도 하주 거칠게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이렇게 하나님의 복을 대언하고 자신이 말한 것 때문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를 어쩌나? 물어뜯는 이리라니.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하나님의 축복의 예언은 적중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가장 용맹스런 지파가 되지 않습니까? 사사 중에 모압왕 에글론을 물리친 용감한 사사 에훗을 기억하십니까? 오른손이 불구가 되었는데도 왼손만으로도 모압왕 에글론을 찌르고 이스라엘에 80년의 평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키도 크고 용맹한 왕 비록 끝이 좋지 않았지만 누구입니까? 예 사울왕, 사울왕이 바로 베냐민 지파입니다. 하만의 흉계로부터 민족을 구원한 에스더와 모르드개도 바로 베냐민 지파입니다. 신약성경의 수많은 편지의 저자 사도바울, 이 바울이 또한 베냐민지파였습니다. 예언대로 비록 막내이지만 약할 것 같지만 가장 용맹한 지파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편견을 가질 때가 많은데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막내임에도 가장 작아도, 뭔가 많이 약해 보여도 하나님이 들어 쓰실 때는 가장 강하게 사용하십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가 아니라 작은 사람도 하나님이 들어 쓰실 때는 가장 용맹스럽고 크게 쓰실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기대하시고 편견을 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돌아갈 본향이 어딘지 알고 가는 사람이 복된 사람임을 또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9절 보십쇼.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 돌아가리니” 야곱은 앞에 47장 29절과 30절에서 먼저 내가 죽거든 나를 매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고 요셉에게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 29절에는 이제 모든 12아들들에게 다시 공식적으로 내가 죽으면 내 조상들에게 돌아가리라.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 즉 30절에 나온 대로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 부탁합니다. 이것은 그냥 눈에 보이는 막벨라 굴 땅이 좋아서 장사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야곱이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묻힌 곳, 아버지 어머니가 묻힌 곳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다. 즉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하나님께만 안식이 있다. 하나님 품이 돌아갈 내 본향이다. 그런 의미입니다.

저도 여기 캘리포니아 LA 가 너무 좋지만 저기 동남부 조지아 어거스타라는 작은 도시가 가끔 그리워집니다. 비도 많이 오고 벌레도 많고 별로 좋은 게 없는 조그마한 한국사람 3000명 밖에 없는 도시이지만 왜 거기가 가끔 그리워질까 생각해 보았더니, 미국에 와서 처음 5년을 살았던 미국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지금 그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고향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 장사하라. 돌아가 내 본향으로 돌아가리라.

여러분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를 잊지 말고 사시길 바랍니다. 먼저 가서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 부활의 주님을 기억하시고 그 품에 안길 때까지 감사와 감격으로 사시고 준비하시고 그 날이 올 때에 거기에 이를 때에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준비,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릴 그날을 준비하시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